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학 석 달만에 쇼팽 도전
취미생이 피아노에 진심이면 생기는 일’
알고리즘은 잔인하다. 솔깃한 제목들을 귀신같이 뽑아 화면에 늘어놓는다. 그러나 나는 여간해서는 클릭하는 일이 없다. 더 솔직해지자면, 의식적으로 피하는 편이다. 반복적으로 올라오는 피아노 관련 쇼츠에도 대부분 눈길을 주지 않고 쓸어 올린다.
이유를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비교하게 될 내가 싫어서’다. 물론 안다. 그들과 비교할만한 실력이 내게 없다는 것을. 하지만 정제되어 올라온 영상 썸네일을 마주할 때마다 어김없이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무언가가 있단 말이다. 회피, 부인… 뭐 그런 방어기제 같은 것들 말이다. 거듭 이야기하지만 난 아직 누군가와 비교할만한 단계가 아니다. 그러나 오르지 못할 나무의 그림자에조차 기가 눌리는 이들이 세상에는 존재하는 법. 그리고 그들 중 하나는 분명 나인 듯하다.
‘유약한 나 자신만 이길 수 있다면, 그 누구에게 지더라도 상관없다’
십수 년 전 즐겨 듣던 밴드의 노래가사다. 오래된 기억이라 정확하게 옮겼는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비교해야 할 대상은 오로지 나 자신’이라는, 많은 현인들의 충고와도 상통하는 구절이지 싶다. 맞는 말이다. 내가 뛰어넘어야 할 유일한 대상은 과거의 나여야 할 테지. 어제보다 단 한 발자국만이라도 성장할 수 있다면 험하고도 낯선 배움의 길 위에 희망이란 것을 발견할 수도 있을 테니까. 나는 그렇게 스스로를 다독이며 타와의 비교를 애써 피하려 애쓰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과거의 나는 타인보다 결코 만만한 존재가 아니다. 때로는 그 누구보다 잔인하고 신랄하게 나를 뒤흔드는 상대가 될 수도 있다. 나는 그 뜻밖의 존재와 얼마 전 우연히 마주하게 되었다.
명절 때 본가로 보냈던 택배 주소를 고치지 않고 세제를 주문하는 바람에 부랴부랴 찾으러 다녀 온 적이 있다. 몇 년 전만 해도 이런 종류의 실수는 삶에 없었는데. 머릿속으로 서글픈 푸념을 뱉으며 도착한 본가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던 건 택배 상자만이 아니었다. 가족들이 내가 쓰던 작은 방을 창고로 삼기로 하고 정리하던 중, 내 초등학교 시절 일기장을 몇 권 발굴해 놓았던 것이다.
그날 밤 나는 가족들의 안 쓰는 짐으로 가득 찬 방에 겨우 누울 자리를 만들어 놓고 홀로 추억에 빠져들었다. 낡은 일기장에는 기억에도 희미한 이야깃거리들이 잔뜩 쓰여있었는데, 그중에서도 가장 눈길을 끈 건 피아노에 관한 것들이었다. 초등학교 2학년 가을에서 겨울 사이의 일기. 학원을 다니던 시기가 분명하다. 당시의 난 이토록 진지하게 피아노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나. 학원을 열심히 다녀서 훌륭한 음악가가 되겠다는 포부, 원장 선생님께 실력을 칭찬받은 자랑… 그중에서도 ‘줄리어드에 들어갈 만하다’는, 분명 나보다는 부모님을 향했을 자본주의 멘트를 고스란히 옮겨 적고 의기양양하는 대목에서는 실소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웃음이 지나간 후에는 한참동안 ‘혹시 그럴 수도 있었을까’ 하는, 아쉬움인지 응어리인지 모를 표정이 가시지 않았다. 삼십여년만에 펼쳐진 일기장 사이사이에서 잊힌 기억과 감각이 피어올라 긴 세월 너머 앉아있는 나를 흔들어 놓고 있었다.
어린 시절의 나는 지금과 꽤 달랐던 것 같다. 명랑하다 못해 곧잘 흥분에 압도되고 마는 성질이었는데다, 엉뚱하면서도 고집이 셌기에 형, 누나들이 마냥 귀엽게만 봐주지도 않던 그런 아이였었다. 언젠가는 달리기에 자신이 좀 붙었다고 동네 친구에게 ‘네 자전거로도 나는 못 이긴다’는 말도 안 되는 허풍을 떨었던 기억도 난다. 결정적인 순간에 한 발 빼고 말았다는 점을 보면 지금과 아예 다르진 않았던 모양이지만. 그래도 현재의 나만 봐선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대담하고 당찬 아이였다. 허세가 좀 묻었긴 해도 학교에선 달리기로 일등도 곧잘 했었고, 짧게 다녔던 피아노 학원이었지만 남들보다 진도가 빠른 편이었던 것도 지기 싫어하는 성격 덕을 보았을 것이다. 물론 학원에는 나보다 훨씬 앞서고 잘 치는 친구도 있었던 걸로 기억하지만, ‘걔는 걔고, 그래도 내가 더 대단한 점도 있다’라는 퍽 기특한 마음을 먹을 줄 알기도 했었고 말이다.
본가 방구석에서의 작은 추억 여행은 보물 찾기의 두근거림과 즐거움으로 시작했으나, 그 끝은 약간 씁쓸했다. 삼십여 년 전의 내가 예상치도 못한 순간 나를 이리도 흔들어대다니. 스스로에 대한 절대적인 믿음으로 매사에 의욕적이던 아이는 어디로 가고, 이리도 지친 어른만 남았을까. 과거에 얽매이지 않는 성격이라 자부했건만, 그 발언의 범위를 성인이 되고 나서부터의 나로 좁혀야 하겠다. 일기장 속 단호하고도 해맑은 글씨. 내가 쓴 것이 분명한 그 페이지들에 마음을 빼앗겨버렸다. 탐이 난다. 참기 어려울 만큼.
간밤에 잠을 설친 것을 바뀐 자리 탓을 하며 다음날 나는 택배 상자만 챙겨 일찌감치 자취방으로 향했다. 평일 낮시간 교외로 빠지는 텅텅 빈 좌석버스에 올라앉아 조용히 생각에 잠긴다. 과거의 나와만 비교해야 한다고 했었나. 그러나 그 과거란 게 가만히 꺼내보기에도 눈부셔서 도무지 뛰어넘을 재간이 없다면 어찌해야 할까. 노래가사의 화자는 과거라는 걸 너무 얕보고 있던 건 아니었을까. 어제의 나라고 오늘보다 반드시 못한 것이 아닐 텐데. 그뿐인가, 인간이 지닌 모든 종류의 반짝임이란 이렇듯 나이 듦과 함께 빛바래기 마련인 것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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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밖을 보니 가을이 퍽 아름답다. 기후의 변화가 계절의 개성을 앗아가고 있다고들 하지만, 요 몇 년 사이는 가을이 가을다운 것이 마치 어린 시절의 계절감을 떠올리게 한다. 마음이 동해서인지 평소에 잘 않던 나들이를 나설 이유를 부러 만들고 있다(택배를 잘못 보내는 서글픈 실수는 예외다). 그러나 오랜만에 사람들을 만나면 또다시 동요에 휩쓸리고, 자질구레한 상처를 만들고, 집에 돌아와선 오늘의 서사에 두터운 상상력을 보태어 나와 너에게 이런저런 평가를 내리고 있음을 발견하곤 한다. 이런 것들로부터는 벌써 한참 전에 자유로워졌다고 생각했었는데, 누군가의 한 마디가, 혹은 일기장의 한 대목이 마음속 닻이 되어 가장 취약했던 시절의 나를 한꺼번에 끌어올리는 것 같다.
어린 시절 자기 신뢰로 밝고, 당최 비교하지 않던 소년이 어디로 갔는지는 도통 모를 일이다. 지금 있는 건 가지지 못한 것에 질투를 느끼고, 닿지 않는 안타까움에 상처를 입으면서도 그렇지 않은 척 뚝뚝한 표정을 짓는 어른뿐이다. 이 사람을 데리고 난 얼마나 갈 수 있을까?
어린 시절의 일기장은 다시 상자에 잘 넣어 방 한켠에 밀어 두고 왔다. 한동안은 그 단호한 글씨들을 다시 마주할 용기가 나지 않을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