싫어, 나는 우리아빠랑 결혼할거야!
아빠의 놀이 참여가 아이들에게 미치는 영향
유치원 간식을 먹는 시간이다.
코로나 4단계로 격상되면서 유치원에 제공되던 간식이 중단되었다. 이로 인해 아이들이 각자 간식을 준비해서 등원하고 있다.
초록 모둠에 시우, 은서, 고은, 소영이가 앉아 간식을 먹고 있다.
시우: 은서야 이거 먹어?
은서: 응, 고마워!
평소에 조용하던 시우가 은서에게 간식을 건네준다. 은서가 우유를 먹다가 흘렸다.
그런데 갑자기 시우가 벌떡 일어나 휴지를 챙겨 와 닦아준다.
자신이 흘리지도 않은 우유를 손수 닦아주며 은서를 돕는 모습이 기특해 보였다.
시우에게 물었다.
"시우야, 은서에게 간식도 나눠주고 흘린 우유도 닦아주고 너무 멋진걸!
하며 엄지 척을 해주었다.
그러자 시우는 멋쩍은 듯 웃어 보이며
"저 은서 좋아해요! 나중에 커서 은서랑 결혼할 거예요"라고 말하는 것이 아닌가
그 말을 들은 은서는 발끈하며
"싫어, 나는 너랑 결혼 안 할 거야. 우리 아빠랑 결혼할 거야."
라고 거절하듯 이야기를 했다.
그 모습을 지켜본 나는 순간 당황스럽기도 하였지만 은서가 너무 사랑스러워서 " 은서는 아빠가 세상에서 제일 좋구나?"라고 묻자 울먹이며 "네"라고 대답을 해주었다.
나는 물었다.
"은서는 아빠가 왜 세상에서 제일 좋아?"
그러자 은서는 대답한다.
"아빠는 나랑 잘 놀아주고, 놀이터도 맨날 가고, 저를 제일 사랑하거든요."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옆 친구들이 하나둘씩 말한다.
"은서는 진짜 좋겠다. 우리 아빠는 게임만 하는데... 힝 "
"우리 아빠는 피곤하다고 잠만 자는데"
"우리 아빠는 맨날 회사일 하느라 바쁘다고 안 놀아주는데..."
이 광경을 지켜보다 순간 우리 딸아이의 6살 모습이 소환되었다.
어느 날 , TV에서 결혼식 하는 장면이 연출되었다.
그 모습을 지켜본 딸아이는"나도 커서 아빠랑 결혼할 거야."라고 말했다.
이 말을 들은 아빠는 "아빠는 엄마랑 이미 결혼했는데. 어떡하지?"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딸아이는 울먹하며 금방 눈물을 쏟아낼 분위기를 자아냈다.
이 모습을 지켜보던 아빠는 딸아이가 귀여워 꼭 안아주며 차분하게 설명을 해주었다.
6살이 된 딸아이는 늘 아빠의 껌딱지였다. 아빠와 역할 놀이하는 것을 제일 좋아하였다.
아빠와 병원놀이, 미용실 놀이, 네일아트 놀이를 자주 하였다. 아빠는 늘 손님이 되어주었다.
하루는 환자가 되어 주사를 맞아 주었고, 하루는 네일아트 손님이 되어 주었다.
딸: 손님 어서 오세요. 이리 와서 앉으세요.
아빠:네, 안녕하세요.
딸:뭐하러 오셨나요?
아빠:네일아트 받으러 왔는데요. 예쁘게 칠해 주세요.
딸:네 알겠습니다. 손님.
(딸은 많은 매니큐어중 빨간 매니큐어를 꺼내 아빠의 열 손가락과 열 발가락에 정성스레 쓱쓱 발라주었다.)
6살 딸아이가 매니큐어를 발라주면 얼마나 잘 발랐을까?
삐뚤빼뚤! 덕지덕지! (매니큐어 양 조절이 안되어 손가락과 발가락 사이에 엉망진창으로 발라졌다.)
나 같았으면 잔소리하며 핀잔을 주었을 것이다.
"이게 뭐예요? 엉망진창이잖아요. 다시 발라주세요."
그런데 남편은
"오, 예쁘게 잘 발라주셨네요. 고맙습니다. 하는 것이 아닌가?
순간 나와 상반된 생각을 하며 사랑스럽게 말을 건네는 모습을 보며 가슴에 찔림을 받았다.
다음날 남편은 빨간 매니큐어가 발린채 그대로 출근을 했다.
그날 퇴근하고 돌아오는 남편에게 물었다.
"직장 동료들이 안 놀랐어?"
"응, 피인 줄 알고 엄청 놀라던데! ㅎㅎ"
"그러니까 얼른 지워! 이제"
"왜, 난 좋은데. 우리 딸이 발라줬다고 자랑했어."
이 말에 녹다운됐다. 딸아이의 작은 놀이에도 의미를 부여하고 진심으로 받아주는 남편의 모습에 감동이 일었다. 이렇게 남편은 늘 진심으로 딸아이의 놀이와 행동을 받아준다. 그 결과인지 딸아이는 남편을 잘 따르고 늘 껌닦지처럼 붙어 연인처럼 꽁냥꽁냥 다정한 모습을 보여주는 듯하다.
유아기 아이에게 엄마는 정서적인 친밀감을 갖게 하는 존재라면 아빠는 외부와의 교류를 감당해주는 사람이다. 아빠가 아이와 놀이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경우 기대할 수 있는 장점이 많다. 아빠가 자녀와의 놀이 참여도가 높을수록 지능발달, 사회성 발달, 도덕성 발달 등 각 발달 영역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결과가 많이 보고 되고 있다. 아빠의 적극적 놀이 참여는 아이의 사회성이 더 풍부해지고 애정이 넘치고 정서적 교류를 통해 안정된 모습을 보인다.
어릴 적 난 일찍 아버지가 하늘나라로 가셨다. 아버지와의 즐거웠던 기억이 다섯 손가락 안에도 들지 않는다. 기억이 전무하다. 어린 시절 나에게 아버지는 그저 무섭고 두려워 회피하고픈 존재였다. 아버지의 애정 어린 말 한마디가 늘 고팠다. 가정적인 아버지에 대한 갈증과 목마름이
늘 한가득이었다.
아버지의 부재와 사랑, 그 빈자리가 컸다. 허하고 뻥뚤린듯 한 가슴한켠 빈자리를 남편과 딸아이의 모습을 보며 충족감을 채우고 있다.
대리만족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남편과 딸아이의 알콩달콩 노는 모습 하나 하나에 의미가 새겨지고 있다. 추억으로 열심히 남기려 애쓰게 되는 이유 중 하나이다.
딸아이가 성인이 되었을 때는 나처럼 아버지가 원망과 두려움의 대상이 아닌, 벅차고 힘든 세상을 헤쳐나갈 수 있는 든든한 밑거름이자 자양분 되었으면 하는 간절한 바람이 든다.
유치원의 사랑스러운 은서의 모습과 딸아이의 모습이 오버랩되면서 흐뭇한 미소가 절로 지어지는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