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화 된 나라들에서 학교 교육을 통해 한 사회의 교육을 국가적으로 구성하는 흐름이 본격화 된 것은 19세기의 일이다. 20세기 전반부에 두 번의 세계대전을 치르며 그 경향은 지속적으로 강화되었고, 학교가 아닌 방식의 교육방법은 대부분의 사회에서 비주류화 되었다. 그러나 발달 심리학자 피터 그레이가 지적한대로 가정과 마을에서 아이들이 비구조화된 많은 시간을 보내며 어른들로부터 그리고 또래로부터 자연스럽게 배우고 성장하는 것은 인류의 오랜 습관과도 같은 교육방식이었다. 즉, 인류에게 더 익숙한 교육방식은 학교가 아니라 학교 밖의 자기주도방식의 교육이라는 얘기가 된다.
그러한 자기주도교육의 사상이 역사적으로 어떻게 변하고 발전했는가를 매우 세세하게 따져보는 것은 이 장의 목적이 아니다. 그러나 현대 사회에서 그 사상이 본격적으로 실천되기 전부터 있었던 그 사상의 발전을 일별해보자면, 빠질 수 없는 이가 두 명이 있다. 19세기 전에는 장 자크 루소이고, 19세기 이후에는 존 듀이이다. 18세기의 프랑스 사상가 루소는 당시 유럽에서 시작되는 산업화와 도시화를 지켜보며 자연주의 철학을 발전시킨 이다. 그는 『에밀』 등에서 구조화되고 의무적인 교육이 가지고 올 폐해를 예고한 바 있다. 듀이의 사상은 실용주의와 경험주의로 대표되는데, 그의 교육사상은 ‘해보면서 배운다learn-by-doing’라는 현재까지도 많이 실천되고 있는 학습에 대한 접근법으로 잘 요약된다.
그들의 철학이 본격적으로 실천하는 이들을 만나게 된 것은 1960년대 이후이다. 그런 실천이 개인주의와 부유함을 다른 어느 사회보다도 더 깊이 향유하는 미국 사회에서 특히 많이 나타나게 된 것은 우연이 아니다. 어떤 철학과 사상이든 사회구조적 요소들의 변화로 인해 그것이 잘 받아들여질 국면이 있고 휴면기 같은 시기가 있기 때문이다.
아무튼 그런 사회적 배경에서 1960년대 미국의 교육자 존 홀트는 학교를 통해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방식에 심각한 문제를 제기하기 시작한다. 1967년 출간된 《How Children Learn (『아이들은 어떻게 배우는가』)》에서 특히 만 3세에서 9세 가량의 아동들이 말하기, 읽기, 쓰기, 연산, 예술, 신체활동들을 선생들이 없어도 잘 배우는 것을 세세히 관찰한 결과를 제시한다. 그것은 가르쳐야만 배울 수 있다는 당시의 상식에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그 외에도 여러 책들과 교육잡지를 발간하며 교육운동을 펼쳤으며, 미국의 홈스쿨링 인구가 느는데 크게 기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