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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chi H Feb 26. 2023

19. 아버지의 유산

아! 제발

오전 비행을 일찍 마쳐서 컨디션이 최고다. 산호세  호텔에 체크인을 하고 재빨리 운동화를 갈아 신었다. 라면 맛집을 부리나케 가지 않으면 한참을 줄을 서야 한다. 난 이럴 땐 혼밥을 즐긴다. 왜? 혼자 가면 다른 사람들이랑 합석하기가 쉽고 줄도 오래 서지 않아도 된다. 난 음식이 대해선 무지 진지하다. 뱃 살이 꺼지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산호세는 사실 샌프란 시스코에서 한 시간 거리의 옆동네이다.  샌프란 시스코 호텔에  지내는 일이 있어도 집에 굳이 가고 싶지 않다. 집에 가면 할 일이 많으니 더 피곤하다.


승무원들은 개인 맛집이나 볼거리  추천 리스트가 있다. 주로 난 일본 할머니가 직접 수작업하시는 두부를 먹으러 가거나, 호텔 건너편 라면 맛집을 가거나, 근처 한국 목욕탕을 가기도 한다.  아시아분들이 집결해서 사는 곳이라 먹거리도 다양하다. 학군도 좋고, 스탠퍼드 대학도 있고 호텔옆에는 애플. 구글 그리고 삼성 내로라하는 글로벌 회사들이 늘어져 있다. 난 오로지 라면 생각뿐이었다.


기장들이 저녁을 같이 먹자고 다들 만나자고 한다. 같은 베이스에서 일하는 기장들이고 삼일을 같이 비행을 해야 하니 빠지기도 애매하다.  라면을 최대한 빨리 먹고 저녁때에는 샐러드나 먹어야겠다.


실컷 싸돌아 다니다가 지친 몸으로 승무원들과 기장들을 호텔 식당에서 만났다. 배가 다시 고픈 건 뭐 어쩔 수 없다. 그렇게 다짐한 샐러드는 보이지 않고 기장이 주문한 햄버거와 감자튀김만이 눈에 들어온다. 시원한 맥주는 기본이지.


기장은 오늘 자기가 밥을 산다고 한다. 정말? 앗 싸! 햄버거와 감자튀김을 시켰다. 무슨 복권 당첨 됐냐고 놀리는데 , 기장의 황당한 대답은 “ I am getting a divorce “ 아니, 이혼을 하는데 밥은 왜사? 눈치 없이 시킨 난 뭐야?


그는 지난 몇 달간 너무도 힘든 시간을 보냈다고 한다. 아내와 아이들의 문제로 너무 우울하고 화도 나고 힘들었다고 한다. 오늘 비행을 하는데 승무원들도 너무 즐겁게 단합이 되어서 오랜만에 기분이 너무 좋다고 한다. 휴! 저녁식사 거절 안 한 것이 천만다행이다.


사연은 이렇다.  그는 공군에 들어가 파일럿이 되어서 무지 젊은 나이에 기장이 된 편이다. 그의 나이가 37.  잘생기고 젊고 뭐 나무랄 게 없다. 얼마 전엔 5천만 원을 들여서 자기가 꿈에 그리던 수영장과 바비큐 가든을 만들어서 너무 행복했다고. 아내는 고등학교 때 만난 첫사랑. 완벽했다.


아내는 초등학교 선생님이고 자기 옆에서 헌신을 한 좋은 아내였다고 한다.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같이 고생해서 이제 좀 고생 끝 낙이라고 생각하는 찰나.


아내의 불륜을 알게 된 것이다. 왜? 이제 와서? 5천만 원 들어서 만든 그의 드림 수영장에 외간 남자가 들락날락, 바비큐는 딴 놈이? 너무 화가 나, 나의 햄버거는 소화가 될까? 하는 생각이 든다.


맥주 한잔 다들 추가 주문. 부기장과 승무원들의 입에서 욕이 바가지로 나오고 있다.


아내는 자기보다 훨씬 어린 20대 남자와 불륜을 했다. 같은 학교 교생? 오 마이갓! 문제는 그녀가 그놈의 아이를 임신한 것 같아서 이혼을 결심했다고 한다. 평상시 쌍욕을 잘하지 않지만 여기선 쌍욕이 나온다.


그의 가장 아픈 사연은 이게 아니다. 아버지의 유산. 그가 사는 집은 아버지가 물려준 집이다. 그 집을 그녀에게 줄 수 없다고, 아버지가 필리핀에서 이민을 와서 평생 고생해서 피땀으로 모은 돈으로 산 집이다. 고향으로 돌아와 다시 그 집을 고쳐서 이젠 정말 내 집으로 만든 그 순간 어쩌면 포기를 해야 할 상황이 온 것이다.


싸돌아 다녀서 다리가 너무 아프지만, 우린 그의 곁을 쉽게 떠나지 못했다.  다음날 숙취는 기장이 산 던킨 도너츠 박스다!  아! 제발 나의 뱃 살은 언제 꺼지냐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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