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웃는 게 웃는 게 아니야
아이를 낳고 출산 휴가에 들어갔습니다. 당시 저는 싱가포르 영주권자로서 총 4개월의 출산 휴가를 사용할 수 있었지요. 하지만 아이가 아프거나 예방 접종을 데리고 가야 할 때를 대비해 약 3개월 반만 쓰기로 했습니다.
당시 싱가포르에는 ‘산후조리원’이라는 개념이 없었던 것 같아요.
다행히 친정 어머니가 한국에서 오셔서 산후조리를 도와주셨습니다. 먹고, 자고, 모유 수유하고, 다시 쉬고, 그 과정을 반복하며 지냈어요. 출산 전에는 거의 저녁을 먹지 않고 일했기 때문에 몸이 많이 지쳐 있었고, 그 상태에서 출산을 하다 보니 회복이 더디었던 것 같아요.
싱가포르의 후텁지근한 날씨를 견디기 힘들어 에어컨과 선풍기에 의지해 하루하루를 보냈습니다. 그렇게 약 3개월이 지나 회사로 복귀했어요. 마음은 출산 전과 다름없이 일하려고 했지만, 몸이 따라주지 않았습니다. 호르몬 때문이었는지, 별거 아닌 일에도 눈물이 핑 돌곤 했어요. 사람들에게 보이기 싫어 화장실에 숨어 눈물을 훔치던 기억이 납니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나는 누구인가?'
'여기서 왜 이러고 있나?'
얼마 지나지 않아 출근길 발걸음이 무겁기만 했습니다. 신나게 출근하던 제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하루하루가 도살장에 끌려가는 것처럼 느껴졌어요.
지금 돌이켜보면, 산후우울증 비슷한 증상이 왔던 것 같습니다. 퇴근하고 집에 와도 밥맛이 없었고, 예쁜 아이를 보고도 눈물이 주르륵 흘렀어요. 밤늦도록 잠을 이루지 못하고 창가에 서서 생각했어요.
'왜 이렇게 우울할까?'
'나를 사랑해주는 남편, 이토록 사랑스러운 아이가 곁에 있는데 왜 이렇게 공허할까?'
외로움과 괴로움이 동시에 밀려왔습니다. 한 번은 한국에 있는 친구에게 전화해 엉엉 울면서 하소연한 적도 있어요.
그러던 중 조직 내 구조 변화로 인해 저는 마케팅 업무가 아닌 세일즈 업무만 맡게 되었어요. 당시 제 매니저는 조직 내에서 많은 이들과 갈등이 있었는데, 이로 인해 일 처리가 더욱 어려워졌습니다. 그때 저는 리더가 적을 만들수록 팀원들이 얼마나 고생하는지를 몸소 깨달았어요.
결국, 산후우울증과 회사 내부 갈등이 겹쳐 저는 사직서를 내고 회사를 떠나기로 결심했습니다. 내가 먼저 살아야 한다는 마음이 컸던 것 같아요. 더 이상 죽기보다 싫은 회사를 다닐 수 없었고, 행복하지 않은 회사 생활을 끝내야겠다는 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그렇게 저는 처음으로 ‘백수’의 생활을 시작하게 됩니다. 싱가포르 새댁의 백수 생활 이야기는 다음 편에 이어갈게요.
혹시 출산 후 비슷한 경험을 하셨던 분 계신가요? 여러분은 어떻게 극복하셨나요? 여러분의 이야기를 댓글로 공유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