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즈 #절 방석 #참선 #참선 매뉴얼 #테오도르 준 박
템플 스테이의 여운을 간직하고 싶어서 퇴소 후에 전등사의 죽림다원에서 작은 인센스(향) 홀더를 샀다. 엄지발톱만 한 크기에 도자기로 만든 꽃 모양 홀더라서 연꽃처럼 소박하고 정갈하다. 집으로 돌아와서도 108배와 참선은 꾸준히 하고 싶었다. 미니멀리즘 추구자라 템플 스테이 굿즈는 인센스 홀더로 마무리하려고 했는데, 인간사 모든 활동이 장비빨이듯 절에서 사용했던 직사각형의 푹신한 절 방석이 아른거렸다. 사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으나 108배가 작심삼일로 끝나버려 절 방석을 볼 때마다 스스로를 괴롭힐까 봐 고민이 되었지만 내 손가락은 벌써 검색에 열을 올리고 있었다.
전등사에서 썼던 절 방석처럼 이마가 닿는 부위에 산스크리트어로 '옴' 자수가 놓인 방석이 갖고 싶었다. 템플 스테이에서 이 글자를 보고 요가와의 연결고리를 찾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성품의 자수는 대게 할머니 베개에 수놓아져 있는 꽃자수 느낌이라 아무것도 없는 심플한 베이지색 방석으로 골랐다. 스님께서 절 방석에 이마가 닿는 부분에 자수가 있는데 그 이유는 여러 사람이 쓰는 공용품이다 보니 이마와 발이 닿는 부분을 구분하기 위해서 라고 하셨다. 나는 개인용품이니까 없어도 문제가 없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아뿔싸!
위아래는 물론이고, 앞판과 뒤판을 구분하지 않고 썼는데, 까슬한 면직 방석이 방바닥 먼지와 머리카락을 스펀지처럼 흡수하고 있었다. 어쩐지 그럴 리가 없는데 방바닥이 깨끗하더라.
유튜브에서 '108배 참회문'을 틀어놓고 절을 하면 딱 30분이 걸린다. 요가원에서 하던 90분 수련에 비할 바는 아니나 수업이 없는 요즘은 요가를 대신해서 몸을 움직이고 있다. 108배를 한 뒤 곧이어 절 방석의 1/3을 접어 엉덩이 부분을 높이고 결가부좌로 앉으면 최고의 명상 방석이 된다. 나는 좌골이 특히나 툭! 튀어나온 뾰족 엉덩이라 맨바닥에 앉지 못해 방석에 예민한 편이다. 보통 스펀지의 방석은 10분만 앉아도 쿠션이 다 꺼져버려 있으나 마나 하여 평소에는 욕창방지 방석에 앉을 정도이니 말이다. 절 방석은 두께가 7cm 높이이고, 폭 꺼지지 않는 도톰한 솜이라서 내 좌골 드릴이 뚫어버릴 기세로 덤벼들어도 무사하다. 엉덩이 높이를 높이면 결가부좌나 반가부좌로 앉기 편하고 무릎이 바닥에 닿지 않고 푹신한 방석 위에 놓일 수 있어 아프지 않게 참선 자세를 잡을 수 있다.
템플 스테이 이후 불교가 궁금해져 관련 책을 여러 권 읽다가 테오도르 준 박 의 <참선 1.2>를 읽게 되었다. 언젠가 서점에서 표지를 본 기억도 났다. 책장을 넘기다 보니 이분은 나의 인터넷 요가 선생님 '로리 언니'의 프라나 야마 수업에서 만난 '환산 스님'이셨다. (요가를 처음 시작할 때, 로리 언니의 블로그를 보고 요가의 이론과 역사를 재미있게 접했고, 자유분방한 수련자 '로리 언니'의 멋있음에 뿅 반해 내 멋대로 '나의 인터넷 요가 선생님'이라 칭하고 있다.) 단 한 번을 보았을 뿐인데도, 왠지 스님의 이야기에 더 호기심이 가서 뚝딱 읽어 내려갔다. 30년을 스님으로 사신 분이셨지만, 그 어떤 거치레 없이 담백하고 솔직하게 자신의 수행 생활을 말씀해주셨고, 그 속에서 느꼈던 참선의 중요성을 조목조목 따져가며 이해할 수 있게 설명해 주셨다. 템플스테이에서 가볍게 배워 수행해 본 참선이 내 몸에 고요함과 집중을 불러일으켜 좋은 감정을 가지고 있다가 이 책을 만나서 시너지가 생겼다. 책장을 다 덮기도 전에 알라딘에서 <참선 1,2> 후속작인 <참선 매뉴얼>을 구매했다. 언제나 구매는 빛보다 빠르게ㅋㅋ.
<참선 매뉴얼>은 언제 어디에서나 다양한 방식으로 참선하는 방법에 대해 기술하고 있고, 눈과 마음이 편안해지는 일러스트로 이루어져 있다. 책의 뒷부분을 읽으면서 나는 한 달 남짓밖에 남아있지 않은 복직에 대한 두려움과 스트레스가 심하다는 것을 내가 그어놓은 밑줄을 통해 알게 되었다. 의식하지는 못했지만 계속 마음으로 억누르고 있는 것을 이 책이 끄집어 내주었다. 몹시 두려웠다. 다시금 갑을 관계의 소용돌이에 빠져 허우적대고 싶지 않았다. 불안해하고, 두려워하고, 벗어나고 싶은 마음을 억눌러가며 억지로 직장생활을 하는 내 모습이 싫었다.
전통 참선의 가르침에 따르면 인간은 누구나 갈망과 혐오라는, 쌍둥이처럼 붙어 다니는 두 충동 사이에 끼어 있다. 불쾌한 것을 보면 황급히 도망치고 쾌락을 보면 쫓아가기 바쁘다는 이야기다. 대부분 채찍으로부터 도망쳐 당근을 쫓아가는 데 아주 능숙하다. 우리 문명 전체가 채찍과 당근의 원리를 중심으로 구성되고 그에 따라 운영된다.(중략) 인생을 견딜 수 있게 해주는 여러 가지 중독성 있는 행위로 이루어진 하나의 시스템 안에서 늘 살아왔음에도 이제야 그것을 깨닫고 있는지도 모른다. p180
지금은 직업이나 관계 혹은 생활 방식을 바꿀 준비가 안 되어 있을 것이다. 당장은 술을 많이 마시고, 담배를 자주 피우고, 과식을 하고, 인터넷 서핑에 많은 시간을 허비하고 있을 것이다. 아직은 중독적인 생활 습관에 갇혀 지내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중독성 있는 행동의 노예로 살고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자기 자신을 싫어하지는 말자. 아무리 우울하고 절망적인 순간에도 우리는 고개를 들고 하늘을 보며 자기 자신을 향해 말할 수 있어야 한다. p183
템플 스테이의 좋은 기운들이 나의 삶을 밝은 빛으로 이끌어 줄 것 같다. 굿즈로 시작하는 참선 생활. 작가의 권유대로 참선 계획을 세우고, 참선 일기도 적어본다. 참선이 나를 어떻게 변화시킬지 한 달 뒤가 몹시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