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 아버지는 치매라서 좋겠다

명절

by 열정의 개척자

아이를 낳고 몇 달에 한번씩은 인사를 드리러 갔다. 아버지댁에 가도 반겨 주는 사람은 없었다. 그래도 아이에게 가족의 부재를 보여주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서 꼭 분기마다 한번은 가려고 했고 처음 맞는 명절에는 되도록 전날에 갔다.


하지만 우리 아버지는 내 상상을 벗어나는 분이었다.


출산 후 처음으로 방문한 우리에게는 시집살이가 기다리고 있었다. 분명히 누나도 오지 않고 동생도 오지 않고 우리는 어머니 제사도 지내지 않았다. 조부모님 제사는 작은아버지께서 가져가셨다. 그런데 명절에 해야 할 음식이 가득 쌓여 있었다. 아무리 사이가 멀어져도 자식으로 음식을 하는 것에는 불만이 없었다. 그런데 거실에 펼쳐진 음식 재료는 수준이 달랐다.


전을 얼마나 할 예상이었는지 모르지만 달걀이 10판이 넘었다. 동태포만 부쳤는데도 대형 채반 하나가 가득 찼다. 내가 불 앞에서 전을 부치고 있을 때 아내는 아이를 데리고 오색 꼬치전을 꽂고 있었다. 동그랑땡도 사는 제품이 아니라 고기, 오징어, 밀가루, 당근을 잘라 직접 만들었고 호박전, 김치전, 산적까지 하루 종일 움직이지도 못하고 밤늦게까지 요리만 했다.


밤늦게 내연녀의 아이들이 명절이라고 집에 왔다. 결혼한 첫째는 밤늦게 왔고, 아버지와 같이 사는 둘째는 어디선가 놀다가 들어왔다. 다음날 아침에 거실에는 제사상이 차려져있었다. 바로 내연녀의 남편이며 아이들의 아버지 차례상이었다. 전날 내가 준비한 차례 음식은 모두 내연녀의 남편을 위한 제사음식이었다.


한켠에서 제사를 지내고 있을 때 우리 부부는 떠날 준비를 하였다. 어머니 산소를 들렸다가 처갓집으로 내려갈 예정이었다. 처갓집에 갈 동안 먹을 간단한 요깃거리를 챙기기 위해 간 부엌에는 음식이 모두 정리 되어 있었다. 내연녀의 남편 산소에 갈 음식, 내연녀 아들부부가 챙겨갈 음식, 본인들 음식까지 혹시나 우리가 가져갈까봐 모두 정확하게 나뉘어서 정리되어 있었다.


아침도 먹지 않고 아이를 챙겨 부랴부랴 나왔다. 제사를 지내지 않지만 그래도 그날 어머니 산소의 텅빈 상석이 그렇게 서럽게 보일 수가 없었다. 어머니는 죽어서도 이런 대접을 받고, 평생 불효한 아들도 이제 이렇게 살아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그동안 엄마는 일 년에 몇 번이고 제사를 지내야 했고, 제사면 며칠 전부터 음식을 했는데 정작 우리 엄마 상석은 텅 비었구나.


그때부터 난 명절이면 당일 아침에 잠깐 얼굴만 보이고 만다. 아버지에게 명절은 어떤 날일까? 내연녀가 자기 남편 제사를 위해 하루 종일 자기 자식과 며느리에게 일한 것을 기억할까? 명절이면 자식도 떠나고 내연도도 자기 자식과 함께 떠난 빈 집에서 뭘 하셨을까?


이제 아버지는 기억을 못한다. 아버지의 명절은 이제 20년전 어머니랑 할머니랑 어린 시절의 자식들과 함께 지낸 기억밖에 없다. 아버지는 치매라서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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