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토지>와 문구컬렉션 #2 책갈피
갈피
순우리말. 겹겹이 쌓인 것 사이의 틈, 또는 그 안에서 방향이나 실마리를 찾는 지점.
도무지 갈피를 못 잡고 있는 요즘.
이전에는 무엇에라도 기대, 시간을 추진해 왔는데 요즘은 도무지 갈피를 잡지 못하겠다.
한 3년 간은 일 년 버킷리스트를 만들고, 기록을 하고, 모둠에 들어가 영어공부를 하고, 달리기를 하고, 책을 읽고, 토론을 하고, 다이어리를 쓰고, 체크리스트를 만들어 하나씩 쳐내려 가며 시간을 추진한다고 생각했다. 오늘도 알차게 살았다. 오늘도 생산적이었어.
같은 시간을 보내도 요즘은 그런 느낌조차 없다. 릴스를 안 보고 책을 읽어도, 집에서 빈둥대는 대신 도서관에 가서 공부를 해도, 술 마시는 대신 요가수련을 해도. 왜 다시 공허한 나로 돌아올까?
- 토지 8권 1차시 독서토론 (8권 16장 강원도 인삼장수~ 제5편 2장 사춘기)
황막荒漠 하다는 것 (제5편 세월을 넘고 1장의 제목)
거칠고 아득하게 넓다. 거칠고 을씨년스럽다. - 의 뜻을 지닌 이 형용사가 독서토론을 하고 나면 어떻게 다가오는지 느끼는 이 순간이 아마 ‘갈피의 순간’ 이 아닌가 싶다. 제가끔 한자를 좋아하시는 선생님들께서 파자하여 알려주시는 뜻은 사전에서 끓는 물에 5분 만에 뽑은 동전육수 맛이 아니라 파뿌리, 디포리, 국물멸치, 갖은 향신채를 포옥 달여 뽑아낸 담백하고 깊은 맛을 알려주시는데 오늘의 황막하다는 말이 그 깊은 맛이다.
85.
맷돌을 가슴에 얹어놨다기보다 아까 자리 속에서 느낀 그것, 끈적끈적하고 물컹물컹한 것, 문어 다리가 목과 양쪽 손목에 휘감기어 흡반이 피를 빨아대는 것처럼 죄어드는 느낌.
아이들을 유모 젖 아닌 제 젖으로 기르는 서희, 그 끈질긴 종족보존본능에 길상은 넌더리를 칠 때가 있다.
이 느낌은 길상이 박경리 작가님이 늘 눈부시고 아름답게 표현하는 그의 아내 서희와 이제 생후 육 개월 된 둘째 아들 윤국과 함께 잠을 자다 죄여 온 그의 마음표현이다.
모유수유에 대한 넌더리? 유축기도 없고, 젖 말리는 약도 없던 그 시절 꾹꾹이 아버지는 유방압통이 뭔지는 알까? 돌아보면 내 가슴이 가졌던 가장 행복한 시간은 모유수유였다. 숨이 넘어갈 듯 달게 젖무덤에 코를 박고 힘차게 빨던 갈피에 잠시 콧구멍을 떼고 쉬던 꺽꺽대는 숨소리. 그 순간 꺽꺽 힘차게 빠져나가는 둔하고 묵직하게 찌릿찌릿했던 통증.
황(荒)” 자의 **풀초(艹)**는 새순이나 풀이 돋아나는 모습을 뜻하고, 아래 있는 황(亡) 자는 망하다, 잃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 그래서 “황막하다(荒漠하다)“는 망해버린 듯 척박한 땅 위에도 여전히 새순이 나려는 기운이 남아 있는 상태, 즉 완전히 끝나버린 것 같지만, 그 안에도 다시 피어날 가능성이 있다는 뜻이라고 알려주셨다. 한자의 뜻만 보자면 ‘척박하고 생기 없는 상태’를 뜻하지만, 한자 구성으로 보면 역설적으로 ‘회복의 가능성’이나 ‘희망의 싹’이 숨어 있는 셈이다.
荒漠의 한자풀이에 답하여 꽃마리 선생님께서 하동 두양리 은행나무를 소개해주셨다. 고려시대 때부터 900년간 하동 두양리에서 자생해 온. 나무를 보러 가는 것 대신 알현한다는 말을 쓰는 그 나이 많은 은행나무가 3월 말 화재로 까맣게 타버렸는데, 4, 5월 따뜻한 봄바람에 새순이 돋은 모습이 풀이해 주신 황막한 모습과 닮았더란 것이다.
길상은 어려서부터 스님 feel이라 가장 불쌍한 중생을 구제하는 역할을 도맡아 왔다. 작은 새에서부터 옥이, 가스댁, 서희까지의 여정. 그런데, 지금 자신을 조여 오는 가족에 대한 이질감, 그다지 절실하지 않은 조국에 대한 인식, 자기에 대한 생각들로 가득 차 이제 가장 불쌍한 중생의 포커스가 자신에게 향함을 나는 기뻐하였다. 이제 길상의 황막한 마음에도 새순이 돋는구나.
오늘 나의 한 문장
황막한 길상의 마음에 까맣게 불타버린 두양리 은행나무의 초록 새순을 생각하며, 그의 마음에 자신을 돌보는 새순이 돋아남을 바라봅니다.
독서 모임이라는 것은, 어쩌면 첩첩이 겹쳐진 시간의 흐름 속에서 하나의 ‘갈피’를 만들어내는 일인 것 같다. 너무 바쁘고 힘들게 살아가느라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달리면서도, 매주 100페이지를 읽고 가름닻을 내린다. 거기엔 사무치게 가난해, 조금 전까지만 해도 짓눌리듯 무거웠던 내 대출 빚은 신명 나게 부른 각설이 타령이었고, 회사에서 느끼는 갑질의 울분은 경상도 말로 시장스러운 농담이었다. 함께 울며 웃다가도 그들의 준열한 삶을 들여다보며 공간감각을 잃었던 삶의 좌표에 쾌활하고 진지한 내비게이션을 다는 책갈피가 우리의 독서토론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