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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순석 Jul 10. 2024

미리 정해진 커리큘럼 없이 배우는 모습

커리큘럼 없이 배운다는 것이 언스쿨링의 가장 큰 특징이다. 그래서 ‘커리큘럼 없이 배우기’란 언스쿨링의 다른 말이라고도 할 수 있다. ‘공교육이 미리 정해놓은 교육과정’이라는 것에서 벗어나면, 교육과 배움이 어떻게 달라질 수 있는지를 생각해볼 기회가 되면 좋겠다.


커리큘럼 없이 배우면 배움이 좀 더 실제적이고 재미있다. 여기서 실제적이라는 것은 우리가 실제 삶에서 마주치는 일종의 탐구할 만한 주제들의 모습들과 더 닮았다는 것이다. 보통은 “프로젝트형” 수업에 참가해야 경험할 수 있는 접근법이다. 그 접근법은 매우 자연스럽게 학제적이며 이슈 중심의 접근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한 언스쿨러가 만 7-8세 경에 했던 몇 가지 활동들이 어떻게 두 가지 이상의 과목을 합쳐놓은 유형인지를 살펴본다.


그림을 그렸는데 필리핀에서 어느 해에 겪은 폭풍을 묘사하고 있다. 즉, 세계지리, 과학(기후 및 날씨), 미술의 조합이다. 둘째, 남한과 북한이 언제 어떻게 갈라졌고 둘이 어떻게 다른지, 약간의 설명을 첨가한 그림을 그렸다. 지리, 역사, 그리고 다시 미술의 조합이다. 또 다른 경우에는 역사와 문학의 조합인데, 미스터리/범죄를 해결하는 가상의 아이들 그룹(‘광명단Gwangmyeong Squad')의 역사를 썼다. 한국 현대사의 주요한 흐름을 약간 의식하면서, 그 그룹에게는 몇 년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시간의 흐름에 따라 몇 장면을 그린 것이다. 마지막으로, 기후변화에 대응을 촉구하는 플래카드를 직접 그리고 쓰고, 그것을 가지고 시위에 참여하였다. 사회와 과학의 조합이다.


이렇듯 과목에 구애받지 않는 활동이 더 재미있는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그런데 우리는 왜 학교에서 과목별로 배울까? 그것은 과목별로 시간을 배정하고 그 과목별로 교사를 육성하는 것이 국가 교육 시스템의 입장에서 용이하기 때문이다. 그 과목들의 구분이 학습자 입장에서는 원래부터 중요한 것이 아닌 것이다. 물론, 그 구분이 아무 근거 없이 된 것은 아니며 학문의 영역을 반영하는 것이지만, 학습자의 입장을 가장 우선에 두고 이루어진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커리큘럼으로부터 자유로워지면 그런 구분에 큰 제약을 받지 않을 수 있다. 그리고 그런 방식이 훨씬 자연스러운 지적 프로젝트들이며, 삶에서 마주치는 실제 이슈들을 닮아있다. 그래서 훨씬 재미있다. 작위적이지 않고, 교실 밖으로 나가면 의미 없어지는 그런 배움이 아니기 때문이다. 삶을 살면서 궁금해서 배우게 되기에, 실제적이고 재미가 있는 것이다. 


커리큘럼 없이 배우는 방식의 두 번째 특징은 학습자가 자기 속도대로 배울 수 있다는 것이다. 학교에서는 커리큘럼을 집행하는 데에 있어서 그 대상으로서 ‘평균적인’ 아이들을 상정해 놓고 그 아이에게 맞는 수준으로 가르치려 시도한다. 집단에게 전달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대부분에 아이들은 평균적이지 않다. 통계적으로 다른 ‘지점’들에 비해서 ‘평균’ 가까이에 가장 많은 아이들이 몰려 있을 뿐이다. 그래서 다른 ‘수준’에 비해서 평균 수준에 맞추는 것이 가장 ‘덜 비효율적’인 것일 따름이다. 고육지책이지 상책이 아닌 것이다.


쉽게 말해 어떤 아이들은 빠르고 어떤 아이들은 느리다. 빠른 아이는 쉽게 지루해 지고, 느린 아이들은 반대로 무기력을 배운다. 빠른 아이의 예시는 『준규네 홈스쿨』의 준규의 사례를 생각하면 된다. 요점만 이야기 하고 실제로 적용해보는 활동이 적절할 학생에게 “같은 내용을 여러 번 길게 설명해주”는 학교 수업은 단지 견뎌내야 할 만큼 지루한 것이었다. 그렇게 만드는 근본 원인인 ‘집단적으로 적용하는 커리큘럼’에서 자유로워지면 개개인들의 이해수준에 맞추어 배울 수 있다.


개별화의 효과가 아마도 가장 두드러질 영역 중에 하나가 수학일 것이다. 사칙연산만 시켜 봐도 알 수 있다. 어떤 아이들은 만 5세만 되어도 곱셈을 도입해도 될 정도로 빨리 발달하지만, 대부분의 아이들은 만 6세에 덧셈과 뺄셈도 쉽지 않다. 그런 아이들은 아이들의 내면이 더 성숙하기를 기다렸다가, 초등수학을 떼도 충분하다. 학교에 가지 않으면 시간이 넉넉하기 때문이다. 즉, 초등교육 6년 중에서 첫 3년을 수학은 거의 하지 않다가 나머지 3년간은 평일 하루 30분씩 수학공부를 하는 방식으로 충분히 그 과정을 소화할 수 있다. 


학교에서라면 싫든 좋든 해야 할 영역들에 시간을 쓰지 않으니, 그 시간을 이용해서 지금 재미를 느끼는 영역들에 충분한 시간을 쓸 수 있다. 예를 들면, 사회나 과학에 대한 사실 위주로 상당량의 지식들을 쌓고, 글짓기와 그림 그리기 등 표현 및 창작 활동을 많이 한다. 아이가 자신의 관심과 수준에 맞는 ‘과업’을 하고 있을 때 충분히 시간을 주고 방해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아이들의 지적 능력 프로파일은 각자 다르다. 그리고 각 학술 영역별로 그것을 배우기에 적당한 정신적 능력 또는 성숙의 정도도 다르다. 그것들을 모두 평균적인 아이라고 가정하고 가르쳐야 하는 커리큘럼 중심 교육에서 벗어나면, 두 가지 의미 모두에서 아이들은 자기 페이스대로 배울 수 있다. 자신에게 아직 안 맞는 것은 그것을 받아들일 준비가 될 때까지 기다리면서, 지금 재미있게 소화할 수 있는 것에 충분한 시간을 쓸 수 있는 것이다.  


커리큘럼 없이 배우기의 세 번째 특징은 불필요한 스트레스에서 해방된다는 것이다. 사실 두 번째에서 얘기한 자기 속도대로 배운다는 것도 이 얘기와 일맥상통한다. 즉, 자기 속도에 맞출 수 없게 되었을 때 받는 스트레스로부터 해방된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그것은 따로 얘기한 이유는, 오늘 얘기를 시험과 평가에 초점을 맞추기 위해서다. 무언가를 배우면서 경쟁과 석차로부터 상당한 정도로 자유롭다는 점을 말하고자 함이다. 


언스쿨링 하는 사람들은 표준화된 시험standardized test은 거의 보지 않는다. 그래서 그것이 주는 스트레스로부터 자유롭다. 경쟁과 석차가 없다는 것이다. 시험이란 교사의 다음 강의 준비를 돕는 기능(형성적 평가)을 할 수도 있지만, 지금으로서는 대체로 석차를 내거나 ‘선발’ 기능이 주로 활용된다. 그런 시험은 학습자들을 실제 배움 외적인 부분에서 스트레스를 크게 받게 한다. 또한 그 과정에서 ‘꽤 잘 하는’ 학습자들까지도 외적동기에 너무 익숙해지게 만든다.  


경쟁과 석차에서 학습자들을 해방시켜 주는 것이 주로 그 경쟁에서 보통 중/하위권에 이르는 사람들에게 특히 좋다고 느낄 수 있겠다. 그런데 상위권에 있는 이들에게도 이것은 해방이다. 상위권 학습자라고 하더라도 그 안에서의 비교로 인해서 패배주의를 갖는 이들이 꽤 많고, 그리고 정말 상위권 중에 상위권이 되어도 배움과 성장을 그대로 만끽하지 못하는 이들이 많은 것이다. 외적동기에 익숙해지면 외적 자극 없이는 배우려는 의지가 생기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언스쿨러나 홈스쿨러는 평가는 전혀 안 하는가? 그런 것은 아니다. 주변의 어른이, 그리고 스스로가 서술형narrative으로 특정 기간의 배움에 대해서 평가해 볼 수 있다. 말하자면 ‘세특’(생활기록부의 세부사항 및 특기사항)을 보호자나 (다른 어른 그리고) 학습자 스스로가 쓰는 것이다. 그런 것이 학습자의 성장을 보여주는 아주 의미 있는 자료가 될 수 있다. 그리고 물론 검정고시라는 평가도 있다. 그것이 필요할 때는 언스쿨러/홈스쿨러들도 준비를 한다. 스스로 배우는 습관이 잡힌 학습자에게 그다지 어렵지 않은 과업이다.


이렇게 언스쿨링 가정들의 생활상을 공유하고 보니 어떤 비판이 들려오는 듯하다. 어차피 사회가 경쟁적인데 교육이라고 별 수 있느냐는 반문이다. 물론 그런 부분이 있다. 게다가 때때로 경쟁은 좋은 도구가 되기도 한다. 최선을 다하게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쟁은 교육적이지 않다. 1등부터 꼴등까지 매기는 일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아이들까지도 그 등수에 자신의 가치를 매기는데 익숙해진다. 그 현상이 이제는 너무 익숙해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문제를 못 느끼는 것 같다. 아이들의 성장과정에서 경쟁을 최소화할 필요가 있다. 대부분의 경쟁이 교육적이지 않을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배움은 경쟁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배움은 올림픽이 아니다. 굳이 비유하자면 배움은 각자 등산 하는 것과 더 비슷하다. 올라가는 길도 다를 수 있고, 각자의 속도로 올라가면 된다. 커리큘럼에서 자유로워지면 그것이 가능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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