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Yujin Kim Apr 05. 2022

이 세상 최고의 엄마

마음에 발라줄 빨간약을 준비하세요~

수업을 마치고 먼저 집에 돌아온 아들이 학교에서 딸아이가 울었다는 소식을 전했다. 

아들들이 다 그렇듯이 사건이 발생했다는 것만 인지하고 이유는 모르고 있었다. 

이 답답함은 고스란히 엄마의 몫. 


"좀 달래줬니?" 

"응, 한번 안아줬어." 

자기 딴에는 오빠 역할을 한 셈이다. 

'됐다. 너는 너대로 최선을 다했네.'


무슨 일이 있었는지 걱정이 되어 아이가 돌아오는 시간에 맞춰 학교와 집 중간 지점인 오거리로 나갔다. 

조금이라도 일찍 만나 위로해주고 싶었다. 횡단보도 건너에 신호를 기다리고 있는 아이가 보였다. 

쪼그맣던 아이가 언제 저렇게 컸는지, 그저 대견하다. 

오늘의 아픔도 커 가는 과정인 것을... 

   

메디: 내가 무슨 좋은 일을 했길래 저런 예쁜 딸을 얻었을까요?

메디의 엄마: 나도 매일 하는 질문이란다.

메디: 엄마, 왜 이렇게 될 줄 몰랐을까요?

메디의 엄마: 그런 헛소리라면 안 들을게. 

이 세상 최고의 엄마라도 자식이 상처받는 걸 전부 막을 수 없어. 고통을 이길 수 있게 곁에 있어 줄 뿐이지. 

메디: 엄마도 그렇게  곁에 있어주네요.  번이고 지치지 않고요.


미국 드라마 스위트 매그놀리아(Sweet Magnolias)에서 사고로 다친 오빠들을 위해 카드를 만든 메디의 막내딸은 엄마가 슬프지 않았으면 좋겠다며 엄마에게도 카드를 만들어준다. 아들사고를 막지 못했다는 자책을 하는 메디와 그녀 엄마와의 대화에서 삼대에 걸쳐 딸을 사랑하는 엄마들의 마음이 느껴져 뭉클했다.


딸아이를 보며 나도 이런 생각을 자주 했었다. 


'어떻게 이렇게 예쁘고 착한 딸을 얻었을까? 전생에 내가 착하게 살았음이 분명해.' 


아기 때부터 잘 자고, 잘 먹고, 착하고, 총명한, 나무날 데가 없는 아이였다. 

뭔가를 가르쳐 주면 다시 한번 말할 필요 없이 잘 기억하고 있었고, 논리적으로 설명해주면 불필요한 생떼도 전혀 부리지 않았다. 둘째가 수월하니 육아가 일찍 끝나는 느낌이었다. 


교차로를 건너오는 아이와 중간쯤에서 만났다. 아이 손에는 전단지가 들려있었다. 


아주 추웠던 겨울 어느 날, 딸아이와 어딘가를 가다가 길에서 아주머니가 나눠주던 전단지를 받은 적이 있다. 피트니스 클럽을 광고하는 전단지였다. 


"엄마, 운동하려고?"

"아니"

"그럼 필요 없는데 왜 받아?" 

"사람들이 저렇게 안 받아주는데, 엄마라도 받아줘야지. 전단지를 다 나눠줄 때까지 길에서 서 있어야 할 텐데. 오늘 너무 춥잖아. 엄마가 하나라도 덜어주려고."


그 이후에 아이는 전단지를 집에 종종 가져오곤 했다. 피트니스 광고도 있었고 모델하우스 광고도 있었다. 

아무 영향력 없는 아이에게 전단지를 나눠줘서라도 빨리 일을 마치고 싶었을 아주머니들. 

각자 저마다의 삶의 무게를 지니고 살아간다. 어른은 어른대로. 아이는 아이대로.   


힘든 하루를 보내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도 아이는 할머니가 전단지를 나눠주고 있어서 얼른 받았다고 했다. 어깨를 꼭 감싸 안아주며 말했다.


"잘했어, 네 덕에 오늘 할머니가 일찍 집에 가시겠네."


별생각 없이 하는 내 말과 행동들이 아이들에게 미치는 영향을 보면서 가끔 깜짝 놀랄 때가 있다. 나를 거울처럼 보는 아이들 때문에 더 좋은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학교에서는 자기가 하지도 않은 일을 한 아이가 트집을 잡고 계속 다그쳐서 억울한 마음에 울었다고 했다. 다른 아이들과 싸운 그 아이는 그 화를 우리 둘째에게 풀었나 보다. 진실을 아는 친구들이 위로를 해 주었다니 다행이었다. 


"억울해하지 마. 아니라고 해도 안 믿는 것은, 걔가 그렇게 믿고 싶어서야. 

누군가의 탓을 꼭 하고 싶었나 봐.

네가 알고, 네 친구들이 알잖아. 시간이 걸리겠지만 진실은 꼭 이겨. 힘내자. 

뭐 먹고 싶어? 기분이 안 좋을 때 엄마는 달콤한 게 먹고 싶더라."


우리는 최고로 달달한 요구르트 한 병을 원샷으로 마셨다. 


메디 엄마의 말처럼 그 어떤 엄마도 자식이 상처받는걸 다 막을 순 없다. 

아이가 내 눈앞에서 넘어질 때, 마음은 이미 아이를 구하러 달려갔는데, 두 다리는 여전히 움직이지 않고 땅을 그저 디디고 서 있을 때가 있다. 아이는 결국 다치고 사고를 막지 못한 난 자책을 한다. 다음에는 꼭 더 빨리 움직여야지 하면서도 막을 수 없는 날들이 더 많았다. 마치 누군가가 슈퍼 파워로 나를 '얼음'으로 만들어 놓은 것처럼. 

슈퍼 파워의 가르침은 이런 것이리라. 

'아이도 다쳐봐야 해. 그래야 다음에 조심할 것이고, 넘어져도 스스로 일어날 수 있지.'  


다음날 아침 아이는 악몽을 꾸었는지 소리를 지르며 깼다. 마음이 아팠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별로 없었다. 괜찮다고, 꿈이라고 알려주며 다시 자라고 토닥여주는 것밖에.

엄마인 내 역할은 바르게 사는 방법을 보여주는 것. 그리고 아이가 힘들어할 때 다친 마음에 빨간약을 발라주고, 함께 있어주는 것. 다시 일어나 뛰어갈 수 있게 희망을 속삭여 주는 것 밖에 없다.


나는 내 아이들에게 만큼은 이 세상 최고의 엄마다!




매거진의 이전글 아들이 틴에이저가 되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