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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ujin Kim Mar 31. 2022

아들이 틴에이저가 되었다.

만 13세(thirteen)세가 된 아들

아들이 만 13세(thirteen) 틴에이저가 되었다. 

진정한 틴에이저가 되기 며칠 전, 아들이 내 곁에 와 앉더니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잠자는 것을 싫어하는 아이는 자기 전에 괜한 핑계를 찾으며 늦게 잘 궁리를 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엄마, 엄마는 아이들을 왜 이렇게 잘 키워?" 


피식, 웃음이 나왔다. 그 말은 자신이 잘 크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는 것 아닌가. 

저 넘치는 자신감이란. 

아들의 칭찬을 들으니 기분이 좋았다. 


"글쎄, 엄마는 관찰하는 것을 좋아하는 것 같아. 너희가 기분이 좋은지, 슬픈지, 너희가 좋아하는 게 뭔지, 잘하는 게 뭔지 세심하게 관찰하고, 너희를 최대한 이해하려고 하니까 너희가 불만 없이 잘 크는 게 아닐까? 


외할머니 외할아버지가 자식들을 키울 때 잘하신 것도 있지만, 잘 못하신 것도 있었거든. 

부모님의 방식 중에 엄마 마음에 안 들었던 것은 최대한 안 하려고 해."


"할머니 할아버지는 뭘 잘 못하셨어?"


"두 분 다 일하느라 너무 바쁘셔서, 엄마가 좋아하는 것, 잘하는 것, 엄마의 생각 같은 것에는 관심이 전혀 없으셨어. 그저 '공부해라'라는 말만 들었던 것 같아. 학생이 공부를 안 하고 인생에 대해 고민하는 것은 쓸데없는 짓이라 생각하셨지. 아들, 딸 차별도 많이 하셨고. 아들이든 딸이든 똑같이 소중한데 말이야."


외할아버지는 엄마가 7살에 병환으로 돌아가셨고, 엄마는 지독한 가난을 경험했다고 했다. 엄마가 밤에 불을 켜고 공부를 하고 있으면 전기세 많이 나온다고 외할머니가 스위치를 꺼 버렸다고 했다. 얼마 안 하던 육성회비가 없어서 학교에서 쫓겨나기를 여러 번 겪었다고 했다. 다행히 공부를 무척 잘했던 엄마는 중학생 때 부잣집 아이들에게 과외를 하며 직접 돈을 벌어 육성회비를 냈다. 공부를 잘했고, 공부를 원 없이 하고 싶었지만 가정 형편 상 공부할 여건이 안 되었던 엄마는 '공부만 열심히 하라'는데 당신 마음만큼 열심히 안 하는 자식들이 이해가 안 되었을 것이다. 상황이 그렇다 보니 사춘기 중학생 딸이 하는 생각과 미래에 대한 고민은 바로 시끄러운 헛소리가 되어 쓰레기통에 처박혔다. 


부모와 소통을 할 수 없었던 사춘기 소녀는 반항심이 들끓었다. 대들기엔 너무 큰 벽이었던 부모님에게 할 수 있는 반항이란 방 문과 함께 마음의 문을 닫는 것이었다.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를 보며 눈물을 흘렸다. 그 시절 모든 게 마음에 안 들었다. 특히 이해하려고 노력조차 하지 않는 부모님과 잔소리를 많이 하던 외할머니가 너무 싫었다. 중학교 2학년 때 열쇠로 잠가둘 수 있는 비밀 일기장을 샀었다. 토해내야 할 많은 감정은 여과 없이 일기장에 표현되었다. 그 시절의 일기장이 생각나 한번 읽어보려고 찾아보니 일기장은 있는데 열쇠가 어디에 있는지 알 수가 없다. 어딘가에 잘 둔 것은 분명한데, 그 어딘가에 너무 잘 두었나 보다. 아무도 못 찾게. 꽁꽁. 


아들이 이제 그 나이가 되었다. 아들과의 대화는 그래서 더 특별하다.     


"엄마는 너희들에게 다르게 해 주고 싶어. 엄마가 '공부해라' 한다고 너희가 공부하지 않는다는 걸 엄마는 잘 알아."


아들이 피식 웃는다. 


"중요한 것은 너희가 좋아하는 꿈을 찾는 것. 그것을 이루기 위해서 스스로 노력하는 것. 

그 꿈을 이루기 위해서 공부를 해야 한다면, 엄마에게 보여주기 위해 하지 말고, 널 위해서 해. 

좋아서 하는 공부가 더 효과가 있잖아. 

세상에 쉬운 일은 없다는 것도 잊지 마. 그냥 이루어지는 일은 없어.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하기 싫어도 해야 하는 것들도 있잖아. 필요하다면 버텨야 해. 해내야 해. 

그렇게 해 내고 나면 엄청 뿌듯할 걸? 엄마 말 무슨 말인지 알아?"


"응, 알아" 


정말 알아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들은 내게로 다가와 나를 꼭 껴안아주고 "엄마, 잘 자!" 하며 평화스럽게 방으로 들어갔다. 


아이가 공부를 안 하고 게임을 하고 있을 때 입에서 불을 뿜으며 소리 지르고 싶을 때가 있다. 아이를 키우는 게 수련을 하고 도를 닦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그래도 난 아이들이 마음의 문을 닫지 않게 이 시기를 잘 보내고 싶다. 누구에게나 성장통은 있는 것이니까. 


아이의 얼굴이 흐렸던 어느 날 아침, 왜 인지도 모르고 얼굴에 그저 비를 내리고 있던 날. 

비비안 그린(Vivian Greene)의 메시지를 보내줬다. 


Vivian Greene의 말

'인생이란 폭풍우가 지나가기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빗속에서 춤추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 Vivian Greene


"너에게 폭풍우가 온다면 엄마가 함께 뛰어나가 춤춰줄게. 어떻게 하면 춤을 더 잘 출지 같이 생각해보자."

라는 나의 메시지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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