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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이피는섬 May 26. 2024

my literature teacher

짧은 소설 연재

"내가 목련나무를 뭐라고 부르는지 알려줄까?"


"뭐라고 부르는데?"


"하얀 발자국 나무."


"하얀 발자국 나무?"


"응, 목련 꽃잎이 떨어지면 그 꽃잎 하나하나가 아주 작은 발자국 같아 보이거든. 하얗고 커다란 꽃이 한꺼번에 가득 피었다가 어느 순간 보면 그 꽃잎들이 우수수 떨어져 버리잖아. 그럼 난 그렇게 생각했어. 바람이 부는 어느 봄날 밤에 나무 아래에서 아주 작은 사람이 오랫동안 서성였던 거라고. 오랫동안 누군가를 기다리다가 밤새 그렇게 많은 발자국을 남겼다고." 


"쓸쓸하네."


"어떤 봄에 내가 많이 좋아했던 사람이 있었어. 그럴 땐 모든 것에 의미가 생기잖아. 어느 날 꽃잎이 다 져버린 목련나무를 보는데 그렇게 오랫동안 서성인 작은 사람이 나 같았어. 다가가지도 멀어지지도 못하고 밤새 서성이다 그 무수한 하얀 발자국만 남긴 거지."


"인어공주야? 인어공주는 물거품으로 사라지고 너는 발자국만 남기고 사라지고?"


겨울은 잠시 동안 말이 없었다. 그저 걷기만 했다. 


"오랫동안 생각해 봤는데, 아마 시간을 되돌려도 나는 똑같이 그랬을 것 같아. 그게 결국 나라는 생각이 들어." 


겨울은 자기를 다른 이름으로 부르라고 했지만 난 그 이름을 부르지 않는다. 


겨울이란 별명을 내 마음대로 지어서 혼자 불렀다. 저 사람에게는 겨울이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오래전 봄날 나무 아래서 서성이던 작은 여자아이는 그렇게 오랫동안 서성이다 자기만의 겨울로 돌아갔을 것이다. 나는 왠지 그 모습이 눈앞에 그려지는 것 같았다. 바보라고 비웃었다. 그리고 바보 곁에 있어야겠다고 다짐했다.



한동안 나는 그 겨울이 언젠가 나에게 따뜻한 봄날의 햇살처럼 웃어주지 않을까 기대했었다. 


하지만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고 봄을 기대하던 나는 여름 동안 급한 바람처럼 화를 내다 그 곁에서 도망쳐버렸다. 



그 사람이 겨울 같아서 사랑했다는 건 오랜 시간이 지나서 알게 되었다. 

바보라서 곁에 있고 싶었다는 것도.   



나는 추운 봄을 함께 걸었던 날을 오래 기억했다.


유난히 추운 봄, 하지만 봄이었다는 걸 나는 왜 몰랐을까.



바람이 불던 추운 봄날 밤 겨울은 목련 나무 아래에서 오래 서성이다 뒤돌아갔고, 

변덕스러운 새봄은 봄 속에 잠시 머문 빛나는 겨울을 알아보지 못하고 지나쳐버렸다. 


봄이 올 때마다, 목련이 피고 질 때마다 마음속에 은유가 넘쳐나는 건 그런 이유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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