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 룩의 정석 #참선 #108배
지난 4월 요가 지도자 과정을 마치고 동기생으로부터 전등사 템플스테이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다.
우리 기수에는 다양한 직업군이 분포했는데, 대부분이 현역 요가 선생님이셨고, 나 같은 일반 수련자 2명과 안무가, 무용가, 라이프 코치 등 평소에는 만나기 어려운 사람들이 함께 모여 하하호호 재미있게 과정을 마쳤다. 그날도 무용가셨던 분의 공연을 핑계로 함께 모여 깔깔거리다 템플스테이에 로망이 생겼다. 동기생은 유부남으로 부부가 일 년에 한 번씩 각각 혼자만의 1박 2일의 시간을 보낸다고 했다. 오오! 뭔가 신선한 부부생활이었다. 동기들이 모인 날이 1박 2일을 보내고 남은 저녁시간이었다. 과연 무엇을 했을지 궁금했다. 그의 입에서 나온 뜻밖의 행선지는 '전등사 템플스테이'였다. 유부남의 합법적 묻지 마 1박 2일의 행선지가 스님들이 가득한 절간이라니! 그의 정신세계가 매우 경이로웠고, 그곳엔 뭔가 특별한 것들이 있을 것 같았다.
템플스테이는 늘 한 번쯤 가보고 싶다는 바람일 뿐 특별한 의지가 없어서 지나가는 텔레비전 광고처럼 흘려보내다가 동기의 이야기에 리모컨을 들고 채널을 고정시켰다. 우리 집 유부남을 구워삶아서 1박 2일 템플스테이 티켓을 따냈다. 8월 한여름에 예약했는데 절친 K가 그날은 나랑 놀고, 선선한 가을에 같이 가는 게 어떻겠냐고 하여 단칼에 취소를 하고 놀았다. 그렇게 여름이 가고 선선한 가을도 다 보내고 나니 점점 복직의 날이 다가온다. 올해가 아니면 못 갈 것 같아 절친의 옆구리를 쿡쿡 찔러 11월 말에 예약을 했다. 디데이 4일을 앞두고 코로나 1.5단계가 2단계로 격상되었다. 함께 가기로 했던 절친은 자영업을 하는 그 집 유부남의 급작스런 휴무로 가족의 평화를 위해 예약을 취소해야 했다. 절친의 취소 사실을 알게 된 우리 집 유부남은 꼭 가야겠느냐며 다소 빈정거리는 태도를 유지했지만 기어이 가야만 했던 나의 발목을 잡지는 않았다.
칼바람 부는 토요일 아침, 남편과 자식을 집에 두고 홀로 강화로 떠났다. 처자식을 집에 두고 떠나는 남자들의 마음도 이와 같이 홀가분할 것일까? 일찍 도착한 탓에 숙소를 배정받은 후 청소가 되길 기다리면서 템플스테이 팸플릿을 쓰윽 챙겨 죽림다원으로 향했다. 겨울 칼바람이 너무 차가워 뜨끈뜨끈한 쌍화차를 시켜 호호 불어 마시면서 팸플릿을 탐독했다. 내 옆 테이블의 남자도 쌍화차를 시켜 마셨는데 맞은편 여자 친구에게 연신 진짜 쌍화탕의 맛이라고 하였다. 내 마음과 같은 것일까? 인사동 쌍화차와는 달라도 너무 다른 맛이었다. 그도 나도 다 마시긴 할 거라며 의지를 다지는 맛이었다. 팸플릿의 만듦새가 좋았다. 손그림으로 그린 절의 위치도나 사찰예절 그림도 좋았고, 제목을 써넣은 캘리그래피도 마음에 들었다. 여행을 가면 기념으로 팸플릿을 챙겨 오는데, 이렇게 공을 드린 예쁜 팸플릿을 만나면 여행의 추억도 더 짙어진다.
템플 스테이 교육을 시작하는 '월송요'에 들어서자 바닥에 깔린 절 방석에 산스크리트 문자로 '옴 : 요가에서 보편적으로 사용하는 만트라' 글자가 자수 놓아져 있었다. 시작부터 느낌 딱! 현대 요가에서는 몸의 동작에만 집중하고 있긴 하지만 본래 아쉬탕가 요가의 수행 방법이 불교의 수행방법과 비슷하다는 것이 신기해서 관심을 갖게 되었다. 요가에서는 산스크리트어 발음을 그대로 표기하는 데 반해 불교에서는 중국을 통해 들어오다 보니 가차 음차를 사용해 한자어로 한번 더 표기되어 어렵게 느껴졌다. 산스크리트어(범어)로 알고 있는 단어를 한자어로 다시 외워야 하는 이중고랄까?라고 말하지만 사실 내 지식의 깊이는 습자지와 같아서 그냥 단어 몇 개 정도로 유추해 본 것이다.
이어서 지도를 담당해주시는 N스님이 오셨다. 스님 하면 성철스님 스타일의 작고 단단한 이미지가 전부였는데, 장삼을 입으신 스님이 너무 멋있어서 깜짝 놀랐다. 역시 키는 크고 볼 일이다. 잘생긴 신부님 말씀이(나는 가톨릭 신자이다. 풉!) 귀에 더 잘 들어오듯 도깨비의 이동욱 눈빛을 닮은 스님의 지도 덕분에 말씀이 쏙쏙 들어왔다. 템플에서의 깨달음은 8할이 N스님 덕분이다. 스님의 잘생김에도 감사를 드린다.
저녁 공양을 마치고 사물 타종 의식이 있었다. 장삼만 입으셨을 때도 멋있었는데, 가사까지 풀착장 하시니 영화 와호장룡 인물들처럼 붕붕 날아오를 것만 같았다. '아! 스님들 다 멋있어.' 땅 위의 생명을 상징하는 법고의 소리는 지상의 모든 생명이 깨어 움직이듯 빠른 심장소리처럼 약동하듯 웅장했다. 물속의 생명을 상징하는 목어는 맑고 단순한 리듬이었고, 하늘을 떠도는 생명을 상징하는 운 판의 소리는 차갑게 깨치는 쨍한 소리가 났다. 그리고 지옥의 중생들을 상징하는 범종은 템플스테이 참가자들에게 모두 기회가 주어져 차례로 타종해보았다. 범종의 소리가 '옴' 챤팅을 할 때처럼 몸속 깊숙이 머물렀다가 사르르 빠져나갔다. 울리는 범종에 손을 대어 소리의 울림을 느껴보았다. 손이 닿을 때마다 달라지는 소리와 울림이 마음을 만지는 것 같았다. 생명이 있는 모든 것들의 해탈을 기원하며.
'무설전'으로 향하는 길에 사찰안에 울려 퍼지는 염불소리를 들었다. 깊은 산속 달빛 아래 중후한 거문고 소리처럼 아름다웠다. N스님이 가르쳐주신 절하는 법과 예의를 바르게 장착하고 저녁 예불 후에 108배를 했다. 108배를 할 때 108 참회문을 오디오로 들려주시는데 절을 할 때마다 참회 글 한 문장 한 문장이 차가운 세숫물처럼 부스스한 마음을 차고 맑게 씻어주었다. 종교를 떠나 요가처럼 마음수련의 한 방법으로 삼고 싶었다. 파편처럼 흩어져있던 고통의 조각들이 참회문을 통해서 제자리로 맞춰졌다. 곧 있으면 복직이어서 다시 만나야 할 인연들에 대한 고민과 스트레스가 컸는데 108배를 하면서 내려놓게 되더라 나무 아비타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