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어디 대학교 나왔어?”
“엄마는 어디 대학교 나왔어?”
학교에서 돌아온 아이가 눈을 빛내며 물었다.
“아.. 엄마는 대학교 안 다녔어.”
잠시 멈칫했지만 사실대로 이야기했다.
그리고 당연한 질문이 이어졌다.
“왜?”
“… 대학에 갈 돈이 없었어.”
기억은 고3 시절 어느 날로 돌아갔다.
아빠는 여자가 무슨 공부냐며
졸업하면 취직부터 하라고 엄포를 놓았다.
형편은 넉넉하지 않았고,
공부해야 할 동생도 둘이나 더 있었다.
울며불며 안된다고 버텨보다가,
첫 학기 등록금만 내달라고 매달린 날도 있었다.
하지만 그런다고 쉽게 달라질 상황은 아니었다.
대학에 가지 못한다는 것을 어렵게 받아들였고
나는 졸업과 동시에 취업했다.
대학졸업장 없이 취업한 회사생활이 쉬울 리 없었다.
같은 일을 해도 월급은 달랐고,
손님이 올 때마다 커피 심부름은 늘 내 몫이었다.
“넌 시키는 일이나 해.”
노골적인 무시와 차별도 견뎌야 했다.
학교에서는 겪지 못했던 불평등한 사회는
나를 당황하게 만들었다.
용감하게 내디딘 첫 직장이었지만
1년을 채우지 못하고 결국 사표를 냈다.
하지만 그만둔다고 달라지는 건 없었다.
그 후로도 대학 졸업장은
취업을 하려 할 때마다 두고두고 내 발목을 잡았다.
어디 회사뿐일까.
사람들과 모인 자리에서 대학이야기가 나오면
나는 그저 말없이 웃으며 듣고만 있었다.
대학을 나오지 않았다고, 그래서 잘 모른다고
그 한마디를 꺼낼 용기조차 없었던 것이다.
그렇게 마음속에 자리 잡은 자격지심은
살면서도 가끔 술로, 눈물로 쏟아져 나왔다.
그리고 어느 날,
아이의 친구 엄마들을 만나며 나는 조금씩 달라졌다.
대학을 나와도 평범하게 아이를 키우는 엄마가 되고,
여전히 워킹맘으로 회사생활에 치이고,
가슴에 상처하나쯤 품고 살아간다는 걸 알게 된 순간.
내가 만났던 대학졸업장을 가진 그들이
나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걸 깨달은 순간.
그제야 학벌이 인생을 결정짓는 전부는 아니라는 걸
천천히 받아들이게 됐다.
나는 이제 작은 사업체를 운영하며
안정된 삶에 접어들었다.
지나간 시간을 담담하게 털어놓을 수 있는
마음의 여유도 생겼다.
그래도 그 시절 겪었던 슬픔과 좌절의 마음들은
내 아이에게만큼은 물려주고 싶지 않다.
슬픈 듯 미안한 듯 모호한 표정을 짓고
나를 바라보는 아이에게
나는 어떤 말을 해줘야 할지 잠시 망설였다.
“네가 커서 대학을 나오지 않아도
스스로 즐겁게 할 수 있는 일을 찾고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다면
굳이 대학에 가지 않아도 괜찮아.
하지만 네가 정말 하고 싶은 일이 생겼을 때
대학은 네가 더 넓은 세상을 볼 수 있도록
도와주는 길이 될 수도 있어.”
아이가 내 말을 얼마나 이해했는지는 알 수 없다.
아니, 아직은 이해하지 못해도 괜찮다.
이제 초등학교 3학년인 아이에게
대학이 꼭 필요하다고도,
그렇지 않아도 된다고도
쉽게 말해줄 수는 없으니 말이다.
아이는 언젠가 스스로 답을 찾게 될 것이다.
그러니 그때의 선택과 마음은
그때의 아이에게 맡겨보는 수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