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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나샘 Aug 31. 2022

제주 한복판 도로에서 눈물이 나다

운전으로 홀로서기


띠링~ 문자 알림이 울렸다. 다름 아닌 딸아이의 학교에서 온 문자이다. 4월에 코로나가 유행해 딸아이 확진으로 격리기간을 겪었는데, 또 반에서 변이바이러스 2차 확진자가 나와 PCR 검사를 진행해야 한다는 문자였다.


문자를 마주하자마자, 심장이 마구 떨리기 시작했다.

'어떡하지, 나 김녕 보건소까지 운전해서 갈 자신이 없는데...'코로나 검사를 받으러 가야 할 보건소는 집에서 40분 이상 떨어진 거리에 위치해 있다.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어쩌겠나. 남편은 일하러 가고  택시를 잡을 수도 없고, 두렵지만 운전대를 내 손으로 잡아야 했다.


학교 앞에서 기다리는 딸아이를 태우러 갔다.  내비게이션에 목적지를 설정하고 크게 심호흡 후 호기롭게 출발을 했다. 처음 가는 길, 온 신경세포를 곤두세우고 네비이게이션을 의지한 채 열심히 달리는데  온몸이 굳어가는 느낌이었다. 마른침을 꿀꺽꿀꺽 삼키며 주행을 해나갔다.


한복판 도로를 40분가량 달리다 그만 내비게이션을 잘못 읽어 잘못된 길로 빠져 버렸다.

아차차, 그런데 실수를 하고 말았다. 내비게이션 거리를 읽는 게 아직은 서툴어 다음 블록에서 좌회전해야 하는데 한 블록 앞에서 좌회전을 하고 말았다.  내비게이션 지도가 다시 길을 찾느라  다급해졌다. 이어 음성이 울린다. "경로를 재탐색합니다."



놀란 나머지 나는 당황하기 시작했다. 비상 깜빡이를 켜고, 갓길에 차를 세웠다.

돌아 나오면 되겠지 하고 내비게이션의 길을 손가락으로 당겨보니 끝이 보이지 않는 해안도로가 마주한다.


딸아이에게 너무 미안해졌다. "채은아, 엄마가 너무  미안해!!! 길을 잘못 들어섰어!


괜찮아요~ 엄마!
천천히 다시 운전하면 되죠!
mom can do it



딸아이의 말을 듣는 순간, 긴장감과 두려움이 눈 녹듯 사라지는 듯했다. 등에서 식은땀이 주르르 흘렀지만 내면에서 뜨거운 무언가가 묵직하게 치솟았다.  "mom can do it" 이란 딸의 응원이 어찌나 큰 힘을 발휘하는지... 덕분에 마음을 재정비할 수 있었다. 천천히 다시 액셀을 밟고 재 탐색해 보건소에 다다랐다. 검사를 받으러 온 많은 차들로 주차장은 이미 만차였다. 어렵게 어렵게  길가에 주차를 하고 보건소 PCR 검사를 마쳤다.


검사를 마치고 다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곤히 잠이 든 딸아이 모습을 마주하는 순간 울컥하며 눈물이 차올랐다. 운전이 미숙한 엄마 때문에 얼마나 긴장했을지 그 마음이 전달되었기 때문이다.  딸아이를 모습에 안타까움과 애잔함이 함께 찾아왔다. 6년 전, 딸아이를 유치원에 데려다주다 사고를 낸 트라우마가 있기에 더욱 긴장했을 터이다.


눈물은 멈추지 않고 계속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슬픔의 눈물이 아닌 기쁨, 안도의 눈물이었다. 나 또한 사고 트라우마를 이겨내고 남편의 도움 없이 스스로 운전으로 홀로서기 한 기특한 날이기도 하다. 스스로 무언가를 해냈다는 뿌듯함이 큰 포말을 일으키는 파도처럼 크게 일렁였다.


남편은 다시 운전을 해보라고 수도 없이 권했었다. 하지만 우주 최강 겁쟁이인 나는 선뜻 용기가 나지 않았다. 어렵게 운전면허를 취득하고 운전대를 잡은 일주일 만에 사고가 났기 때문이다. 그 이후로  다시 잡을 수가 없었다. 그런 쫄보인 내가 다시 운전대를 잡고 제주도 한복판 도로를 달리고, 아이들 등원을 책임지고, 마트에 가서 장을 보기도 한다.  지난주엔 제주도에 나를 보러 온 친구를 태우고 예쁜 브런치카페를 가고 구좌읍 해안도로를 드라이브하기도 했다.


 결코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운전으로 홀로서기기까지  큰  용기가 필요했다.



<오즈의 마법사> 이야기를 좋아한다. 주인공인 도로시는 허리케인 돌풍에 휘말려, 오즈의 나라에 불시착한다. 주변 사람을 붙잡고 어떻게 다시 집으로 돌아갈 수 있는지 물어보니, 전지전능한 오즈의 마법사만이 문제를 풀어줄 거라고 했다. 오즈의 마법사를 만나러 떠난 여행길에서 도로시는 두뇌를 갖기를 바라는 허수아비와 심장을 원하는 양철 나무꾼, 용기를 구하는 겁쟁이 사자를 만난다. 허수아비와 양철 나무꾼과 겁쟁이 사자가 평생 고민한 콤플렉스는, 모험하는 과정을 통해 이미 극복되었다는 이야기가 참 좋다.


"내가 보기엔 넌 이미 용기 있는 사자야. 너한테 필요한 건 용기가 아니라 자신감이야. 생명이 있는 것들은 무엇이든 위험에 처하면 두려워하기 마련이지. 그건 두려움을 이기고 위험에 맞서는  것이 진정한 용기란다. 그런데 넌 이미 용기를 이미 많이 가지고 있잖아. " 오즈의 마법사가 말했다.


홀로서기는 타인에 기대지 않고 자기 힘으로 해결할 수 있는 일과 없는 일을 구분하여, 삶의 주도권을 다시 나에게로 가져오기 위한 노력이다.


"홀로 설 수 있을 때 우리는 비로소 괜찮은 어른이 된다" 심리학자의 말처럼, 딸아이 응원 덕분에 비로소 홀로서기를 하고 있는 괜찮은 어른, 괜찮은 엄마가 되어가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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