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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밥풀 Nov 03. 2021

네트워크에 내걸린 나의 인성

쥐도 새도 아닌 거미가 듣는다

“자네 방금 저 친구가 들고나간 게 뭔 지 알아?” 몇 해전이다. 지나는 길에 이름만 대면 알만 한 대기업의 CEO로 근무하는 친구 회사에 들렸다. “글쎄…”, 비서의 안내로 막 방에 들어서는 데 제법 나이 든 직원이 서류 뭉치를 옆구리에 끼고 나서며 목례를 한다. “어, 우리 회사 인사 담당인데, 입사 서류 1차에 통과한 후보들의 온라인 글을 분석한 자료를 들고 온 거야.” 여전히 의아해하는 내게 자리에 앉기를 권하면서 설명을 덧붙인다. “왜 요즘 블로그니 카페니 해서 온라인에 글들을 많이 올리잖아, 그걸 긁어서 분석하면 글쓴이의 인성이 대략 드러나거든…” 그제야 짐작이 가 고개를 끄덕인다. “요즘은 뭐 대학에서도 취준생들을 대상으로 면접 훈련을 시킨다며?”하면서 내게 되묻는다. 사내 인사 부서나 면접을 담당하는 임직원들의 얘기가 짧은 시간에 면접만 봐 가지고는 잘 구분이 안 간 단다. 복장에서부터 동작이나 답변 내용에 이르기까지 천편일률에 청산유수라 여간해선 파악하기 어렵다는 얘기다. 그런데 일단 서류 심사를 통과하고 면접에 오른 사람들이 인터넷 상에 올린 각종 글들을 모아 소위 빅데이터식 분석을 하면 상당 부분 인성에 대한 추정과 분석이 가능하다고 한다. 수긍이 간다. 오죽하면 디지털 장례 사라는 직업이 성행할까? 학교에 돌아오자마자 학생들 특히 고학년생들에게 이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야말로 말이 씨가 된다. 그렇다고 졸업 후 면접이나 입사를 의식해서 바른말 고운 말 쓰기를 해야 할까? 그렇다. 면접을 보다 보면 “기회만 주신다면 혹은 맡겨만 주신다면 잘해 낼 자신이 있습니다.”는 힘찬 대답을 자주 듣곤 한다. 적어도 그런 답변을 하는 순간만큼은 본인의 의욕과 결의에는 일점 거짓이 없음을 믿는다. 문제는 일이라는 게 의욕만 가지고는 감당이 되질 않는다는 사실이다. 그렇다고 바른말 고운 말을 쓰는 새 나라의 모범 청년이 답일까? 그 또한 옛날 얘기다. ‘성실이 무능을 대신하 던 시절은 지났다.’ 우리의 뇌는 정보처리 과정에서 농담과 진담을 구별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고 한다. 부모가 화가 치밀어 자녀에게 심한 욕을 하면서도 속으로는 진심이 아님을 안다. 자녀 또한 홧김에 듣는 꾸지람으로 받아들인다. 그러나 뇌는 정보처리 과정에서 텍스트와 단어에 주목하며 장기적인 기억에 기록을 남긴다. 제삼자가 그 기록을 재생한다면 거기에는 인과관계를 설명하는 상황 묘사는 물론 화자와 청자의 의도가 배제되어 있다. 소셜 네트워크에 퍼져있는 글들을 면밀히 분석하다 보면 작성자의 본심이나 의도와는 무관하게 글쓴이의 성실과 능력의 흔적이 읽힌다는 것이다. 휴리스틱이니 확증편향이니 해서 별생각 없이 내뱉거나 동조한 글이 선택의 기준이 된 다니 당사자로선 억울할 수도 있다. 온라인 소통 없이는 살 수 없는 세상이다. 가상공간에서 조차 익명성은 점차 사라지고 상업성 댓글 또한 입지가 좁아지고 있다. 페이스북이 사명을 메타로 바꾼다고 하니 메타버스의 시대가 본격화되려나 보다. 전업이나 창업보다는 졸업 후 취업에 도전하는 신입사원 응시자는 한 번쯤 이 점을 유념해 줬으면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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