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레아 May 13. 2021

오더 내리면 돼

병원 일을 하다 보면 필연 또는 우연으로 마상을 입는 경우가 많다.


<병원 일을 하다 보면 필연 또는 우연으로 마상을 입는 경우가 많다> 이 문장을 써두고 생각이 오래 멈춰있었다. 차곡차곡 쌓여있던 마상들이 서로 자웅을 겨루고 있었기 때문이다.


마상(마음의 상처)  케이스 스터디 #1


통증 클리닉 시술을 하러 수술실에 들어온 마취의가 나에게 물었다.

- 리도카인(국소 마취 제제)이 필요한데 혹시 주실 수 있나요?


평상시에도 예의 바르고, 좋은 인상을 주었던 사람이라 말투도 친절했다.

- 그럼요.


하고 돌아서서 한 걸음 떼었을까? 그는 옆에 있던 후배 의사에게 이렇게 말했다.

- 네가 갈 필요 없어. 그냥 이렇게 오더 내리면 돼.


돌아서서 듣고 있는 나는. 내가 하는 일이 맞기는 하지만 나빠지는 기분을 걷잡을 수가 없었다. 뭔가 굉장히 낮은 신분의 사람이 된 것 같았다.


사전에서 'order'를 찾아보면 동사로서의 쓰임은 다음과 같다.


1. 명령(지시)하다

The  company was ordered to pay compensation to its former employees.

그 회사는 이전 직원들에게 보상금을 지급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2. (상품을) 주문하다, (서비스를) 부탁하다

These boots can be ordered direct from the manufacturer.

이들 부츠는 제작사에 직접 주문할 수 있습니다.


'그는 2번의 뜻을 빌어 말을 하고, 실제로는 1번의 뜻으로 '명령' 내린 것이로군!

그리고 데모를 통해 후배에게 몸소 보여주고 본질은 '명령'이라는 것을 (잔인하게 나를 돌려세워두고) 가르치고 있군그래.'

 

사전에 '하다'라고 되어있는 동사를 마치 천부인권을 모르는 전제군주시대의 고대인들처럼 '내리다'라는 동사로 바꿔 말하는 것으로 그들이 가지고 있는 의식 수준을 말해주고 있었다. 타인을 향했던 자신의 기준이  삶의 다른 장면에서 자신을 정확히 관통하는 열등의 기준이 될 수도 있음을 상기하길 바란다.

작가의 이전글 이야기 식당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