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가 지나면 만으로 마흔이 된다! 나이를 의식하고 살고 있지는 않지만 문득 생각이 났을 때 깜짝 놀라긴 했다. 많다면 많은 나이고 아직 시작이라면 시작일 수도 있는 나이지만 아무튼 더 이상 어린(?) 나이는 아니니까 조금은 책임감 같은 것이 느껴지긴 한다.
주변의 같은 나이의 또래나 친구들과 비교해보면 나는 한참 늦되다. 어쩌면 10년, 어떤 면에서는 20년 정도일 수도 있다. 사회생활을 늦게 시작한 건 아니지만 나 자신에 대해서도 세상에 대해서도 지독히도 이상주의자였던 탓에 사람이건, 상황이건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받아들이는 법을 늦게 배웠다.
'있는 그대로를 인정하고 그대로 받아들이기' 시작할 수 있었던 건 30대 중반도 넘어서 였다. 그래서 나는 아주아주 혹독한 시행착오의 시간을 20대 초반부터 그렇게도 오래 겪어왔던 것이다.
'있는 그대로의 나'와 '내가 되고 싶은 나'를 구분하지 못했고 그래서 늘 나에게 실망했었다. 기대 속의 내 모습과 다른 완전하지 못한 나를 보면 자책하고 도망치기를 반복했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하면 그때의 나도 못나기만 했던 것은 아니었는데 왜 그렇게도 나를 다그쳤는지….
그래도 지금은 그 시간들을 후회하거나 또 자책하고 있지는 않다. '내가 원하는 나'와 '그냥 그대로의 나' 사이의 그 커다란 간극 덕분에 한편으로는 내가 원하는 모습이 되려고 노력했고, 한편으로는 그냥 내 모습을 언젠가부터 있는 그대로 인정해주게 되었고, 또 한편으로는 그 시절의 안쓰러웠던 나를 안아줄 수 있게 되기도 했다.
가장 힘들고 고민했던 시기는 직장을 그만두고 인디펜던트 워커로 살아가겠다고 마음먹었을 때였다. 독이 바짝 올라 회사를 관뒀을 땐 뭐라도 할 수 있을 줄 알았고 무서울 것도 없었다. 하지만 그건 그저 내 감정의 상태였을 뿐이다. 실제로 나는 '뭐든 할 수 있다.'는 감정만 앞섰지 아무 준비도 되지 않았다.
그렇다고 적당히 쉬고 적당히 괜찮은 회사에 들어가서 다시 또 똑같은 회사생활을 반복하고 싶지는 않았다. 대안도 없었고 나 자신에 대한 통찰도 없었지만, 그 상태로 다시 직장생활을 하는 게 답이 아니라는 것은 확실했다. 아주아주 오랜 시행착오를 겪어온 감각이었던 같다. 일단 뛰어들고 보는, 매번 같은 실수를 반복하던 바보였지만, 드디어 덥석 물기 전에 생각이란 걸 시작한 것이다.
적당한 답에 타협하지 말고, 정말 진심으로 끝까지 고민해보라고 처음으로 나에게 시간을 주었다.
나는 늘 시간이 없었다. 빨리 답을 정해야만 했다. 망설이고 고민하는 것을 함께해줄 사람도, 기다려줄 사람도 없었다. 그러니 아무것도 모르던 시절, 내가 좋은 선택을 하지 못했던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다.
그렇다고 누굴 탓할 마음은 없다. '진심으로 고민하기' 시작했을 때 신기하게도 더 이상 나를 탓하지 않게 되었다. 오히려 아무것도 모르면서 혼자 선택해야 했고 책임져야 했던 외롭고 힘들었을 나를 그제라도 다독여주고 싶었다. 비록 그 결과가 좋지 않았어도 너는 용감했고 최선을 다했다고.
진심으로 하는 고민에는 시간이 필요하다.인생에서 처음으로 고민해볼만큼 고민해보라고 그냥 나를 놔두었다. 어떤 날은 스스로에게 답을 다그치기도 했고, 어떤 날들은 고민 중이라는 사실도 잊고 살기도 했다. 그렇게 3년. 긴 시간이 지났고 스스로 알 수 있을 정도로 분명하게 대답이 정리되었다.
결과적으로 다시 회사에 돌아간다는 답이었지만 내 안에서 찾은 '이유'는 그전과는 전혀 다른 것이었다. 누구에게 인정받기 위해서도 아니고, 누구를 위해서도 아니고, '나 자신을 위해 일한다는 것'. 그게 달라졌다.
어쩌면 요즘 MZ세대들에게는 그게 모든 일의 기본 전제일지도 모른다. 또 사회생활을 좀 하면서 자연스럽게 그런 결론을 얻은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하지만 난 앞서 말했듯이 아주아주 늦된 사람이라 이렇게 요란법석스러운 과정을 거쳐 이 답을 얻었다.
예전 같으면 이렇게 늦된 나를 또 탓했겠지만 지금은 그저 웃을 뿐이다. 이게 바로 나라는 사람이라서. 나이 답지 않게 늦되서 어이없고 웃기고 귀엽고 사랑스럽다.
불꽃놀이처럼 한순간 찬란하기도 했고 외롭고 쓸쓸한 기억도 있지만, 대체로 기특하게 잘 지내왔던 시간들. 그 시간들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그 시간과 기억 위에 새로운 이야기들이 쓰이는 시작을 기대한다.
안녕히 보내는 것은 30이라는 숫자일 뿐. 그것도 아쉽거나 사무치지 않는 마음으로. 가볍게 안녕히!
생일을 의식한 건 아니지만 지난주에는 머리를 짧게 자르고 새 운동화를 샀다. 남들에 비해 많이 늦되지만 씩씩하고 밝은 나에게 주는 생일 선물이라고 해야겠다.
하지만 아직은 빼박으로 '마흔'이라는 게 부담스러운 느낌이라, 앞으로는 나이를 세는 걸 그냥 잊어버릴까 싶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