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부터 엄마는 계속 나에게 김치냉장고를 사라고 성화다. 1인 가구가 무슨 김치냉장고냐고 해도 매년 김장철이 다가오면 또다시 왜 김치냉장고가 꼭 필요한 가전인지 잔소리가 시작된다. 엄마에게는 김장 김치를 잘 보관해서 새김치를 담을 때까지 맛있게 먹는 것이 그렇게도 중요한 미션인가 보다.
엄마를 좋아하고 엄마를 닮았고 엄마의 스타일을 모두 존중하지만 나도 이만큼 나이를 먹으면서 어느새 나만의 삶의 방식이 생겼다. 엄마와 같이 산 시간보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내 방식대로 산 시간이 훨씬 길어졌으니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올해는 왜 그런지 엄마가 봄부터 김치냉장고 타령을 시작했다. 아무리 말해도 내가 사지 않으니 엄마가 사서 보내주겠다고. 입씨름하는 것도 지쳐 이제 웃음이 날 지경이었다. 왜 그렇게까지 엄마에게는 김치가 중요한 것인가!
엄마는 김치 냉장고에는 김치만 들어가는 것이 아니고 각종 곡류와 채소와 과일도 넣을 수 있다며 또 김치 냉장고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무엇보다 일반 냉장고는 자주 문을 여닫기 때문에 김치가 빨리 익어버리고 그러면 결론적으로 김치가 맛이 없어진다는 것이다.
엄마의 주장에 나는 '김치가 익어도 괜찮다'는 주장을 펼쳤다. 나는 신김치를 좋아하며 신김치로 김치찌개, 김치전, 김치볶음밥, 묵은지찜 등 여러 가지 요리가 가능하다고 응수했다.
이것도 몇 년째 계속되는 대화 패턴이다. 여기서 엄마가 더 이상 잔소리를 하지 못하게 하려면 비장의 카드를 꺼내야 한다. 냉장고가 작아야 식재료를 쌓아놓지 않을 수 있다는 논리이다.
"엄마, 냉장고가 크고 김치 냉장고가 있다고 해서 정말 신선한 음식을 먹을 수 있을까요? 필요한 재료를 그때그때 사서 먹고 새로 사야 신선한 거지, 냉장고에 오래 보관하는 건 신선하다고 할 수가 없어요. 엄마 냉장고를 생각해 보세요. 전쟁이 나도 1년은 먹을 수 있을 만큼의 식재료들이 가득 차 있잖아요. 그것만 다 먹어도 1년 치 식비는 절약할 걸요?"
엄마를 공격할 생각도 없고 비아냥거리는 것도 아니다. 다만 엄마가 내 생각과 삶의 방식을 인정하지 않고 자꾸만 설득을 하려고 하니 결국에는 이렇게 말하게 된다.
"게다가 나는 점심이나 저녁을 밖에서 먹고 올 때도 많으니까 냉장고에 뭘 많이 보관할 필요가 더더욱 없어요."
그러면 결국 엄마도 "그래, 그건 그렇지." 하며 물러나신다.
그래도 아마 늦가을쯤 되면 또 김치냉장고의 필요성을 다시 들고 나오실 것이다.
주방에 대형 냉장고 1개, 다용도실에 김치냉장고와 두 번째 대형 냉장고, 그리고 집 마당에 냉동과 냉장이 분리된 저온 창고까지 가진 엄마에게 지금의 내 냉장고는 소꿉 살림 같을지도 모르겠다. 8년 전쯤 중고 가전 상점에서 산 내 냉장고는 수박 한 통이 다 들어가지 못하는 크기다. 수박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그 점은 정말 아쉽지만 요즘에는 수박을 꼭 한통씩 사야 되는 건 아니니 그것도 치명적인 단점이라고 볼 수는 없다. 그 외에는 정말 생활하는 데 아무 불편함이 없다. 오히려 큰 냉장고나 김치냉장고가 있으면 좁은 집에 둘 곳도 없다. 그리고 그 작은 냉장고에서도 종종 채소들이 썩어나간다. 뭘 많이 사놓지 않으려고 하는데 그래도 제때제때 먹지 못한 것들은 상해서 버릴 때가 있다. 그럴 때면 다 먹지도 못할 음식을 사서 쌓아둔 욕심에 대한 부끄러움과 죄책감을 느낀다.
다른 살림살이들도 마찬가지지만 심플하게 미니멀하게 살자고 다짐 다짐을 해도 집안에는 옷가지와 살림살이들이 어느새 늘어간다. 냉장고도 그렇다. 꼭 필요한 것만 그때그때 필요한 만큼 사자고 해도 어느새 이것저것 쌓이고 존재조차 잊어버리고 있다가 결국엔 버리는 것들이 나온다.
나름 소비에 대한 철저한 규칙을 지키며 살고 있는데도 말이다. 꼭 식재료뿐만 아니라 어떤 것이든 소비하기 전에 나는 두 가지 단계를 거친다. '그것이 꼭 필요한 것인가 3번 생각하고 사기'와 '내가 사고 싶은 물건을 대체할 것이 있는지 찾아보기'이다. 3~4년 전 신용카드를 없애면서 만들었던 내 나름의 소비 원칙이다.
두 단계를 거쳐 필요하다고 결론을 내리고 장바구니에 담았어도 가급적 바로 당일에 결제하지 않으려고 한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다시 '그것이 정말 꼭 필요한 것인가?'라는 처음 질문에서 내가 잘못된 대답을 했을 때도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소비 원칙을 정한 건 먼저 미니멀 라이프를 살겠다는 생각에서는 아니었다. 프리랜서 시절, 고정된 수입이 들어오는 게 아니기 때문에 수입이 들어오기 전에 미리 예산안을 세우는 습관을 들였었다. 수입에 따라 생활하는 게 아니라 반대로 먼저 한 달의 예산안을 세워서 한 달을 살기 위해 나에게 꼭 필요한 돈이 얼마인지를 정리해두는 것이다.
그렇다고 나 스스로에게 너무 인색하게 예산을 세우지는 않았다. 무조건 안 먹고 안 쓰는 삶이 아니라 사람들을 만나고 취미 생활을 하고, 돈 때문에 매번 차선을 선택하지 않을 수 있는 범위.(그 경계가 애매할 때도 많지만) 그 안에서 예산을 세웠다.
아무 생각 없이 하던 소비들을 생각을 하고 실행하는 것만으로도 생활이 훨씬 정리되었다. 결국엔 기준이 남이 아니라 내가 되어야 한다는 것도 깨달았다. 친구 중에 누가, 내 나이 또래 사람들은 모두... 그런 식의 기준은 모호해서 계속 꼭 필요하지도 않은 소비를 부추긴다.
어제는 A친구가 인스타에 명품 가방을 올렸는데 오늘은 B친구가 유럽여행을 갔다면? 또 C가 차를 바꿨다면?
예전에는 그런 기준들 속에서 박탈감을 느끼기도 하고 내가 진짜로 원하는 것도 아닌 일에 큰돈을 쓰기도 했었다. 그러고 나서 '이건 별로네.' 하면서 허탈하기도 했는데 뭐 그것도 나름 큰 가치를 지불하고 얻은 경험이라면 그럴 수도 있다. 직접 해보지 않았으면 모르는 것들도 있으니까.
아무튼 지금은 다른 사람들의 삶의 모습이 내 기준은 아니다. 럭셔리한 호캉스보다 등산이 내 취향인 것처럼, 화려한 마카롱을 찾아다니는 게 아니라 봄엔 두릅과 주꾸미를 먹어야 하는 것처럼. 내가 좋아하는 것을 선택하고 누린다.
항상 내 작은 냉장고를 걱정하는 엄마한테도 늘 얘기한다.
냉장고가 작아도 제철 음식들은 잘 챙겨 먹고 있다고. 엄마가 봄 여름 가을 겨울 맛있는 제철 음식들을 많이 해줘서 때가 되면 생각나고, 생각나면 찾아서 먹는다고. 그러니 내 방식과 생각도 좀 존중해 달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