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꾸만 죽고 싶어요.” 지한이 말했다.
의사에게 죽고 싶다고 말하면서 죽고 싶다는 말이 의사에게 얼마나 흔한 말일지 생각했다. 식상한 말을 하는 사람이고 싶지 않지만 그렇다고 의사가 아닌 누구에게 할 수는 없는 말이었다. “주로 어떨 때 그런 생각이 드나요?” 의사가 물었다. 지한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명확히 그게 어떨 때라고 말하기가 어려웠다. 지한에게 죽음은 사건이나 상황이 아니었다. 어느 호숫가에 가득 내려앉아 있는 안개 같은 것이었다. 숨을 들이쉬고 내쉴 때마다 죽음의 안개가 드나들었다.
그래도 누군가에게 이 기분을 설명해야 할 때는 구체적이어야 했다. 지한은 자꾸 생을 포기하고 싶게 만드는 여러 상황들을 나열하고 그중 가장 심각한 것을 기억해 내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이제 세 번째 보는, 아직도 낯선 의사 앞이었고, 밖에서는 다음 환자가 기다리고 있고, 마음이 급했다. 당장 손에 닿는 아무 기억을 끄집어냈다. “음.. 에어컨이요. 에어컨을 틀 때마다 스트레스를 받아요. 지구가 자꾸 뜨거워져서 북극곰이..” 친절한 의사는 북극곰을 걱정하는 지한의 눈을 피하지 않고 지한을 이해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표정이었다. 하지만 실패했는지 추가 질문을 했다. “또 다른 상황이 있을까요?” 이제 그만 물어보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지한이 대답했다. “어, 음식물 쓰레기요. 그게 쌓여가면 뭐가 또 이렇게 많이 버려졌나 싶고. 지구가 오염되니까..” 은은한 수치심에 지한은 말을 흐렸다. 죽고 싶은데 북극곰과 음쓰때문이라니. 하지만 정말 그랬다. 눈 뜨고 있는 동안 지한을 관통하는 모든 사소한 소리와 상황과 사건들이 죽음을 생각하게 했다. “환자분에게는 환경이 많이 중요한 문제인가 보네요.” 의사는 겨우 결론을 지었다. 지한은 그만 끝내주는 환경애호가가 되어 진료실을 나왔다.
의사는 지한이 죽음이라는 생각까지 닿지 않도록, 그러니까 부정적인 생각이 깊어지지 않도록 해주는 약을 추가해 주었다. 지한은 약국에서 약을 받자마자 입에 털어 넣었다. 좀 이상하다고 생각하면서. 죽음이라는 생각이 깊고도 부정적인 생각이라는 건 누가 정한 걸까. 지한에게 죽음은 아주 가벼운 안개 같은 것인데 약을 먹는다고 사라질 수 있는 것일까. 이건 너무 대충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은 생각한다. 먹는 생각, 입는 생각, 자는 생각. 지한에게 죽는 생각도 그런 생각들 중에 하나였다. 약으로 죽음에 대한 생각을 지우려면 다른 생각들도 지워져야 맞는 게 아닌가. 문득 약으로는 고쳐지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자 지한은 좌절감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