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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ujin Kim Mar 18. 2022

교포 아이들을 위한 한국어 독후활동을 시작하다.

<열두 살에 부자가 된 키라>를 읽으며

나에게는 7학년 아들과 5학년 딸이 있다. 두 아이 모두 독일에서 태어났고, 미국 캘리포니아의 독일 학교를 거쳐 현재 서울 독일학교에 다니고 있다. 어렸을 때부터 엄마의 언어를 당연히 알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한국어로 의사소통을 하고 있지만 학년이 올라가고 학교에서 독일어를 절대적으로 많이 접하게 되면서 한국어와 점점 멀어지고 있었다. 엄마가 얘기하면 이해는 잘 하지만 읽고, 쓰고, 말하는 분야에 있어서는 실력이 현저하게 떨어졌다. 


지난 여름, 이대로 두면 안될 것 같다는 생각에 아이들과 한국어 책으로 독후활동을 시작했다. 아이들의 문해력 수준을 대략 점검해 보니 2-3 학년 수준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하기 싫다는 투덜거림을 깨끗하게 무시하고 두 권 정도를 함께 읽었다. 내가 한 단락, 아들이 한 단락, 딸이 한 단락 번갈아가며 읽고, 읽으며 모르는 단어와 표현을 설명해주고, 단원 별로 요약을 하며 아주 천천히 함께 읽어 나갔다. 




『열두 살에 부자가 된 키라』를 독후활동 책으로 선정한 이유


우연히 『열두 살에 부자가 된 키라』라는 책을 알게 되었다. 독일의 경영 컨설턴트인 보도 셰퍼(Bodo Schäfer)라는 사람이 쓴 책으로 독일에서는 『Ein Hund names Money』라는 제목으로 출판된 책이었다. 2년 전 아이들에게 카카오 주식을 한 주씩을 사주며 주식이 뭔지, 회사의 주인이 되는 것이 뭔지 최대한 쉽게 설명해 준 적은 있었지만 제대로 돈에 대한 개념을 잡아 준 적은 없었다. 이 책을 읽으며 '키라'라는 아이의 관점을 빌려 돈에 대해 알아보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보다 '돈이 인생에 있어서 제일 중요한 것은 아니지만 돈이 없으면 궁지에 몰릴 수 있고, 돈은 인생에 큰 힘이 될 수 있다'라는 접근이 마음에 들었다. 큰 부족함 없이 자라는 아이들이 용돈을 받고, 목표를 세우고, 저금하고, 돈 버는 방법을 스스로 찾아보면서 돈을 주체적으로 관리하는 법에 대해 생각해 볼 좋은 기회였다. 


게다가 아이들이 생각해 보면 좋을 철학이 들어 있어 더욱 마음에 들었다. 


인생에서 무엇인가 이루고 싶은 게 있다면 먼저 꿈꾸는 것부터 시작해. 

꿈이 이루어지면 어떻게 될까를 상상해 보는 거야. 

이렇게 새로운 것들을 알아 가는 걸 배움이라고 하는 거야. 

같은 방법으로만 생각하면 늘 같은 결과만 나오거든. P31


행복하고 여유 있게 살고 싶은 사람은 자신을 변화시켜야만 해. 돈은 사람을 변화시키는 데 아무런 도움이 안 된단다. 돈은 사람을 행복하게도 불행하게도 만들지 않아. 돈 자체는 중립적인 것이라 나쁜 것도 좋은 것도 아니거든. 단 누군가의 손에 들어가는 순간부터 좋은 의미를 지니기도 하고 또 나쁜 의미를 지니기도 한단다. P158


두려움이란 뭔가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상상하는 데서 생겨나는 것이거든. 모든 게 제대로 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을 거듭할수록 더 많은 두려움이 생겨나. P182


아이들의 한국어 실력


2월부터 읽고 있는 『열두 살에 부자가 된 키라』는 5-6학년 수준이다. 이번 독후활동에는 내 아이들 이외에 친구 아들 둘(8학년, 5학년)이 함께 참여했다. 그 아이들도 독일에서 태어나 자랐고, 상하이의 독일 학교를 거쳐 한국으로 들어온 교포들인데 부모가 모두 한국인이어서 우리 애들보다 발음이 좋고, 말도 훨씬 자연스럽게 잘하는데 읽고 쓰는 수준은 비슷해서 한 그룹으로 만들기에 무리가 없어 보였다.


이번에 수업을 진행하면서 깜짝 놀란 점은 아이들의 창의적인 맞춤법이었다. 외국인들도 말할 때와 쓸 때가 너무 달라 한국어를 힘들어하는데 우리 아이들도 그랬다. 소리 나는 대로 쓰는 것을 보면 우리말의 자음동화가 원망스러웠고, 발음이 비슷한 'ㅔ'와 'ㅐ'는 도대체 왜 구분을 해 놓은 것인지. 어미의 변화는 중국 무협영화의 화려한 무술처럼 변화무쌍하다. 


이건 혹시 훈민정음?

특히 아들 녀석의 철자법은 그야말로 참신 그 자체였다. 철자법을 제대로 무시한 프리 스타일이며 얼핏 봐도 이쁘기까지 한 훈민정음 스타일이어서 세종대왕이 반갑다고 다시 살아나실 듯했다. 고칠 곳이 너무 많아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알 수 없는 차이 나는 클라스! 모두들 발전 가능성이 무궁무진하다고 애써 위로를 해야 했다. 


이중모음도 어려워



소리 나는 대로 쓰기



구분하기 어려운 'ㅔ'와 'ㅐ'



독후활동 진행 상황과 아이들의 변화


『열두 살에 부자가 된 키라』의 어휘 수준이 쉽지 않다는 아이들의 의견에 따라 일주일에 한 번씩 한 단원을 함께 공부하고 있다. 아이들이 읽고 핵심 단어를 찾아 요약을 해 오면 내가 책 내용을 이해했는지 질문을 하고 꼭 알아야 하는 단어나 표현을 확인하고 단원별로 생각해 볼 문제에 대해 의견을 나눈다. 지금까지 6개 단원을 공부했는데 각자 소원을 정하고, 용돈에 대한 경험을 이야기하고, 통장과 이자에 대한 내용도 배웠다. 


용돈에 별로 관심이 없던 아이들이 돈의 중요성에 대해 조금씩 알아가는 것 같고, 돈을 어떻게 스스로 벌 수 있을지 학생의 입장에서 생각도 해 보았다. 고무적인 변화는 규칙적으로 독후활동을 하면서 한국어 어휘가 향상되었고 엄마와 대화할 때 요구하지도 않았는데 한국어로 말하는 경우가 많아졌다는 점이다. 


얼마 전 딸아이와 함께 드라마 '사랑의 불시착'을 보고 있는데 키라에서 나왔던 '먹는 둥 마는 둥 하다'라는 표현이 나오자마자 "엄마, 나 저 말 알아!" 하면서 기뻐하는 딸아이를 보고 '갈 길은 멀지만 시작하길 잘했다'하는 생각도 들었다.



기대하는 점


20대에 미국 교포들을 알고 지낸 적이 있었다. 부모가 모두 한국인인데도 미국에서 자랐다는 이유로 한국어를 잘 못하던 그들을 보며 당시엔 잘 이해할 수가 없었다. 내가 외국인과 결혼해 해외에서 아이를 낳아 키워 보니 모국어를 유지하는 것이 쉽지만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역시 직접 겪어보지 않은 일에 대해서는 이러쿵저러쿵해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교포 아이들은 해당 국가의 언어 환경에서 그 나라 언어를 하면서 친구들과 대부분 시간을 보내기 때문에 나이가 들수록 모국어를 등한시하는 경우가 많다. 물론 한국어로 의사소통을 하는 가정에서 자란 아이들은 한국어를 아주 잘하는 아이들도 있고, 개인별 언어 능력의 차이도 있으며, 청소년이 되면서 다시 드라마나 가요를 들으며 모국어에 관심을 갖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노력 없이 모국어 실력을 유지하기란 쉽지 않다는 것이 나와 같은 부모들의 공통적인 의견이다.  


한쪽 부모의 국적 때문에, 부모의 직장 때문에 외국에서 자라는 한국 아이들이나 중도 입국해서 외국학교에 다니는 한국 아이들이 어느 수준까지 한국어로 의사소통을 할 수 있고, 한국인의 정서를 이해하고, 한국어를 못한다는 이유로 역차별을 당하지 않을 수 있게 실력을 쌓으면 좋겠다. 서두르지 않고 열심히 하다 보면 언젠가 아이들이 나와 함께 한국 드라마나 영화를 영어 자막 없이 편하게 같이 볼 수 있고, 내가 쓴 에세이들을 큰 불편함 없이 읽고 이해할 수 있는 날이 오지 않을까? 왠지 그런 날이 올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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