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엄마라니_01
나는 아가씨 시절부터 임산부석의 존재가 불편했다.
특히 이 문구 '내일의 주인공을 위한 자리입니다'가 거슬렸다.
아니 왜 내 인생의 내일의 주인공이 남의 집 자식이라고 하는 거지?
훗날 임신을 하게 되더라도 임산부석엔 앉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임산부인 지금은 어떠냐고?
전철에 발을 들이면 임산부석부터 찾아 앉는다.
이건 내 나름의 일반인을 배려하는 방법이다.
나도 비 임산부였던 적이 있었으니 핑크핑크 핫 핑크로 꾸며진 임산부석이 일반인이 앉기에 얼마나 부담스러운 자리인지 안다. 웬만한 사람이라면 몸이 너무 힘들어 일단 앉고 보더라도 언제 진짜 임산부가 나타날지 살피느라, 주변의 따가운 시선을 애써 무시하느라 엉덩이 붙이고 있는 내내 마음이 편치 않을 것이다. 그래서 자리가 많이 비어있을 때는 일반석이 아닌 임산부 자리를 일부러 찾아 앉는다. 한 사람이라도 마음 편하게 앉으시라고.
그런데 임산부인 나라고 마냥 맘 편히 앉을 수 있는 건 아니다.
임산부석은 사람에 따라 ‘아저씨는 안되지만 아줌마는 괜찮아’ 자리이기도 하고, ‘노인인 나는 괜찮아’ 자리이기도 하고, ‘아가씨지만 힘들어 죽겠으니 괜찮아’ 자리이기도 하다.
이런 부류가 있으니 임산부석에 앉을 때마다 나를 흘끔흘끔 훑어보는 사람들의 시선을 느끼며 임산부가 맞는지 핑크자리에 당당하게 앉아있을 자격이 있는지 검열을 받아야 한다.
언제는 할머니 한분이 내 옆에 바짝 붙어서 내가 내릴 때까지 한참 동안 나를 내려다봤다. 마치 늙은 내가 앉을자리에 젊은 네가 왜 앉아 있는 거냐 라는 듯이. 곁에 같이 있던 남편도 그 시선이 불편했을 정도였다. (하필 임산부 배지를 챙기지 않았던 날이다.)
임산부 자리를 ‘노인인 나는 괜찮아’ 자리로 생각하는 할머니가 앉아있던 나를 ‘아가씨지만 힘들어 죽겠으니 괜찮아’의 부류로 오해한 것이다.
그래서 임산부 배지라는 증거가 함께 있어야 한다. 앉을 때 만이라도 배지를 꺼내놔야 흘끔흘끔 검열하는 시민 감시단의 마음도, 자격을 평가받는 나의 마음도 편할 수 있다.
지하철에서 앉을자리가 필요한 사람이 어디 임산부뿐 이겠는가.
20대 시절의 나도 반복되는 야근 피로에 절어 차라리 바닥에 누워 가고 싶다는 충동을 느낀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지하철은 남녀노소 불문하고 각자의 사정으로 녹초가 된 몸을 앉힐 자리가 간절한 사람들로 가득하다. 그래서 붐비는 지하철에 임산부석이 비는 것은 당연한 것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어있는 임산부석을 발견할 때면 참 감동이 된다. 나의 피로보다 양보와 약속을 우선시하는 시민분들의 배려로 남겨진 자리가 아닌가.
나는 오늘도 뻐근한 허리와 당겨오는 배를 문지르며 핑크 자리를 찾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