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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chi H Dec 06. 2023

Tinder

귀차느즘

자주 장소를 옮기는 직업이라 주변에 데이터 앱을 이용하는 친구들을 종종 본다. 사실 승무원들이나 기장들은 싱글에겐 최악이다. 사람을 만날 기회가 있다고 하지만, 사람을 만나 오랫동안 알아 가는 시간을 벌기는 쉽지가 않다.


초창기 데이터 앱이 나왔을 때에는 특히 싱글인 게이들이 자주 이용을 하였는데, 점점 주변 싱글인 친구들이 앱을 이용하여 낯선 남녀들을 호텔에서 만나거나 바에서 만나는 경우를 보았다. 처음엔 너무도 이상하다고 생각하였는데, 따지고 보면 내가 참 고지식한 것이었다. 바쁘다는 핑계로 전화기를 들고 요구르트 하나도 배달을 시키려고 하는 나를 보면 참 세상이 변했구나 실감을 한다.


엄청나게 에너지가 넘치고 패기 있고 잘 생긴 다비드가 기억이 난다. 풋풋한 20대 중반의 열정과 너무나도 순수한 웃음에 누구든 푹 빠져드는 마법 같은 친구였다. 그러나 다비드는 위험한 데이트를 종종 즐기는 친구였다. 그 순수함 뒤에 욕망이 가득 차 주체를 할 수 없는 친구였다.


 한편으로는 천진난만한 막내 동생을 생각나게 하는 마음이 따뜻한 친구였다. 난 그때 30대 중반에 어린아이를 키우는 주부여서 나에게만 오로지 주어진 시간이 그리 많은 형편은 아니었다. 다비드의 연애사는 나에게는 육아와 주부의 생활에서 벗어난 야동이야기를 듣는 일탈이었다. 나의 일상에서 벗어날 수 있는 신세계를 본 것이다.

다비드는 그렇게 매주 나에게 주간 데이트 보고를 하고 야동이야기를 해주며 나의 만망스러운 표정과 창피함 그리고 스스라침에 자지러지게 깔깔 웃어대며 개구쟁이같이 나를 놀리곤 했다.


 어느 날 울먹이는 다비드의 목소리가 전화기로 흘러나오는데, 그동안 그의 야동이야기를 즐긴 나 스스로 죄책감을 느꼈다. 설마 내가 상상한 그런 끔찍한 일들이 설마 다비드에게?

사실은 그의 절친인 친구가 살인을 당했다. 내가 상상했던 그 낯썬 사람과의 만남에서 변수가 생긴 것이다. 그의 절친은 꽤나 알려진 비즈니스맨이다. 그의 죽음은 미디어이의 관심을 가지면서 이런 데이트 앱의 위험에 대한 경각심을 조금은 알리는 사건이 되었다.


다비드는 그렇게 조금씩 성장해 갔다. 철이 들었다고 하나? 재미있는 건 다비드는 꽤 나이 든 잘 나가는 비즈니스맨 중년은 더 이상 만나지 않겠다고 나에게 농담으로 말한 적이 있다. 조금은 안정적인 직업에 성공한 사람들을 만나면 대체로 나이 차이가 많이 나곤 했다. 왜 그러냐고 했더니, 저녁 8시 뉴스를 보고 나면 다들 피곤해서 곯아떨어진다고, 그럼 자기 혼자 컴컴한 침대 위에  멀뚱멀뚱 뜬눈을 샌다고…… 참내! 남의 이야기가 아닌데, 난 8시에 이미 잠옷에 반쯤은 감긴 눈을 통제하기 힘들구만. 열정이 있는 그가 참 부럽기도 했다.


 드디어 맘에 드는 남자가 생겼다고 한 친구가 들뜨며 알려준다. 그런데 세 번은 만나보고 결정을 하겠다고 한다. 다른 프로파일도 아직 검색 중이라고 하면서. 뭔 경매장에 나오는 물건을 고르듯이. 우린 정말 그만큼 시간이 없을까? 아님 그냥 주저하며 귀차니즘이 일상을 차지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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