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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ujin Kim Jan 22. 2022

내가 몰랐던 아이들의 세계 II

그 후 이야기

대학교 때 수강했던 교양 경제학에서 들었던 내용 중에 아직까지 기억나는 교수님의 말씀이 있다. 자동차는 사는 순간부터 감가상각이 적용되는 자산이라는, 즉 투자와는 거리가 먼 자산이라는 내용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나에게 자동차는 클 필요도, 비쌀 필요도 없이 내가 필요할 때 이동수단이 되어주는 것으로 족했다. 내 아이들이 올라타 보네트를 찌그려트렸던 펠리세이드는 내 차와는 다른 대접을 받고 있는 것 같았다. 평소에 잘 운행되지 않고 같은 자리에 항상 주차되어 있었고 반듯하게 커버까지 잘 씌워져 있었다. 아마도 차주인은 자동차를 몹시 아끼는 사람 같았다. 내 주변에도 차를 애지중지하는 사람이 있어 완벽하게 이해는 못해도 그런 마음을 존중할 수는 있었다. 


차 주인에게 연락을 했다. 우선 아이들의 잘못을 사과하고, 만날 약속을 잡았다. 피해 정도를 확인하고 앞으로의 절차를 협의해야 했고, 가능할지 모를 보험처리를 위해서 사진도 찍어야 했다. 약속 시간보다 20분가량 늦게 나온 차주는 아끼는 차가 손상되어 상당히 불쾌해 보였다. 피해도 입었고, 번거로운 일이니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아이들의 잘못이었기 때문에 아이들을 약속 장소에 데리고 나가 사과를 시켰다. 본인들이 저지른 잘못에 대해 책임지는 것을 배우게 하고 싶었다. 앞으로 어떤 행동을 할 때 그 이후에 벌어질 상황도 생각하는 태도를 배웠으면 했다. 아이들이 스스로 질 수 있는 책임은 거기까지였고, 그 이후의 책임은 보호자의 몫이었다. 


커버를 벗기고 손상 정도를 확인해보니 보네트의 왼쪽 한 부분이 살짝 찌그러져 있었다. 오른쪽에는 색이 약간 바랜 부분이 있었는데, 그건 누군가 얼룩을 없애려고 잘못 문질러서 생긴 것 같았다. 불필요한 오해는 사지 않기 위해 "이건 저희 아이들 때문에 생긴 것은 아닌 것 같네요?" 하고 물어보니 약간 어정쩡하게 "그, 그렇죠." 하고 차주가 대답했다. 그날 내가 이해한 것은 2020년 12월에 산 차라 이제 겨우 6개월밖에 되지 않아서 차주가 많이 속상하다는 것과, 굉장히 바쁜 사람이라는 것, 그래서 수리센터는 내가 알아보고 연락 주기로 한 것이었다. 


최대한 가깝고 잘하는 곳으로 알아보았다. 외제차 수리도 많이 하고, 친구 두 명이 만족스럽게 수리한 경험이 있는 수리센터에서 견적을 받았다. 근처 현대 블루핸즈에도 견적을 물어보았다. 두 곳 중에 차주가 원하는 곳에서 처리하면 될 거라 생각했다. 남편은 분명히 차주가 무리한 요구를 할 거라고 했다. 한국 동료가 전에 접촉사고로 겪은 얘기를 하며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한 것을 요구할 수 있다고 했다. 난 모든 한국 사람들이 다 그런 것은 아니라고 얘기했다. 나를 비난하는 것이 아닌데도 한국인에 대해 부정적인 편견을 얘기할 때는 여전히 감정이 상할 때가 있다. 


두 가지 옵션을 가지고 차주에게 연락했다. 차주는 본인이 차를 코팅했던 곳과 같은 곳에서 코팅을 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처음 만났을 때 수리하고 싶은 곳이 있다고 왜 명확하게 얘기하지 않았을까?' 그랬다면 바로 그곳에서 판금과 도색이 가능한지 묻고 코팅까지 진행할 수 있었을 텐데, 괜한 시간 낭비를 한 셈이었다. 차주가 원하는 카센터에서 새로이 견적을 받고 다시 차주에게 연락했다. 이번에는 자기 말을 잘 못 알아들었냐고 하면서 찌그러진 부분에 대한 판금, 도색이 아니라 보네트 전체를 갈아 달라고 했다. 그리고 전에 한 것과 같은 특수 코팅을 해 달라고 했다. '약간 찌그러진 것 때문에 보네트를 전부 갈아야 할까? 혹시 그 도색이 변한 그 부분까지 이 참에 갈아버리려는 의도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코팅을 진행했다는 수리센터에서 보내온 과거 견적서에는 코팅한 날짜가 2020년 12월이 아니라 2020년 6월로 기입되어 있었다. '12월에 새로 샀다는 차주의 말은 사실이 아닌 것이었을까?' 한국 사람이 다 차 문제로 넘치는 요구를 하는 것은 아니라고 남편에게 큰 소리를 쳤는데 뒷골이 당겨왔다. 


진실만이 들어있지 않은 이야기 전개에 마음이 편치 않았다. 부당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심호흡을 하고 사건의 핵심에 집중했다. 팩트는 내 아이들의 잘못으로 일어난 일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이었다. 형사님이 했던 말도 생각났다. "이 일이 형사사건이기 때문에 일이 마무리되었다는 차주의 확인서가 없으면 아이들이 어리다 하더라도 경찰서에서 진술서를 작성해야 해요." 이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문제를 키우지 않고 최대한 빨리 처리하는 것이었다. 내 아이들의 천진함에서 온 실수를 트라우마로 남겨주고 싶지 않았다. 


독일 보험사와의 협의도 간단하지 않았다. 만 12세라는 나이가 애매하여 지적 판단을 할 수 있는 나이로 간주되면 보험 적용이 안 될 수도 있었다. 다행히 예상과는 다르게 독일에 있던 보험사가 비용을 처리해주기로 했다. 우리는 자비로 수리비를 충당하지 않아 다행이었고, 차주는 완벽한 새 보네트를 받게 되어 다행이었다. 좋은 경험은 아니었지만 해결되었으니 된 것이다. 


 그 일 이후로 아이들은 골목에 나가 공놀이를 하지 않았다. 남의 차에 올라가지 말고, 지나가는 차 조심하면서 나가 놀라고 해도 나가고 싶어 하지 않았다. 천진하게 놀던 아이들의 아동기가 이번 사건으로 일찍 막을 내린 것 같아 안타까웠다. 펠리세이드는 오늘도 같은 자리에 커버를 입고 잘 서 있다. 펠리세이드에게도 어쩌면 내 아이들이 사다리 마냥 타고 올라갔던 그날이 인생에서 가장 화려한 날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누군가에게는 말도 안 되는 이야기일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아이들과 펠리세이드의 화려한 날은 그렇게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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