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는 꿈꾸는 아들이 있다.
하고 싶은 것도 많고, 되고 싶은 것도 많다.
요즘 아들은 농구에 빠졌다.
한강으로 매일 농구를 하러 다니고, 시험 때문에 농구를 하지 못한 날은 그렇게 시무룩할 수가 없다.
아들은 미국으로 다시 돌아가 살고 싶다는 말을 자주 했었다. 그곳에서 살았을 때의 좋은 기억을 간직하고 있고, 친한 친구 두 명이 아직 미국에 살고 있다는 것도 그런 생각에 힘을 보탠것 같다. 게다가 미국이란 나라는 모든 농구 선수들이 꿈꾸는 NBA 리그가 있는 나라가 아니던가.
언젠가부터 아들은 미국에 가면 제대로 농구 트레이닝을 받을 수 있고 NBA 리그에서도 뛸 수 있다는 꿈을 꾸기 시작했나 보다. 실현가능성의 여부는 아이에게 중요하지 않았다. 꿈은 꾸라고 있는 것이니.
어느 날 밤 아들이 진지하게 이야기를 시작했다. 밤마다 말이 많아지는 아이이다.
"엄마, 나 농구 정말 잘해."
"응, 알아"
"진짜야! 엄마가 한번 봐야 돼."
"알았어. 다음에 보러 갈게. 그런데, 엄마는 공부는 열심히 안 하고 농구만 잘하는 건 별로야."
아무리 독일물을 먹었어도 난 어쩔 수 없는 한국 엄마였다. 별다른 사교육은 시키지 않아도 공부는 잘했으면 좋겠다. 운동보다는 공부가 우선이었다.
"나 공부 잘해, 엄마. 미국 NBA 농구 선수들 중에 YMCA인가 하는 대학에서 공부하는 선수들도 있어."
"YMCA? 거기는 기독 청년회라고 여러 가지 운동 배울 수 있는 곳인데?"
"그럼 뭐지.. YMCA라고 한 것 같은데..."
"너 혹시 UCLA 말하는 거야?"
"어, 맞다. UCLA!"
개떡같이 말해도 찰떡같이 알아듣는다는 게 이런 걸까? 어떻게 그 순간 YMCA에서 UCLA가 바로 연상이 되었을까? 피로 연결된 혈육이라는 게 이렇게 대단하다.
우리의 대화는 유쾌한 웃음과 함께 YMCA 노래를 부르고 손으로 이니셜 댄스를 하며 끝이 났다.
며칠 후 아들은 농구를 하러 한강으로 향했다. 아들이 농구하는 모습을 볼 겸, 동영상도 찍어줄 겸 딸아이와 나는 30분 정도 후에 합류하기로 했다. 먼저 도착한 아들에게서 갑자기 전화가 왔다.
"엄마, 나중에 올 때 양말하고 운동화 가지고 올 수 있어?"
"왜?"
"농구공이 진흙탕에 빠져서 그거 건지려다가 신발하고 양말이 다 젖었어."
"아휴.. 정말. 웬일이니. 그래서 지금 뭐하고 있어?"
"발하고 공은 물로 대충 씻었는데, 신발은 신을 수가 없어."
일하지 않는 엄마도 전혀 한가하지 않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상황이 수시로 발생하여 서포터스로 바쁘게 활동해야 하기 때문이다. 운동화와 양말을 챙겨 들고 아들에게로 갔다.
2주일 전에 산 농구공은 진흙탕에서 무사히 건져져 깨끗하게 씻은 상태였지만 일주일 전에 산 아들의 새하얀 신발은 만신창이가 되어 있었다. 농구 코트 근처의 진흙탕에 농구공이 빠졌나 했더니 이야기를 자세히 들어 보니 한강으로 굴러갔단다.
얼마 전, 아들은 원래 있던 농구공을 동네 큰 대로변 언덕에서 놓쳤다. 어디론가 빠르게 굴러가버린 농구공은 다시 찾을 수 없었고 새로 구입한 농구공이 이번에는 한강에 빠져버린 것이다. 엄마에게 혼이 날까 봐 무서워 반드시 농구공을 건져야 한다고 생각했나 보다. 아들은 물가까지 굴러간 공을 건지러 한강 근처로 걸어 들어갔는데 공에 가까이 갈수록 발이 진흙탕으로 점점 빠져들어 갔단다. 땅이 그렇게 늪처럼 질퍽거릴 거라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다. 발이 무릎까지 쑥 빠져 들어가 순간 엄청난 공포가 몰려왔다 했다. 그래서 다시 나오려고 안간힘을 쓰면서 우선 공을 안전한 곳으로 던져놓고 허둥지둥 나왔는데 이번에는 신발 한 짝이 진흙에 박혀 버렸단다. 많이 무서웠지만 새 신발 한 짝을 그렇게 잃을 수 없었기에 딴에는 머리를 굴려 다른 신발 한 짝을 벗어놓고 다시 진흙탕으로 들어갔다 했다. 양말은 고스란히 신은 채로. 발목 부분만 빼꼼히 나와 있던 신발의 하얀 부분이 보여 얼른 건져 나왔다 했다. 집으로 돌아와 난 하얀 운동화를 뻘에서 구해내느라 30분 정도를 소모해야 했지만 모두가 무사하니 다행이었다. 진흙탕 사건은 아들에게 트라우마를 남긴 듯하다. 다리가 쑥 빠지는 느낌을 잊을 수 없다고 했다.
용감한 행동이었지만 큰일이 날 수도 있었을 상황이었다. 상상만 해도 소름이 끼쳤다. 그냥 봐서는 고요한 한강이 끔찍한 한강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다음에 비슷한 상황이 생기더라도 절대 혼자 한강에 들어가지 않겠다는 다짐을 받았다. 차라리 농구공을 포기하라고. 농구공이나 신발은 다시 살 수 있지만 사람은 아니라고. 네가 꿈에 그리던 YMCA 대학에 가야 하지 않겠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