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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chi H Mar 24. 2023

36.토끼와 거북이

핵존심

여자라서? 승무원이라서? 아님 뭐지? 가끔 승무원들을 무시하는 기장들이 있다. 여자들을 무시하거나 어깨에 줄을 달고나면 으쓱해지는 기장들이 있다.


어느 날 기장이 코로나에 걸려 죽다가 살아왔다고 주절이 주절이 브리핑을 하면서 늘어놓는다. 아이들도 동시에 걸려 모두 힘들었다고, 자기는 평상시 마라톤도 달리고 운동도 많이 하며 건강한 체질인데 걸렸다고 난리다.


코로나로 인해 각 주마다 의견차이가 많아 코로나를 가지고 사이비라던지 중국사람이 번졌다던지, 백신을 맞으면 죽을지도 모른다던지 사내에서도 직원들끼리 의견차이로 비행 소통문제로 차질이 생기기도 했다.


가만히 듣고 있지니 궁금해졌다. 그 기장은 애리조나에서 온 기장인데 보통 그곳은 보수적인 주로 대부분 코로나를 믿지 않고 마스크도 잘 안 쓰는 동네이다. 혹시 백신을 맞았냐고 물었는데, 대뜸 기장이 발끈해서 그게 무슨 상관이냐고 묻는다. 그냥 궁금해서 물어보았다고 혹시 백신을 맞고 안 맞고 차이가 있는지 모르니까? 그의 자존심을 건드린 것이다. 자기도 모르게 발끈한 것이 멋쩍었는지 백신을 받지 않았다고 한다. 더 이상 묻지 않았다. 죽다 살아났는데 뭐! 살았으면 다행이지. 너의 핵존심 살려줄께.


어느 날 아기 카시트가 좌석벨트에 끼여 빠져나오질 않았다. 아무리 빼려고 해도 나오지 않으니, 탑승수속을 못하고 있는데 더 이상 지체했다간 비행기가 지연이  될 상황이었다. 일단 기장에게 알리고, 항공기술자를 불러 가위로 잘라서 벨트를 갈자고 했더니, 기장이 나를 쳐다보면서 그렇게 하는 거 아니라고 하면서 아무것도 모른다며 무시의 말투로 내게 한마디 한다. 기장은 자기가 해보겠다고 무력으로 잡아당기고 의자를 흔들어도 보고 별 짓을 다 한다. 항공엔지니어가 마침 와서 상황을 보더니 하는 한마디, 이거 가위로 잘라서 다른 벨트로 갈면 된다고 한다. 기장은 아무 말 없이 그렇게 하라며 사라진다. 난 아무 말도 안 했다. 창피한 뒤통수에 무언의 쌍욕을 날렸지만, 아마도 나의 따가운 눈빛을 느꼈을 것이다.


이렇게 아무렇지도 않은 그저 상식적인 것들도 여자라서? 승무원이라서? 의견을  받아들이기 힘들어하는 기장들이 있다.


때론 승무원들이 자기보다  높은 학력을 가지고 있으면 자격지심에 자기가  돈 잘 벌고 있다는 얘기를 하는 기장도 보았다. 정년퇴직을 얘기하면서 이런저런 돈 얘기를 하는데, 자기가 휴가를 가면 하루 평균 600불 정도의 식비를 쓴다고 한다. 다른 승무원들이 그렇게 많이 쓰면 일을 많이 해야 하겠다고 하니 자기가 돈을 많이 벌어서 괜찮다고 한다. 난 가만히 듣고 있다가, 65세 정년 퇴직하고 나면 뭐 할래? 앞으로 100세 시대인데, 뭐 할 거야? 그렇게 쓰다가 돈 바닥나겠다 했더니, 자기도 그게 고민이란다. 돈을 잘 벌고 많이 벌고 가 문제가 아니라 얼마나 어떻게 잘 쓰냐가 문제라고.  그래서 기장들이 알코올 중독자들이 많아진다. 너무 일찍 정년퇴직이 되니 할 일이 없어진다. 아내들은 특히나 집에 없던 남편이 갑자기 집에 있으면 더욱더 갈등이 생기고. 그래서 황혼 이혼도 많다.


승무원은 80까지도 일할 수 있다. 느린 거북이가 빠른 토끼를 잡는다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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