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 - 2. 뱀사골 할머니

Frustration 서러움

by Ichi H

사극에서나 볼만한 곱디고운 한복을 입고 있는 할머니가 마루에 앉아 있다. 머리기름이 어찌나 반들반들 잘 발라졌는지 저 멀리 떨어져 있는 대문 앞에서도 그녀의 쪽머리가 눈에 띄게 빛이 난다.


은장도인가? 아니지? 머리에 꽂은 순수한 은비녀가 내 눈엔 뭔가 불길한 감을 준다. 얼마나 이쁜지 군데군데 나있는 흰머리마저 화려하다. 그녀의 두 눈이 완벽하게 동그란 모양이다. 젊었을때 그녀의 미모가 상상이 간다. 눈은 어찌나 맑은지, 어찌나 곱고 주름도 없는 얼굴에 말똥말똥 나를 위아래로 흩어보며 웃는 모습에 나도 모르게 마루 끄트머리에 홀린 듯 앉게 되었다.


“ 누구야?”


“ 할머니한테 인사해야지” 할머니? 난 할머니가 없는데? 누구 할머니야?


“ 안녕하세요”


할머니는 나에게 다가오라며 손짓을 한다. 손에 뭔가를 꼭 쥐고 있다가 아주 조심스럼 게 손가락을 하나씩 펴는데, 섬뜩! 할머니의 한쪽 엄지 손가락이 마침 뱀머리같이 내 얼굴에 다가온다.


동생들은 이미 사탕을 받아 입에 물고 순진하게 엄마 아빠가 왔다고 천방지축 마당을 헤집고 다니며 트럭에 올랐다 내렸다 하며 짜증 나게 돌아다닌다.


언니는 재미나는 표정으로 나에게 뭔가 미심쩍듯한 눈치를 보내면서 평상시 붙임성이 좋은 성격에 재잘재잘 잘도 수다를 뜬다.


“ 할머니! 이름이 뭐야? 할머니, 어디서 왔어? 할머니 참 곱다. 어머 할머니 이런 한복은 어디서 났어?”


할머니는 언니가 이뻤는지, 뱀머리 같은 엄지 손가락 공연을 하신다. 언니는 깔깔거리며 재미있다고 같이 손가락 공연을 펼치고 있다. 미친년!이라고 생각이 든다. 뭔 짓이여!


평상시 말이 없고 낯을 가려 핀잔을 잘 듣는 나에겐 참 어려운 숙제였다. 이게 도대체 무슨 상황이야?


“ 할머니 목욕물 해드려야 하니, 수건이랑 비누 챙겨서 와” 엄마의 말이 순간 내 정신을 번쩍 들게 했다.


“ 할머니가 왜 우리 집에서 목욕을 해?”


아빠는 모른 척 마당을 지나 잽싸게 사라졌다.


“ 할머니, 우리랑 같이 살 거다. 네 방에서….. “ 언니의 장난기 있는 말이 모기소리같이 윙윙… 세상에서 가장 듣기 싫은 소리가 되었다. 아 언니만 아니면 한대 쥐어박고 싶었다.


”뭐? “ 엄마는 저녁밥 해야 한다며 부엌으로 들어가고, 언니는 할머니 목욕준비를 해야 한다며, 나의 반박을 듣기 전에 총알같이 사라졌다.


정적! 할머니와 나만의 시간이 멈추었다. 난 비명을 지르고 싶었다. 목구멍에서 나오지 않는 나의 비명을 눈치채셨는지, 큰 눈망울이 나에게 쏠린다. 부끄럽고, 화가 나고, 내 평생 살면서 느껴보지 못한 뭔가 울컥함이 생겼다. 아마도 서러웠을 것이다.


아아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