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지갯빛 삶

삶을 선택할 권리

by Goodmorning

우리는 홍콩의 한 어학원에서 만났다. 나는 남편의 일 관계로, 그는 연인 때문에 홍콩에 왔다.

까무잡잡한 피부에 아담한 체격의 그는 태국출신이다. 같은 반에서 서로 능숙하지 못한 영어로 소통하며 친구가 되었고, 그는 다른 사람들과도 두루 잘 어울리고 있었다.

이십 대 중반의 그와 나는 열다섯 살의 나이차가 남에도 나와 일본친구 이렇게 우리 셋은 유독 친하게 지냈다.


어학원의 우리 반은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이 10명 남짓 모여 영어를 배운다. 수업은 매일 오전 9시부터 오후 1시까지 있고 중간에 한 번 20분 쉬는 시간이 있다. 수업이 모두 영어로 진행되기에 알아듣지 못하는 고충을 함께하는 반 친구들과는 어느 정도 동지애 같은 느낌도 들어 같은 수업을 듣는 동안 꽤 친하게 된다.


수업이 끝난 어느 날, 그가 자신의 집으로 가서 점심을 해주겠다고 제안했다. 여자 대여섯 명이 함께 그의 집으로 향했다. 가는 길에 재래시장에 들러 그는 태국음식을 만들기 위한 식재료를 늘 익숙한 일처럼 꼼꼼히 샀다.

월세가 비싸기로 유명한 홍콩에서도 꽤 좋아 보이는 집으로 들어간 우리는 깨끗하고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는 모습에 탄성을 지르기도 하고 세련되게 꾸며진 집 분위기에 집 구경을 하느라 한동안 수선대며 이방 저 방을 왔다 갔다 했다.


우리가 그러는 사이 그는 뚝딱뚝딱 밥과 함께 서너 가지의 태국 요리를 솜씨 좋게 준비해서 음식을 차려 놓았다. 요리 솜씨는 정말 환상적이었다. 태국요리 전문점에서 먹는 것보다 더 맛있었다. 태국에서 직접 가져온 손절구와 마른 향신료를 보여주며 그것이 비법이라고 자랑하듯 뽐내는 얼굴엔 만족스러운 미소가 듬뿍 머물렀다.


그는 성소수자이다. 유럽인 파트너와 함께 살고 있었다. 둘이 다정하게 찍은 사진이 그의 집 곳곳에 장식되어 있었다. 그날 우리를 초대하고 음식을 해주며 자신에 대해 솔직하게 보여주고 마음을 담아 따뜻한 요리를 대접해 준 것이다.


막연하게 예측만 하고 있다가 막상 그의 집에서 파트너와 찍은 사진과 함께 사는 공간을 보니 머릿속은 사실 복잡했다. 영화나 매체로만 접했던 적은 정보로 그 친구의 건강도 걱정해 보고 만난 적도 없는 그의 부모님 걱정도 해보고, 오지랖이 마음속에서 활개를 치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학원에서 만나면 아무렇지 않은 척 늘 하던 대로 행동하며 오랜 시간을 지내다 보니 그 친구의 원래 선했던 마음과 행동이 더 도드라져 보이고 성정체성이라는 장막이 거둬지기 시작했다.

시간이 약이었는지 그의 선함에 스며들기 시작했던 것인지 모르겠다.


홍콩에는 성소수자들이 이주해서 많이 살고 있는 지역이다. 그만큼 편견이 덜 한 도시라는 뜻일지도 모르겠다. 나도 한국에만 있었다면 성소수자인 친구를 직접 대면할 가능성은 없었을 것이다. 그 친구를 알게 되고 그 친구를 통해 내가 가지고 있던 편견의 벽을 깰 수 있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얼마 전, 배우 윤여정 씨는 자신의 아들이 성소수자임을 밝혔다. 그러면서 성정체성과는 별개로 영원히 자신의 사랑하는 아들임에는 변함이 없다는 소회를 말했다. 사실 난 그 말에 작은 감동을 받았다.


성소수자들에 대한 문제는 아직도 여러 논란이 많은 화두이다. 유명인들이 자신의 성정체성에 대해 솔직하게 밝히기 시작했다는 것 자체가 어쩌면 사회적 변화를 드러내는 현상일 수도 있다.


물론, 그와 더불어 예전보다 찬·반 의견 또한 활발하게 논의되고 있다. 혐오에 대한 강도가 높아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성소수자들 또한 나름대로 자신들의 권리를 찾기 위한 대담한 시도를 지속하고 있다.

양쪽 모두에게 자신의 의견을 피력할 자유가 허용되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어학원 친구는 현재 독일에서 파트너와 행복하게 잘 살고 있다. 그가 선택한 삶의 방식대로 행복을 찾아갔으면 좋겠다. 그 과정에서 너무 많은 상처가 없기를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