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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교토 맑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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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익호 Mar 30. 2016

다방 츠키지


가와라마치 역 근처 회전초밥집에서 만난 그와 가벼운 식사를 마치고 거리로 나서는 중이었다. 해는 이미 저물어 어슴푸레한 하늘은 금방이라도 깜깜해질 기세다. 교토에서 일 이외로 만나는 사람은 처음이었기에 조금 긴장했지만 식사를 같이 하면서 서로에게 공통 화제가 많다는 것을 깨닫고 그 마음도 꽤 누그러졌다.


"아직 시간 괜찮죠? 차 한잔 하러 갈래요?"


보통 맥주 한 잔 하자는 권유가 나올 법 한 상황에서 차 이야기를 꺼내는 것이 과연 교토사람답다고 해야 하나... 물론 나에게는 훨씬 반가운 한 마디였지만 말이다. 


"좋죠. 어디 갈만한 곳이 있을까요?"


"근처에 좀 오래된 찻집이 한 곳 있어요. 뭐랄까, 옛날 투로 '모던한' 곳이라고 하면 알려나."



다방 츠키지. 투박한 이름이 그야말로 다방이라고 불려야 어울릴 찻집으로 안내받았다. 쇼와나 혹은 그 이전 시대를 떠올리게 하는 가게 인테리어는 1934년 개업 당시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고 한다.



메뉴가 오자마자 나는 고민할 것도 없이 홍차를 주문했다. 


홍차 ~포트넘 앤 메이슨~ 


그렇게 적혀 있을 뿐 어떤 찻잎인지는 설명되어 있지 않았지만. 어쩌면 그것이 호기심을 자극했을지도 모르겠고. 

 


그것은 반할 만큼, 맛있는 차였다.

나중에 포트넘 앤 메이슨의 여러 찻잎을 구해 시험해 보았지만 어떤 것도 이곳의 맛을 재현하지는 못했다. 어쩌면 독자적인 블렌딩을 거친 것이었을까? 어쨌든 정말로 맛있는 한 잔이었다는 이야기. 독특하고, 훌륭하게 우려낸 한 잔이었다. 이런 차라면 매일 마시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아니, 지금 당장 한 잔 더 마시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가게에는 사십 대 중반쯤 되어 보이는 남자 직원 두 명뿐. 그런데 그들 중 한 사람이 거의 일 분 간격으로 이 층 우리들의 테이블 사이를 왔다 갔다... 좀 정신없을 정도였는데...


"저건 마셨으면 나가라는 뜻이죠."


반대편에 앉아있던 그가 씁쓸한 웃음을 지으며 속삭였다.


"네? 설마요..."


"아냐 진짜. 이런 가게예요. 전통. 여유 있게 앉아서 수다 떨 수 있는 장소는 못 됩니다."


"차는 정말 맛있는데요."


"그래서 더 매력 있지 않나요."


그의 말을 100% 신뢰할 수는 없었지만 어쩌겠는가. 일어날 수밖에. 

그래... 어쩌면 항상 친절하기만 한 일본의 접객 문화는 현대에 와서나 생겨난 것일지도 모르지. 

차갑지만 깍듯한 태도의 종업원들과 오백 엔짜리 홍차가 있는 다방 츠키지. 어쩐지 다시 찾고 싶은 가게가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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