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 - 1. 뱀사골 할머니

Pubirty 사춘기

by Ichi H

중학생이 되어 가장 좋았던 것은 드디어 나에게도 혼자만의 방이 생긴 것이다. 그전까지는 큰방이 거실도 되었다가 밤이면 부모님과 나 그리고 두 남동생들이 같이 잠자리를 해야 하는 곳이라 혼자서 보낼 수 있는 공간이라는 것은 정말 사치였다. 게다가 텔레비전을 보거나 어른들이 술상이라도 벌리면 꼼짝없이 구석에서 등짝을 최대한 구부리고 앉아 있는 듯 없는 듯, 김씨네, 최씨네, 돼지농장아저씨네, 배추집 할머니 등등 모든 동네사람들 집안 소식들을 생중계로 듣게 된다. 참내 그 어린 나이에 세상물정을 많이도 듣고 자랐다.


사춘기인 오빠는 뒷채에 떡하니 자기 공간이 있고, 언니는 작은 방을 차지했는데, 친구들이 수시로 드나드니 출입금지령이 많았다. 창고로 쓰던 부엌에 딸린 방을 드디어 아빠가 보일러를 깔아주며 냉방이 온방이 된 것이다. 창고방이니 그리 크지 않았다. 자그만 공간에 조그만 상을 펴서 책상을 만들어 주고 이불을 하나 깔면 모든 공간이 채워진다. 무엇보다 지극히 분리된 공간이라 부엌을 돌아서 아님 안채를 한 바퀴 거의 다 돌아야 들어갈 수 있는 공간이라 어린 동생들이 무서워서 함부로 불 꺼진 부엌을 뚫고 오질 못했다. 그 당시 느꼈던 행복한 흥분을 아직도 어렴풋이 기억한다.


단, 새벽같이 일어나서 아침밥을 준비하는 소리에 제일 먼저 일어날 수밖에 없는 나. 하지만, 나만의 공간이 있다는 것에 세상을 다 가진 아이였다. 동생의 발차기에 얼굴을 안 맞아도 되고, 아빠의 코 고는 소리에 귀를 막지 않아도 되고. 막내 남동생의 칭얼대는 잠투정에 짜증을 내지 않아도 된다. 엄마의 품이 그리울만치 어리지도 않았고 엄마는 이미 많이 지친 중년이었다. 그녀는 그럴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여태까지 나 스스로 일찍 일어나는 줄 알았다. 그런데 문득 생각해 보니 자의 반 타의 반이었다. 도마 소리를 들으면 똑 똑 똑!!! 어지간히 귀에 익힌 소리에 오이무침을 하나보다, 감자조림, 두부부침? 이리저리 방문을 열어 다니며 아침밥반찬을 가장 먼저 식구들에게 알림을 한다. 반찬투정이 제일 심한 오빠는 반찬방송에 일어나기도 하고 그냥 더 퍼질러 자기도 했다. 난 때론 일찍 일어나 할 일이 없으면 따뜻한 가마솥 둘레에 맨발로 앉아 엄마가 밥 하는 것을 지켜보며, 틈을 보아 반찬을 미리 하나씩 기미를 한다. 가마솥에서 풍기는 밥냄새와 장작나무 타는 냄새가 코끝에 느껴진다.


수확기에는 주말에 종종 과수원을 가셔서 일을 하시고 이틀 주무시고 일요일 저녁이면 돌아오신다. 그럼 나에겐 토요일은 자유다. 주중에는 어차피 학교를 다들 가니 언니가 밥을 대충 챙겨주었다. 토요일도 학교를 가던 시절이라, 일찍 마치고 오면 밤을 새워도 잔소리할 사람이 없으니, 난 순정만화를 빌려서 신나게 집으로 달려왔다. 슈퍼도 들려 밤새 나만을 위해 준비한 간식거리도 매의 눈으로 째려보는 동생들의 눈을 피해 007 작전으로 집을 들어섰다.


어! 아빠의 트럭이 마당에 있다. 뭐야? 만화책을 숨겨야지! 만화책을 보는 것을 말리지는 않으셨지만, 밤늦게까지 잠을 안 자고 늘어진 나의 모습이 보기 싫을 거라고 짐작한다. 아! 그 순간 오로지 나만을 위한 축제의 밤은 없다는 것을 알고당황스러웠다. 그러나 더 큰 절망이 기다리고 있었으니. 그 해 가을 가장 행복한 사춘기를 기대하던 나의 꿈이 무너지는 여정은 이렇게 시작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