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는 단단한 물건인 것을
유난히 화창하고 조용했던 지난 6월의 어느 날 오후 전화가 울렸다.
"안녕하세요, 용산경찰서 ooo형사라고 합니다"
'헉! 경찰서? 내가 뭘 잘못했나?'
긴장을 하며 조심스럽게 대답을 했다.
"네, 말씀하세요."
" 자제분들이 길에서 놀다가 건물 앞에 주차되어있는 차를 파손시켜 전화드렸습니다.
잠깐 뵐 수 있을까요? 지금 건물 앞에 있습니다."
"뭐라고요? 네, 알겠습니다. 내려갈게요.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이람. 내 아이들이 남의 차를 망가뜨렸다고?' 떨리는 마음으로 밖으로 나갔다.
2021년 여름에 일어난 사건의 전말은 이랬다. 아이들이 집 앞 골목에서 공놀이를 했다.
공이 앞 빌라 2층 높이의 화단으로 떨어져 주차되어있는 펠리세이드를 밟고 공을 찾으러 올라갔단다. 보통 별나다는 소리를 잘 듣지 않는 아이들이었기에 '진짜 우리 애들이 한 게 맞나?' 하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형사님, 저희 애들 맞아요?" 하고 물어봤다.
내 질문에 형사님은 아무 대답 없이 두껍게 프린트되어있던 자료를 '촥'하고 펼쳐 보여주셨다.
10장이 족히 넘는 A4용지 묶음에는 내 아이들과 100% 똑같이 생긴 남자아이와 여자아이가
골목길에서 신나게 공놀이를 하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뒷장으로 넘어갈수록 차 보네뜨 위에도, 심지어 차 지붕 위에도 발라당 올라가 있는 사진도 있었다. 골목에 두 발을 딛고 있는 모습도, 차 위에 두 발을 딛고 있는 모습도 모두 걱정 없이 해맑은 모습이었다.
"저희 애들 맞네요" 하고 받아들이기 힘든 진실을 받아들여야 했다.
하도 기가 막혀 한숨을 쉬며, "어떻게 이런 일을 할 수 있지? 왜 그랬지?" 하고 되뇌는 나를 두고, 형사님은 나를 위로하려고 한마디 했다.
"오빠랑 여동생이 참 친한가 봐요. 둘이 아주 잘 놀더라고요" 위로가 전혀 되지 않았다.
순간 드는 생각은 '차를 얼마나 망가뜨렸지? 수리비는 얼마가 될까?'
걱정스러운 모습으로 서 있는 나에게 형사님이 사건의 진행상황을 설명했다.
차주가 차의 보네뜨가 찌그러져있는 것을 보고 경찰서에 신고를 했고,
한 3주간 동네 CCTV를 다 샅샅이 찾다 보니, 우리 집 아이들이었다고.
아이들이 아직 어리긴 하지만 형사사건이기 때문에 차주랑 얘기해서 잘 해결해야 하고,
보상 문제가 처리되고 일이 잘 해결됐다는 확인서를 차주가 써 줘야 경찰서에서 사건 마무리를 할 수 있다고 했다.
머리가 아파왔다. 20여 년간 운전을 하면서 한 번도 차 사고를 낸 적이 없어서 어떻게 처리를 해야 하는지 몰라 무엇부터 해야 하는지 아득했다. 차끼리 난 사고가 아니라 보험처리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알아봐야 했다. 아이가 남의 집 물건을 손상시켰을 때 활용할 수 있는 배상책임보험을 독일에 들어 둔 것이 있는데, 그것이 한국에서 난 사고를 처리를 해 줄지 모를 일이었다.
아이들이 너무나 어이없는 일을 저질렀다는 사실과 앞으로 이 일을 처리하느라 소모할 내 시간을 생각하니 화가 끓어올랐다.
"형사님, 차주 연락처를 주시면, 제가 통화하고 경과를 알려드릴게요"
형사님이 가면서 한마디 더 하신다. "애들 너무 혼내지 마세요. 둘이 사이가 아주 좋더라고요"
'둘이 얼마나 해맑고 재미있게 놀았으면, 두 번이나 저런 말씀을 하고 가실까? 형사님은 사이가 안 좋은 여동생이 있는 걸까?'
순간 아이들이 차에 올라가 있는 잊지 못할 사진을 받아두면 좋을 것 같아 형사님께 여쭤보았다. 형사 사건 관련 자료는 외부 유출이 안된단다. 지금은 화가 나는 사건이지만 나중에 생각하면 나름 재미있는 에피소드일 것 같았는데 아쉽게도 사진은 포기해야 했다.
내 아이들에 대해 다시 생각해봤다.
보통은 얌전하다는 말을 듣는 아이들인데, 얌전해 보이는 것이었나 보다.
나는 내 아이들을 잘 파악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내가 아이들의 정신세계를 잘 모르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언제나처럼 4시가 넘어 아이들이 집에 돌아왔다. 이 사건의 심각성에 대해 설명하면서 물어보았다.
"남의 차 위에 올라가면 안 된다는 생각이 전혀 안 들었니?"
"너희들 몸무게가 있는데 차를 망가뜨릴 수도 있다는 생각은 못했어?"
"아니."
둘 다 약간은 걱정이 되는지 눈꼬리가 살짝 내려간 천진한 얼굴로 대답했다.
4학년과 6학년이면 그 정도는 알아야 하는 게 아닐까 싶지만, 그게 아닌가 보다.
하긴, 더 어린아이들은 다리가 짧아 펠리세이드 위에 올라가지도 못했겠지.
김소영 작가의 <어린이라는 세계>라는 책에 나오는 이런 구절을 들은 적이 있다.
'어린이가 위험을 무릅쓰고 책장을 기어 올라가 높은 데 있는 물건을 꺼내려는 것은 책장이 크고 튼튼해 보이기 때문이다. 기어오르지 않으면 손이 닿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바로 그랬다. 내 아이들은 위험을 무릅쓴 용감한 아이들이었다. 아무에게도 도움을 요청하지 않고 문제를 자주적으로 해결하려고 했다. 용감한 이 아이들에게 차는 그저 튼튼한 물건이었나 보다. 공이 담을 넘어가는 역경이 닥쳤을 때 커버마저 고이 씌워져 있던 그 차는 아이들에게 역경을 뚫을 희망이었겠다.
어린이라는 세계란 그야말로 무궁무진 하구나.
<어린이라는 세계>라는 책이 한창 인기였을 때 어린이를 존중할 객체로 접근한 책이라 한번 읽어 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나도 어린이를 존중해주고 싶었는데, 이렇게 부모에게 경제적 피해를 입히면 존중하기 딱 싫어진다.
부모들이여, 내 아이를 다 안다고 자신하지 말자. 그리고 배상책임보험은 꼭 하나씩 들어두자.
양파같이 까도 까도 끝이 없는 신기한 녀석들의 세계, 앞으로 또 어떤 일이 벌어질지 기대와 걱정이 묘하게 겹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