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점 짙어지는 날들_01
대문을 열고 들어오는 아빠 손에 아이스크림이 들려 있는 날은 그 자체로 아주 특별한 날이 되었다. 미소 띤 아빠가 봉투를 내밀면 나와 동생은 ‘아빠 최고’를 외치며 아빠 주위를 방방 뛰었다. 나는 아이스크림을 사 오는 아빠가 부자라고 생각했다. 아빠가 주로 사 온 아이스크림은 티코. 갈색 상자에 담긴 작고 둥근 초콜릿 아이스크림이 우리에게 주었던 행복은 정말 어마어마했다.
나는 우리 집이 가난한 줄 몰랐다.
교회 전도사였던 아빠는 매달 월급이라고 60만 원을 가져왔다. 엄마는 그에 맞춰 알뜰살뜰 살림을 해내야 했다.
엄마는 종종 옆집에서 쌀밥을 빌려와 식지 않도록 장롱 이불더미 안에 넣어두곤 했다. 엄마에겐 가난의 일부였던 그 장면도 내게는 상상 놀이 속 숨겨놓은 식량창고가 되었다. 돈은 없어도 잘 먹이고 싶었던 엄마는 밀가루와 기름 만으로 가운데가 뚫린 기름 도넛을 만들어내었다. 야식으로는 비싼 프랜차이즈 치킨 대신 두부김치. 먹고 싶었던 음식보다 엄마가 형편 것 만들어주었던 음식들이 더 기억에 남아있다.
입장료가 무료인 올림픽공원은 우리의 단골 소풍 장소였다. 그저 잔디와 나무뿐이던 그곳에서의 시간도 온 가족이 함께하니 마냥 즐거웠다. 가족 소풍의 도시락 메뉴는 주로 컵라면, 밥, 고추장이 전부였는데도 네 가족이 돗자리 위에서 옹기종기 어찌나 맛있게 먹었는지. 그리고 퇴근 후 아빠와 해가 넘어가도록 치던 배드민턴.
엄마와 아빠는 이렇게 시간과 정성을 들여 내 유년 시절을 부유하게 빚어 주었다.
나는 우리 집의 가난을 느낄 틈이 없었다.
어릴 적 나의 부유함의 척도는 나를 기쁘게 해주는 아빠의 아이스크림 같은 작은 것들이었다. 그런 소소한 이벤트에서 느끼는 기쁨이 너무나 컸던 덕분에 나는 우리 집 곳곳에 묻어있던 가난의 흔적들을 느낄 틈이 없었다.
문득문득 아빠가 사 오던 아이스크림이 그립다.
나름대로 경제적인 만족을 누리게 되어 가고 싶은 곳 가고 먹고 싶은 것 다 먹는 요즘, 오히려 마음이 가난해질 때가 많다. 가끔 회의와 공허함이 몰려오는 날이면 동네 마트에서 티코 아이스크림을 찾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