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틀리고 싶어도 틀린 게 아닌데.... 나도 잘하고 싶은데, 기초개념이 부족한 거였는데 하며 억울한 기분이 들어 눈물을 흘렸던 기억이 스쳤다. 억울해하며 울고 있으니까 엄마는 지금의 나처럼 '뭘 잘했다고 우냐'라며 더욱 화를 내셨던 기억이 떠올랐다.
지금 나와 딸아이와의 모습과 똑같은 상황이었다.
내가 지금 딸아이의 감정을 무시하고 억압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했다. 우리 딸아이도 지금 이런 기분이겠구나. 몰라서 엄마에게 도움을 요청했던 건데...
차분하게 설명을 해주지는 못할지언정 오히려 되레 화를 냈다고 생각을 하니 미안함과 동시에 자책감이 들었다.
딸아이에게 공부를 가르쳐 주다 말고 남편이 또 옆에서 얘기한다.
"얘들아, 나는 너희 엄마가 엄청 착한 줄 알았어!
그런데 결혼해서 살아보니 그렇지 않더라.
왜 이렇게 성격이 급하고 욱하고 화를 자주 내니?
망치로 한대 얻어맞은 느낌이었다.
아... 집에서의 엄마, 아내로서의 모습은 성격이 급하고
욱하고 화내는 엄마의 모습이구나!
아니, 맞는 말이라 가슴이 찔리고 어디론가 숨고 싶었다. 맞는 말임에도 불구하고 변명을 했다.
"내가 원래는 착했어! "
"당신 만나 애 낳고 살다 보니 이렇게 된 거야!"
"나도 일 안 하고 집에서 아이들만 키우면 차분하게 가르쳐 줄 수 있어. 착한 엄마 될 수 있어."
(과연 전업맘으로 지내면 그럴지 심한 의구심이 들지만 말이다.)
"일하랴, 살림하랴, 나 정신없이 사는 거 안 보여?"
"나도 급하게 바쁘게 아등바등 안 살고 싶어!. 차분하게 느긋하게 살고 싶어"라며 변명 아닌 변명을 했다.
방으로 들어와 가만히 나의 삶을 돌아보고 내면을 들여다보았다. 결혼 전에는 이렇게 내 성격이 급하고 욱하고 화를 내는지 전혀 감지하지 못했었다. 아니 감지하려 하지 않았다. 나의 모난 감정을 모니터링하고 받아들이려 하기보다는 억누르고 무시하려는 무의식이 작동하고 있었다.
내재돼 있던 안 좋은 감정들이 상황에 맞닥뜨리니 시너지가 되어 폭발하는듯하다.
원래 내면의 감정이 이랬구나! 그동안 많이 감추고 아닌척하며 살았구나!라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그리고 워킹맘으로 살아내면서 아이들에게 빨리빨리를 강요하고 조급함을 드러낸 것 같다.
TV 그만 봐! 내일 학교 갈 준비물 다 챙겨놨어?
아침에 늦잠이라도 잘라 치면 빨리 일어나!
엄마가 한번 말할 때 들어! 엄마, 힘드니까 너희들이 잘 도와줘야 해! 라며 아이들에게 강요하고
스스로 자립심이 생기기를 바랐다.
수학 문제 하나 때문에 아니 바르지 못한 내면의 불안한 감정 때문에 딸아이와 관계가 빗나가고
남편한테 핀잔을 듣고 그로 인해 자책까지 분명 악순환의 연속이었다.
나만 좀 인내심을 갖고 아이들 대하면 되는데
딸아이를 조금 기다려 주면 되는데, 조급함을 좀 내려놓으면 되는데 그것이 안돼서 딸아이를 울리고 말았구나.
그래서 나는 다시 굳게 약속과 다짐을 했다.
2021년 새해에는 욱하지 않고 미소와 인내로 아이들을 마주해야겠다!라고 다짐을 해본다. 이 약속을 지키기 위해 몇 가지 약속 이행을 위한 행동지침을 정해보았다.
1. 육아에 관한 도서를 많이 읽어 아이의 감정을 이해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다.
2. 조급함을 내려놓고 차분함과 여유를 갖고 아이들을 대할 것이다.
3. 공감과 수용의 언어로 아이들과 대화할 것이다.
4. 아이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일 것이다.
5. 더 크기 전에 많이 안아주고 스킨십을 할 것이다.
존 가트맨의 저서 <내 아이를 위한 감정코치>에서는 이런 지침을 제공한다.
먼저 아이의 기분을 충분히 감싸주라고 한다.
그다음 아이의 말에 경청을 하고 효과적인 공감 대화법인 반복 화법을 제시한다. 다음 단계로는 나를 주어로 하는I 메시지를 전달하라고 한다. 이미 해답은 아이 안에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아이를 대하면 아이와 좋은 유대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고 한다.
유아교육과를 나와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는 유치원 교사지만 현장에서 아이를 대하는 것과 우리 아이를 대하는 것은 확연한 차이가 있음을 느낀다.
현장에서 아이들에게는 인내심이 장착되고 온화한 미소가 지어지는데 정작 애정과 관심을 을 쏟아야 할
우리 아이들에게는 있는 그대로를 수용하지 못하고 내 모난 감정을 그대로 투영하고 있었다.
또 한 가지 내 마음대로 아이들의 삶의 방향을 잡아가려 하고 있었다는 사실도 인지하게 되었다.
진정 우리 아이들 이야말로 사랑과 인내로 양육하고 안내해야 하는데 너무 많은 것을 간과하고 있었다.
마음처럼 그리되지 않아 안타깝고 속상하다. 못된 엄마, 늘 욱하고 화내는 엄마, 바쁜 엄마로 비치고 있다고
생각하니 많이 불편하고 속상하다.
난 두 아이를 낳아 기르는 엄마이자 현장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교사의 신분이 아닌가? 좀 더 성숙한 자세와
사랑으로 다가가는 엄마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앞으로는 내 감정을 조율해하는 가운데 아이들의 감정을 바르게 인식하고 살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정말 어려운 과제이지만 경청의 자세를 취해야겠다.
화내는 엄마가 아닌 미소 짓는 따뜻한 엄마의 모습으로 비치도록 노력해야겠다.
아이들은 순식간에 자라나는 듯하다. 아이들의 커가는 속도가 무척 빠르게 느껴진다.
아이들 유치원 시기 때는 20km였다면 지금은 50~60km처럼 느껴진다.
나중에 아이들이 성인이 되어서도 좋은 유대관계 속에서 지내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금부터 노력해야 함을 절실히 느낀다. 현재 아이들의 모습을 부정하고 억압하기보다는 그대로 수용하고 포용하는 자세를 가져야겠다. 좀 더 안아주고 경청하며 친절하게 서포트하는 엄마가 되겠노라고 다짐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