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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카루스 Aug 05. 2019

‘인생게임’에서 직업카드가 중요한 이유

평균의 시대는 없다


여기 한 남자가 있다.


그는 중학교 때 ADHD 장애 판정을 받았다. 고등학교 때는 성적 미달로 낙제의 쓴 맛을 보고 학교를 중퇴해야 했다. 일찍 결혼을 했고 그 덕에 아내와 아이를 부양하느라 10가지나 되는 최저임금 일자리를 전전하면서 생활보호 대상자로 인생의 가장 밑바닥까지 추락한다. 하지만 그는 대입 검정시험을 통과해 지역대학에 들어갈 수 있었고 야간 수업을 들으며 주경야독한 끝에, 고등학교 중퇴로부터 15년이 지나 결국 하버드대학교 교육대학원의 교수가 되어 지금은 이 대학의 지성・두뇌・교육 Mind, Brain, and Education 프로그램 책임자를 맡고 있다.


한마디로 드라마틱한 인생. 그 주인공이 바로 지금 소개할 책 ⟪평균의 종말⟫의 저자 토드 로즈다. 그는 이 책에서 자신이 인생의 반전을 맞을 수 있었던 이유가 바로 자신이 지금 연구에 몸담고 있는, 그리고 이 책에서 소개하고 있는 '개개인성의 원칙'을 따랐기 때문이라고 밝힌다.


나는 상황을 해결하고자 처음엔 다른 사람들과 똑같이 되려고 애써봤지만 아무리 해도 엉망으로 끝나기 일쑤였다. 수업마다 낙제했고 들어가는 일자리마다 진득하게 붙어 있지 못했다. 나는 도저히 안되겠다 싶어 시스템에 순응하려는 노력은 그만두기로 마음 먹고 시스템을 나에게 맞출 방법을 찾아보려 매달렸다. 이 방법은 효과가 있었다. (중략) 사실 내가 인생 반전을 맞을 수 있었던 것은 처음엔 직관에 따라, 또 그 뒤엔 의식적 결심에 따라 개개인성의 원칙을 따랐기 때문이었다.

— 토드 로즈, ⟪평균의 종말⟫ 중


| 평균주의는 잘못된 생각이다


책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이 책은 '평균(average)'을 다루고 있다. 맞다.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하루에도 수십 수백 번 알게 모르게 접하는 바로 그 개념. 좀더 정확히는 평균과 그 평균 개념으로부터 파생되어 나온 여러 사회 문화적 현상과 제도들 — 특히 교육 —의 문제점을 다룬다고 보는 게 좀 더 적확한 표현일 것이다.  


저자의 주장은 간단하다. '평균의 시대'에서는 평균이라는 하나의 표준 잣대를 사용하여 사람들을 줄세우고 평균적인 인간이 '참'에 해당하고 평균에서 벗어날수록 '오류'에 해당한다는 사고방식이 지배한다. 하지만 사람들의 지문이 모두 다르듯 세상에 평균적인 사람은 아무도 없다. 모두 제각각 다르다. 그러니 평균을 중심으로 만들어진 세상 — 저자는 이를 '평균주의'라 칭한다 — 은 잘못되었다는 것이다.


평균의 시대에서 성공하려면 다른 사람들에게 평범하거나, 아니면 평균 이하로 평가받아서는 안된다는 강박에 내몰린다.

— 토드 로즈, ⟪평균의 종말⟫ 중


| 개개인성의 원칙


물론 저자도 인정하듯, 여전히 '평균주의'가 단단히 자리잡고 있는 현실에서 우리는 '평균주의'를 완전히 떨쳐 버릴 수는 없다. 또한 평균이 아무짝에도 쓸모 없다는 얘기도 아니다. 하지만 평균에 대한 의존을 줄여 나가고 대체해 갈 수는 있다. 이를 위해 저자는 개개인학에 의거한 3가지 원칙을 제시한다.


들쭉날쭉의 원칙, 맥락의 원칙, 경로의 원칙, 이 3가지 원칙이 평균에 대한 의존을 대체해 줄 것이다. 이 원칙에 따르면 개개인을 완전히 새로운 방식으로 평가하고 선별하고 이해할 수 있게 될 것이다.

— 토드 로즈, ⟪평균의 종말⟫ 중


이 3가지 원칙을 간단하게 요약하면 이렇다.


1) 인간의 재능은 다차원적이다 = 들쑥날쑥의 원칙

2) 사람은 상황에 따라 다르게 행동한다 = 맥락의 원칙

3) 세상에 길은 반드시 하나만 있는 건 아니다 = 경로의 원칙

  

뭐 대단한 것을 기대했다면 조금 실망했을 것이다. (내가 그랬다) 사실 저자가 '개개인성의 원칙'이라 부르는 이 3가지 원칙은 어찌보면 '원칙'이라 부를 것도 없을 정도로 당연한 '공자 말씀'이다.


요즘 세상에 인간의 재능이 한 가지만 있다고 믿는 사람이 어딨으며, (저자가 말하는 맥락의 원칙에 반해서) MBTI 성격 유형을 곧이곧대로만 받아들이는 사람 또한 얼마나 될까? 게다가 세상에 길이 하나만은 아니란 것은 이미 프루스트(가지 않은 길)도 고은 시인("길이 없으면 만들면서 간다")도 얘기하지 않았던가?


| 평균 없는 세상을 위하여


이어 책의 3부에서는 평균주의에 맞설 '대안'을 제시한다. 저자는 테일러주의(과학적 관리이론)를 넘어, 개개인성의 원칙으로 성장하는 기업들의 사례로 포문을 연다. 코스트코, 조호, 모닝스타 같은 기업들의 예를 들어 개개인성의 원칙이 조직 운영에도 적용될 수 있음을 밝힌다.


개개인성의 원칙을 적용하는 일은 전세계 모든 국가의 모든 업종의 모든 기업이 이용 가능한 선택이다.

— 토드 로즈, ⟪평균의 종말⟫ 중


그리고 마지막 결론에 이르러 "교육을 바꾸라"라고 말하는데, 특히 고등교육 시스템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현재의 대학들은 앞선 시대로부터 물려받은 평균주의 시스템의 관리인 구실을 하면서 평균주의 시스템이 개개인보다 더 중요하다는 확신을 더욱 강화시키고 모든 교육과정의 표준화를 강요하고 있다. 우리 교육 시스템의 단점들은 오래 전에 자리가 잡혀 깊이 뿌리를 내리고 있는 이런 평균주의식 구조 때문이다.

— 토드 로즈, ⟪평균의 종말⟫ 중


그러면서 기존의 평균주의 시스템에서 학생 개개인을 중요시하는 시스템으로 탈바꿈시키기 위해 필요한 3가지 (현실적?) 대안을 제시한다. 앞서 언급된 3가지 원칙에 대한 대응이라 할 수 있는.


1) 학위가 아닌 자격증을 수여하자! (학위 시스템 혁신)

2) 성적이 아닌 실력으로 평가하자! (성적 시스템 혁신)

3) 학생들에게 교육 진로의 결정권을 허용하자! (자율 결정형 교육)


교육계에 몸담고 있는 분들, 아니 비단 교육계가 아니라도 교육과 연관되어 있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든 한번쯤은 거들떠 볼만한 조언 아닌가? (나는 교육 분야를 잘 몰라서 이 조언들이 얼마나 값진 조언들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이 책의 판매부수로 가늠컨대 값어치 있는 조언임에 틀림없어 보인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이 책이 별로 와닿지가 않았다. 도대체 요즘 같은 개인 중심의 세상에 누가 순진하게 아직도 평균주의를 곧이 곧대로 믿을까 싶었고 교육 문제의 모든 원인을 죄다 “평균“ 탓으로 돌려 억지로 몰아 붙인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었다. 마치 평균만 아니었으면 이 세상은 지금쯤 유토피아라도 되었을 것처럼. 녹녹찮았을 저자의 인생 역정과 그 과정에서 겪었을 세상에 대한 분노가 책에 고스란히 녹아든 것 같기도 했고.

정말 그럴까? 평균이 사라지고 개개인의 세상이 오면 우리는 정말 지금과는 완전히 다른 세상에서 행복하게 살 수 있을까? 좋은 학교 가고 좋은 직장 좋은 직업 가지려는 건 나 좋자고 나 잘 살기 위함이데 그걸 굳이 평균주의 때문이라 말하는 건 신포도 같은 핑계이자 궁색한 변명 아닐까?


이 책에서 저자는 2가지 가정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첫째, 세상은 평등하다(해야 한다). 둘째, 세상의 모든 재능(사람)은 다 평등하고 똑같이 중요한 가치가 있다.


하지만 우리가 살면서 느끼다시피 세상은 반드시 그렇게만 돌아가는 건 아니지 않는가.

직업선택카드


오래된, 그러나 여전히 인기있는 보드게임인 "인생게임"에는 직업선택카드라는 게 있고 그 때 직업은 학위가 꼭 필요한 "학위 필수 직업"과 학위가 없어도 가질 수 있는 직업으로 나뉜다. 이 게임을 해 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직업은 게임에서 승리하는데 있어 매우 중요한 요소다. 그래서 악착같이 좋은 직업카드를 골라야 한다.


쥬토피아에서는 토끼도 경찰을 할 수 있고 나무늘보도 관공서 직원이 될 수 있겠지만 현실에서는 아무리 가벼운 코끼리라고 해도 원숭이보다 나무를 더 잘 탈 수는 없다. 그런데 우리는 종종 나무타기 말고는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는 생존의 순간에 서기도 한다. 마치 인생게임에서 "기계공" 카드를 골랐을 때처럼.


평균이 없던 오래 전 과거에도 우리 인간은 사람을 분류했고 이런저런 기준을 들어 줄 세우기를 해왔다. '에니어그램' — 인간의 유형을 머리/가슴/배에 근거하여 9가지로 나눔 은 고대로부터 있어 왔고 재능이 있건 없건 칼솜씨 하나만으로 생사를 넘나드는 싸움을 벌여야 했으며 조선의 선비들은 오로지 과거를 보러 한양길에 올랐다.


자, 이제 세상은 변해 ‘평균의 시대’가 가고 완전 개개인 맞춤의 시대가 왔다 하자. 맞춤형 냉장고와 에어컨이 철수의 특성을 온전히 파악하고 넷플릭스나 구글의 인공지능이 영희에게 깔맞춘 맞춤형 콘텐츠와 서비스를 제공하는 세상이 온다 한들 달라지는 게 있을까? 누군가는 또 어떤 기준에 의해 나눠지고 서열 매겨지고 차별 받지 않을까? 평균이라는 개념이 세상에 고개를 내밀기 훨씬 전 그 옛날 세상이 그랬던 것처럼.


'평균'이 있고 없고 마찬가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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