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을 딛고 싱가포르 해외 취업 성공까지
저는 한때 소위 말하는 부잣집 딸이었습니다.
90년대 초반, 저희 집에는 콩코드 세단이 있었고, 섬유 공장과 서울에 빌딩도 있었습니다. 아버지께서는 퇴근길에 백화점에 들러 세일러복을 사 오셔서, 유일한 딸인 저를 기쁘게 해주셨지요.
하지만 부잣집 딸로서의 삶은 제가 일곱 살 때 끝이 났습니다.
가족의 보증 실수로 인해 저희 집은 길바닥에 나앉게 되었습니다. 아직도 유치원에 가던 어느 날 아침, 세입자들이 저희 집 문을 막고 소리 지르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유치원 졸업 날에도 세입자 중 한 아주머니를 피해 화장실에 숨어 울었던 기억이 또렷하게 남아 있습니다. 어린 시절, 저에게는 이런 고통스러운 기억들이 많았습니다.
제 부모님께서는 포기하지 않으셨습니다. 두부 노점, 인테리어 가게, 뉴스킨 다단계, 꽃 장사, 꼬치 장사, 각종 음식정 등 다양한 일을 하시며 가족을 위해 밤낮으로 열심히 살아가셨습니다. 그러나 예전의 부유한 삶으로 돌아가는 것은 불가능했습니다.
중학교 2학년 때, 친구들과 영화 보러 가기로 한 약속도 지킬 수 없었습니다. 돈이 없었거든요. 그때 어린 마음에 울면서 생각했습니다. ‘왜 부모님은 이렇게 열심히 일하시는데도 우리 집에는 돈이 없을까? 돈은 도대체 어떻게 버는 걸까?’
고등학교 1학년 때는 패스트푸드 음식점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했습니다. 당시 시급 천 원 조금 넘는 금액을 받으며 한 달 내내 일했지만, 손에 쥐어진 금액은 약 십만 원이 조금 넘었을 뿐이었습니다. 그때 깨달았습니다. 패스트푸드점 아르바이트로는 많은 돈을 벌 수 없다는 사실을. 그리고 퇴근길에 삼성역을 지나가는 직장인들을 보면서 생각했습니다. ‘저 사람들은 좋은 직장에 다니는 것 같은데, 좋은 직장에 들어가면 돈을 더 많이 벌 수 있을까?’ 그래서 다시 질문했습니다. ‘좋은 직장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할까?’
저는 서울의 좋은 대학에 가야 한다는 생각에, 3년 동안 주말에도 친구들을 만나지 않고 오로지 공부만 했습니다. 마침내 서울의 대학에 입학할 수 있었지만, 그곳에서도 좋은 직장에 들어가는 일이 만만치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다시 질문했습니다. ‘내가 취업 시장에서 경쟁력을 갖기 위해 더 준비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그 답은 영어였습니다. 어학연수를 알아보았지만, 집안 형편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금액이었습니다. 그러던 중 한 교수님의 도움으로 영국의 갭이어 봉사활동 프로그램을 알게 되었습니다. 지원했고, 자기 소개와 예상 질문에 대한 답변을 녹음해가며 면접을 준비했습니다. 다행히 합격할 수 있었습니다.
영국에서는 1년 동안 영어로만 소통하며 영어 실력을 키웠습니다. 그 과정에서 해외에서 살아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되었습니다. 영어로 있는 그대로 말할 수 있다는 점이 저와 잘 맞았고, 해외에서의 삶을 꿈꾸게 된 계기가 되었습니다. 돌아온 후 토익 시험을 보고, 영어 실력을 바탕으로 취업에 성공했지만, 또 다른 시련이 찾아왔습니다. 이른바 '유리 천장(Glass Ceiling)'에 부딪힌 것입니다. 학연, 지연, 혈연이 있는 친구들이 그 네트워크를 통해 쉽게 입사하고 승진하는 모습을 보며 다시 질문하게 되었습니다. '내가 노력해도 가질 수 없는 것들이 있다. 그렇다면 나는 이를 극복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까?'
그러던 중, 첫 직장의 멘토였던 분이 외국계 기업의 마케팅 부서 자리를 제안해주셨고, 사수의 지원과 준비해 둔 영어 실력 덕분에 그 자리에 합격할 수 있었습니다. 계약직으로 입사한 저는 어떻게 하면 정규직이 될 수 있을까 고민하며 열심히 일했습니다. 그 결과 1년 뒤, '이 달의 우수 사원'으로 뽑히고 정규직으로 채용되었습니다. 그 다음 해에는 '올 해의 최우수 사원'으로 선정되기도 했습니다.
그러면서 영국으로 돌아가기 위해 정부 지원 비자를 신청했고, 그 역시 합격했습니다. 그러나 예상과 달리 저는 영국 대신 싱가포르로 가게 됩니다. 싱가포르인인 남편을 만나게 된 것이지요. 저와 비슷한 가치관과 생각을 가진 사람을 만난 것은 하늘이 주신 선물이라고 여겼습니다. 또한, 영어를 좋아했던 저는 남편과 결혼하면서 평생 영어로 대화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행복했습니다. 결혼을 앞두고 싱가포르 지사에서 오픈된 자리를 알아보았고, 세일즈 포지션에 지원하여 면접을 본 끝에 합격할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저는 싱가포르로 해외 취업을 하며 글로벌 무대로 한 발짝 나아가게 되었습니다.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 중에서 저와 비슷한 경험을 하신 분들이나, 해외에서의 삶을 꿈꾸시는 분들이 계실지 모르겠습니다. 여러분의 이야기를 함께 나누고, 서로에게 힘이 될 수 있기를, 그리고 함께 성장해 나갈 수 있기를 바래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