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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ujin Kim Sep 08. 2022

이름을 제대로 불러주세요.

비록 제가 상품일지라도.

당신은 얼굴을 더 잘 기억하나요, 이름을 더 잘 기억하나요?


사람도, 사물도, 장소도 모두 이름이 있다.

영국 York 대학의 심리학 박사인 Rob Jenkins 교수는 사람의 얼굴을 기억하는 것은 인식(Recognition)에 의한 것이고, 이름을 기억하는 것은 회상(Recall)과 관련이 있다고 했다. 인식은 우리가 무엇을 보았을 때 감각적 신호를 통해 기억 속에 내재되어 있던 어떤 정보와 맞을 때 인지하는 것을 말하고, 회상은 어떤 신호 없이 기억을 검색해서 끄집어 내는 것을 말한다고 한다. 그가 연구한 결과에 따르면 연구에 참여한 사람들의 83%가 이름을 기억해 낸 반면, 그중 64 %만 얼굴을 기억해냈다고 한다.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것과는 달리 사람들은 얼굴보다는 이름을 더 잘 기억한다고 발표한 것이다. 의외의 연구 결과였기 때문에 다시 한번 나의 경우를 찬찬히 생각해 보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나는 이름보다는 사람의 얼굴이나 장소의 이미지를 더 잘 기억하는 사람이다.  


정확한 상품명을 알아야 빠른 인터넷 쇼핑이 가능하다.


나는 주로 직접 슈퍼마켓에 가서 장보는 일을 즐긴다. 무겁다거나 부피가 큰 물건들은 온라인으로 주문을 하지만 대부분은 직접 가서 보고 고르는 것을 좋아한다. 싱가포르로 이사 와서는 한국에 없는 물건들도 구경할 겸 직접 슈퍼마켓에 가서 사 오곤 했는데, 신용카드가 아직 없어 온라인으로 쇼핑하는 것이 불가능했기 때문이기도 했다.

이곳은 더운 여름의 나라. 물이며 주스, 우유 등 음료 품목의 소비가 상당히 늘었고, 그런 품목들은 무거웠다. 사러 가기 귀찮았던 나는 할 수 없이 남편에게 부탁을 했다.


쇼핑 품목을 얘기하다가 나에 대한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난 이름이나 상품명을 잘 외우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혼자 일을 처리할 때는 말할 필요가 없어 별로 티가 나지 않았는데, 남편에게 시키다 보니 바로 티가 났다.


"물이랑, 주스 같은 무거운 거 주문해야 해.

Lasada(라사다)에서 주문해 줘."

"Lazada(라자다)?"

"그래, 거기."


평소에도 가족들은 내가 한국식으로 P와 F를 구분하지 않고 말한다거나 L과 R을 구분하지 않고 발음하면 엄청 놀린다. 아니 놀린다기 보다 정말 못 알아들을 때가 있다.

'이것들이 장난하나'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지만, 그들에게는 완전히 다른 단어라 진짜로 못 알아들을 때가 있다.

이름을 제대로 못 외우는 나는 이번엔 Z와 S도 구분하지 못했다.


"뭐 주문할까?"

"생수, 그 Dawani(다와니)"

"Dasani(다사니)?"


그냥 알아서  주문하지  자꾸 질문을 하는 걸까?

나중에 상표를 보니 'S' 특별히 강조되어 있는데  그걸 다와니로 읽었을까?



"또 뭐?"

"키위. 애들이 키위 맛있었대."

"어떤 거? 종류가 많아."

"우리 항상 먹는 거 있잖아. 제프리."

"Zespri?"



개떡같이 말해도 찰떡같이 알아듣는다며 기뻐할 일이 아니었다.


"또 뭐 주문해?"

"바나나. 그 Dol 바나나."

"Dole?"


이렇게까지 무식하지 않은데 왜 그랬을까.


한국에 살 때도 남편이 Paulaner(파울라너)라는 독일 맥주를 사오라고 시켰는데,

전화로 Plauner(플라우너) 그거 없다고 말해서 웃음거리가 되고도 정신을 아직 못 차렸나 보다.


TV를 잘 안 보고, 광고를 잘 안 봐서 귀에 익지 않아 그렇다고 하기엔

설득력이 부족한 그런 상황이었다.

상품명을 그냥 열심히 안 봐서 그런 것 같은데,

명칭을 제대로 대답을 못하니 사람이 좀 없어 보인다.

언어를 전공하고 언어를 가르치는 사람이 이럴수는 없는거다.


이름이 잘 생각나지 않을 때나 뭐라고 얘기하기 곤란할 때 충청도 사람들은 '저기'하다고 얘기하고, 전라도 사람들은 '거시기'하다고 한다고 들었다. 그런 지방색있는 용어나 표현들이 정감있다는 생각을 했는데 나처럼 맞는 듯 틀린 명칭을 얘기하니 사람이 좀 모자라 보인다.

이제부터는 명칭을 제대로 외우기로!


뉴스를 보니 태풍 '힌남노'를 '한남노'라고 잘못 부르는 실수를 하는 사람들도 꽤 있나보다.

나같은 사람이 또 있다는 생각에 위로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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