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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밥풀 Oct 27. 2021

일과 배움과 놀이

좋아하는 것, 하고 싶은 것 찾기

이브가 선악과를 따 먹지 않았다면 그 후예인 우리들은 평생 일 안 하고 놀고먹었을까? 그랬다면 아담과 이브는 에덴동산을 떠날 일도 자식을 낳을 일도 없었을 테니 우리 존재 또한 아예 없었을지도.. 본래 일이란 게 어떻게 생겨났을까? 원시 동굴에서 밤새 매머드와 같은 무서운 동물 울음소리에 두려워 떨다가 아침 햇살이 떠오르면 아버지는 아들을 데리고 사냥에 나선다. 아버지는 일하러 가는 길이요 아들은 배워야 하니 학교에 가는 셈이다. 그렇게 해서 잡아온 사냥감을 온 가족이 혹은 이웃끼리 모닥불을 피워 놓고 배불리 먹고 함께 논다. 놀이의 탄생이다. 아마도 이렇듯 본래는 일과 배움과 놀이 사이에 구분이 없었으리라. 농경 시대에 들어서도 못줄을 잡든 집을 짓든 길쌈을 매든 어른들은 일하고 아이들은 배운다. 그 중간중간에 쉬면서 논다. 노동요나 강강술래가 그런 셈이다. 이처럼 농업사회에서도 잉여 생산에 따르는 빈부의 차이는 벌어졌지만 생산과 소비, 고용과 노동 사이에 엄격한 구분은 존재하지 않았다. 여러 자식 가운데 게으르고 요령 피우는 자식이 있어 야단치고 눈치를 줄지 언정 내쫓거나 밥을 굶겨 실업자로 전락시키지는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산업혁명을 거치면서 급격히 달라지기 시작했다. 생산은 소비와 멀어졌고 고용과 실업 사이에는 결코 오갈 수 없는 틈이 벌어진 것이다. 이러는 사이에 일과 배움 그리고 휴식은 서로가 동에서 서쪽만큼이나 멀어졌다. 생산성이라는 이름 하에 모든 것이 규모화 됐다. 배울 사람을 모아서 학교를, 아픈 사람을 모아서 병원을, 생산할 사람을 모아서 공장을 만들었다. 그러던 것이 정보혁명 특히 4차 산업혁명을 거치면서 이들이 다시 아우러지는 모습을 보이기 시작한다. 이런 변화를 반영하듯 재택근무나 자율 근무제 등이 확산된다. 코로나19라는 팬데믹이 불 난데 기름을 끼얹듯 이런 변화를 가속화시킨다. IT가 주도하는 유니콘 기업들은 물론 세계 상위를 점하는 글로벌 조직 창업자들의 공통점을 보면 하나같이 젊다는 외에 자기 일을 즐긴다는 사실이다. 공자님 말씀이라는 논어 옹야편에도 ‘지지자(知之者) 불여호지자(不如好之者) 호지자(好之者) 불여낙지자(不如樂之者)’ 즉, 아는 게 좋아하는 만 또, 좋아하는 게 즐기는 만 못하다고 했다. 그러고 보면 동서고금에 진리는 통하는가 보다. 오래전 주말에 일이 있어 직원회의를 소집했는 데 한 친구가 굳이 사무실이 아닌 커피숍을 고집했다. 설명인 즉 휴일에까지 일터에 가고 싶지 않다는 얘기다. 이후 그 친구의 소식을 들은 바 없지만 돌이켜 생각하면 회사 다니기가 참 힘들었겠구나 싶다. 싫은 일을 억지로 즐길 수는 없다. 호구지책이니 목구멍이 포도청이니 하는 생존의 시절은 지났다. 최진석 교수였던가? “해야 할 일보다는 하고 싶은 일, 좋은 일보다는 좋아하는 일을 하라’고. 맞는 말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뭐가 좋은 지 뭐가 하고 싶은 지 아는 게 우선이다. 물론 지금 당장 선택지가 없더라도 이걸 알면 지금을 견뎌낼 이유가 생겨 자신을 설득할 수 있다. 경험해 본 사람은 알겠지만 자기가 무얼 좋아하는지, 하고 싶은 지 알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은 그걸 할 때 일과 배움과 놀이의 경계를 명확히 구분 지을 수 없을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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