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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교토 맑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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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익호 Mar 26. 2016

밤 산책

교토의 타나바타와 도자기 축제


밤이 낮의 열기를 채 식히기도 전에 다시 해가 떠오르고 마는 팔월이다. 요사이는 밤 산책을 나가는 날들이 이어지고 있다. 이제는 익숙해진 마츠바라 거리를 따라 내려가 강바람 냄새가 코끝을 스치는 다리 아래 강변에 이르면 더위를 피한 사람들이 저마다의 여름밤을 만끽하고 있다.   

이름 모를 취주악기와 현악기를 가지고 듀엣을 맞춰보는 커플. 

항상 스핏츠의 흘러간 넘버를 커버하고 있는 제법 본격적인 실력을 갖춘 고교생들.

손을 꼭 붙잡고 천천히 인생의 황혼기를 거니는 노부부.

그리고 나처럼 산책하러 나온 교토 사람들.

카모가와의 여름은 그렇게 열기를 더해가는 중이다. 특히 오늘은 타나바타七夕 장식들로 더 반짝거리고 있다.

 

츠지리의 파르페. 당시엔 아직 지금만큼 긴 줄을 서지 않아도 들어갈 수 있었다.


더위도 식히고 칠석 행사도 구경할 겸 오랜만에 스텝들과 함께 나온 날이었다. 교토에서도 유명한 차방인 츠지리에서 파르페를 먹자는 여주인의 권유가 반갑다. 작은 사이즈가 천 엔이 훌쩍 넘는 사치스러운 디저트.  녹차크림, 절인 밤, 카스텔라, 말차 젤리, 흰 떡, 아이스크림... 혀가 얼어붙는 구성에 따듯한 차를 같이 내주는 센스가 무척 맘에 든다. 


'하지만 솔직히 두세 입 먹고 나면 그 후론 그저 달고 차갑기만 할 뿐이야.'  


일 년에 한 번 소망을 담아, 교토의 칠석.


아마 중국에서 시작되어 아시아의 공통 전설이 되었을 견우와 직녀 이야기. 그러고 보면 예부터 전해내려오는 이야기들은 전 세계에 걸쳐 비슷한 모습으로 발견되는 경우가 많다. 구전 이외에는 별다른 방법이 없었을 그 옛날, 사람들은 어떻게 많은 이야기들을 공유해 왔을까. 어쩌면 시간이 답일지 모른다. 유전자의 전파처럼 밈의 전파도 오랜 시간이라는 열쇠로 많은 것을 설명할 수 있지 않을까. 

대나무 장식이나 색 끈들... 아름다운 천들을 장식하는 행위도 분명 초기에는 저런 형태가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것이 처음 행해졌을 당시 부여되었던 의미도 이미 사라졌거나 변했을 가능성도 있다. 우리는 그저 전해내려오는 것들을 거듭해서 표현해 보고, 상황에 맞춰 조금씩 진화시켜 다음 세대로 전파시킬 뿐이다. 무의식 가운데 이뤄진 이런 행동들이 모여 지금 인간의 문화를 형성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물론 깊이 생각할 필요는 없겠지. 그저 빛나는 나무들이 강물에 반사되는 것을 바라보며 아름답다고 느끼면 그걸로 충분한 일이 아닐까. 현상에 의미를 두기보다는 그것을 통해 내가 뭘 느낄 수 있을지에만 집중하고 싶다. 그런 삶의 태도를 난 좋아한다.



이 날은 마침 고조언덕五条坂에서 도자기 축제를 하는 기간 중이기도 했다. 산책을 마치고 돌아온 피곤한 발이었지만 여주인의 재촉에 다시 따라나설 수밖에 없었다. 반팔 티셔츠에 진베만 걸쳤는데도 땀이 나올 만큼 더운 밤공기.


"키요미즈야끼清水焼같은 고급 그릇들도 팔지만, 하나에 백 엔 하면서 예쁜 그릇들도 많아요. 익호 군도 하나 골라서 어머니께 선물하는 건 어떨까?"


"그릇이요...  돌아가기까지는 아직 한참인데, 그동안 깨지지 않을까요?"


"내가 미국에서 올 때 가져온 그릇들도 하나도 안 깨졌는데 글쎄...? 잘 포장해 놓으면 괜찮지 않을까요? 그럼 좀 둘러보고 있어요. 난 유노미湯飲み를 좀 봐야겠어. 손님들 방에 놓을 것들."


그러고선 바람같이 인파 사이로 사라져버린다. 하릴없이 그릇들을 구경해 본다. 속이 얕은 옛날 밥그릇茶碗들이 눈에 띄었다. 내가 이걸로 밥을 먹자면 다섯 그릇을 먹어도 모자랄 것 같네.



몇 가지 마음에 든 무늬를 들고 유심히 살펴보기를 수 차례 거듭했지만 결국 사는 것은 관두었다. 귀국까지 앞으로 한참 남은 시점에 깨질 위험이 있는 무엇인가를 사 둔다는 것이 어쩐지 내키지 않았기 때문에.


"이것 봐요. 괜찮지 않아요? 한 개 백 엔이라 여섯 개나 사버렸어. 난 말이야, 저렴하지만 결코 싸구려로는 안 보이는 물건을 잘 고르는 재주가 있나 봐."


투박하지만 우리 여관에 잘 어울릴만한 유노미를 꺼내 들며 여주인은 신이 난 모양이다.


"이쪽으로 와 봐요, 여기가 좀 유명한 가겐데... 안쪽을 좀 구경해 볼까."


"그렇게 막 들어가도 괜찮을까요?"


"괜찮고말고."



안내받지도 않고 들어간 가게에서 여주인은 그릇에는 관심도 없다는 듯, 방의 구조나 중정의 꾸밈을 살피는데 여념이 없다. 여기에서도 비즈니스인가.


"흠... 과연... 저런 석등을 놓았구나. 그래, 우리도 저렇게 야츠데八つ手 같은 것을 갖다 심어 놓으면 좋겠는데."


재촉하지 않으면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지루한 염탐을 나는 가만히 서서 바라볼 뿐이다. 등줄기에 땀이 흘러내렸지만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다. 사람들의 일상을 한 발짝 뒤에서 바라보는 것은 언제나 마음이 흐뭇해지는 일이다. 축제에는 많은 이방인들과 현지인들이 섞여 저마다의 긴장과 기대를 갖고서 이리저리 흘러들어가고 있다. 여주인도 그 중 하나일 것이다. 물론 나도. 


"미안해요. 기다리게 해 버렸네요. 이런 비즈니스를 하고 있으면 아무래도 참고하고 싶은 곳이 많아져서. 이제 돌아가요. 돌아가는 길에 얼음이라도 사 먹을까요?"



카키고오리와 타코야끼를 사 들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 이제 꽤나 몸에 익어 자연스럽다. 어느 한 곳에서 몇 주 씩 머문다는 것은 얼마간의 안정감을 주는 동시에 조금은 희미한 쓸쓸함 또한 느끼게 한다. 이국의 밤거리도 이제는 신기하게 바라보지 않는 내게서 어떤 아쉬움을 느낀다. 

어쩌면 난 긴장하지 않고, 누구에게 시선을 주지도 않고, 그저 땅만 보고 걸어 다녔던 한국에서의 나로 어느새 되돌아가 버렸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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