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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밥풀 Oct 24. 2021

아홉 가지의 명함으로 남은 사내

은퇴하고 돌아보니 내 이름 석자가 박힌 명함이 모두 아홉 가지다. 직장이나 직업을 아홉 번 바꿨다는 얘기다. 이 글의 제목은 오래전 읽었지만 줄거리는 거의 떠오르지 않는 하지만 제목만은 희한하게도 또렷이 기억되는 ‘아홉 켤레의 구두로 남은 사내(윤흥길, 1997)’라는 소설 제목에서 차용했다. 제목을 따 왔을 뿐 전혀 다른 얘기다. 대학 졸업 후 지난 8월 은퇴까지 42년에 아홉 번이니 평균 4~5년에 한 번은 이직을 한 셈이다. 하지만 짧게는 1년 미만에서 길게는 20년까지 다양하다. 평생직장을 요구하는 입장에서 보면 불안한 인력이요 다양한 경력을 찾는 회사로선 바람직한 경력이던 시절이다. 규모로 하면 대기업에서 중소기업과 자영업까지, 국적으로 보면 한국 회사에서 다국적 기업까지, 업종으로 치면 군대, 기업, 학교에 이르기까지 넥타이 매고 살아가는 남자가 속할 수 있는 조직은 거의 다 거쳤지 싶다. 

현업에 있을 때는 내가 일 자리를 찾든 혹은 우리 회사에 들어오려는 사람과의 면접이 됐든 취업이나 전업 내지는 창업과 관련한 조언이나 면담의 자리를 피할 길이 없다. 얼마 안 됐지만 은퇴한 후에도 이따금 전화나 메일로 그런 문의나 요청을 받는다. “그래? 그렇다면…”한 게 이 글을 시작하게 된 동기다. 그때의 경험, 그때의 기억을 추억에 얼버무려서 이야기하려고 한다. 듣는 이에 따라서는 쓸데없는 자기 자랑으로 비칠 수도, 은퇴한 꼰대의 시간 죽이기 넋두리일 수도 있다. 그래도 행여나 새롭게 도전할 때마다 어디 물어볼 데가 없을까 하고 두리번거리는 후배들에게는 한 경험, 한 소절이나마 도움이 되지 않을까?  세월은 흘러서 더 이상 평생 한 직장, 한 곳에만 머무는 게 미덕이 아닌 세상으로 변했다. 노사 쌍방이 그걸 원치 않는다. 게다가 취업은 줄어들고 창업이 늘고 있다. 살아가면서 두, 세 번의 전업은 이제 더 이상 특별할 게 못 된다. 

 바야흐로 4차 산업혁명 시대다. 구글링을 하면 모든 게 찾아진다. 그러나 아직도 내가 왜 살아야 하는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기초적이고 근본적인 물음에조차 포털 사이트가 제시하는 수천, 수만의 대답은 내 기대에 못 미친다. 난들 그 답을 알겠는가? 이야기의 순서는 없다. 대략 시간에 따라 회상하려 하지만 사안에 따라 경험이 중복되거나 충돌할 것이다. 해서 나름 몇 가지 주제를 영역화해서 목차를 미리 정리해 보았지만 그 또한 뚜렷하질 못하다. 변명인 즉 경험은 도제식으로 밖에 전달이 안된다는 얘기다. 활자에 담지 못한 고백은 행간에 묻어 날 거라는 기대로 부족한 필력을 가름하며 시작한다. 지금 같은 의욕이라면 한 주에 한 꼭지씩은 올릴 수 있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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