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우리 집은 이모네와 도로 하나를 두고 가까이 살았었는데, 가장 오래된 기억 속 두 집에는 방마다 피아노가 놓여 있었다. 외할아버지가 은퇴 후 딸들을 위해 마련한 아파트에서 피아노 교실을 꾸리시다가, 그마저도 그만두신 후에 하나 둘 처분하고 남은 것들이었다. 지금까지 살아남은 건 단 한 대도 없고, 몇 권의 악보만이 노랗게 바래서는 옛일을 머금고 있다. 성장의 속도가 미덕이던 시대였으니 낡은 것들에 가치를 붙이는 일이 쉬웠을 리 없었을 것이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어느 날엔가 이모는 악보를 죄다 모아 고물상에 넘겼고, 놀란 어머니가 뒤늦게 쫓아가 건져 온 몇 권만이 지금 내 책장에 옮겨 와 있다.
운이 좋지 않았던 나머지 악보들과 마지막 한 대의 피아노를 처분한지도 수십 년이 지난 오늘, 집에 놀러 온 이모가 예전엔 그런 것들의 소중함을 잘 몰랐다는 이야기를 꺼내셨다. 그 말투는 밝지만 끝에는 아쉬움이 짧게 실린 듯도 하다. 피아노를 취미로 다시 시작했다는 이야기는 벌써부터 했었는데, 이모는 오늘 처음으로 한 곡 쳐 보라는 운을 띄운다.
**아, 피아노 좀 쳐 봐
철이 들고 나서는 쉬이 긴장하는 체질이 된 데다 남들 앞에서 연주하는 것에는 딱히 준비도 기대도 없던 터라 당황했지만, 정신을 차리고 보니 이미 피아노 앞에 앉아 있었다. 떨리는 손으로 뚜껑을 열고 건반을 내려다보며 떠올린 생각은 단순하고도 딱한 것이다.
제대로 칠 수 있는 곡이 하나도 없잖아.
망설이다 그나마 오래 붙잡고 있던 바흐를 꺼내 들었지만, 예상보다 더 빨리 무너져버리고 말았다. 음은 갈 길을 잃어 흐트러지고, 손가락은 의지대로 움직이지 않고… 아니, 미사여구는 떼어 내자. 그냥 완전히 망쳤다. 악보에 적힌 음표의 절반을 넘게 날려버렸으니, 곡을 쳤다고 할 수준조차 못 된다.
어색하게 찍은 마지막 음 뒤에서 이모는 그러나 ‘꼭 누구누구 피아니스트 같다’며 특유의 밝은 소리로 나를 칭찬했다. 당신의 조카이기에 하는 격려라는 걸 알면서도, 몹시 부끄러웠다. 이대로는 끝내기 싫은데. 호기심 반 틈틈이 손을 대오던 터키행진곡이 머리에 떠오르자마자 억지로 끌어내 보았다. 리딩도 못 끝낸 곡이라 첫 옥타브 패시지까지 가는 게 겨우였지만, 이번에는 박수까지 터져 나왔다. 긴장도 약간은 누그러져 앞선 바흐보다 나은 듯도 싶었지만, 실제로 그럴 리가 있었겠는가. 바삐 피아노 뚜껑을 닫아버리고 요즘엔 연습을 잘 안 한다며 변명처럼 둘러대기 바쁠 뿐이다. 그래도 이모는 여전히 미소를 거두지 않고 있다.
계속 해 봐. 그랬으면 좋겠어.
그녀도 외할아버지의 장녀로서 피아노에 대한 감정은 남다를 것이다. 내 기억에도 옛 집에서 피아노를 치던 이모의 뒷모습이 남아있다. 놀러 갔을 때 안방에서 무언가 연주할 때면 나는 뒤에서 현대무용이라도 하듯 방안을 휘젓고 다니던 장면도 떠오른다. 이제 와서, 취미일 뿐일지라도 할아버지의 유산을 잇는 내가 기특한 구석도 있었겠지. 그런데 첫 피로가 이렇게나 엉망이었다니.
씁쓸한 감정은 부끄러움 때문만은 아니었다. 더 나중에 생각해 보니 그것은 일련의 위기감 같은 거였다. 다른 사람에게 들려주기 위한 연주에 대해 진지해 본 적이 거의 없다는 사실, 취미라는 미명하에 설렁설렁 해온 연습의 나날과 어쩌다 내키면 받는 레슨. 그 모든 안일한 태도의 원인이 될 인생 전반에 대한 괘념—허송세월이라는 이름의 타성!
생각의 끝이 도달한 곳은 레스너 J였다. 지금 내가 떠올릴 수 있는 실질적이고 유일한 조력자인 그. 급히 레슨을 부탁했지만, 그저 호된 말을 해 줄 누군가가 필요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오늘 이모 앞에서 겪은 충격, 사라진 옛 유산에 대한 아쉬움, 그리고 내가 직접 포기했던 마지막 피아노와 배움의 기회까지. 모두가 복잡한 선율이 되어 나를 긁어대고 있었으니까. 뭐라도 하지 않으면 버틸 수가 없을 것 같았다. 헤드폰을 뒤집어쓰고 혼자 즐기는 연주가 취미생인 내겐 가장 어울리고 또 만족스럽다고 했었는데, 오늘은 그 생각마저 패배주의자의 흰소리같이 들린다. 진짜 피아노를 만지러 가야겠어.
J는 오랜만의 내 연락을 가끔 부탁하는 레슨 때문이라고만 생각했을 것이다. ‘형, 피아노 꾸준히 하시네요’ 웃음 섞인 여느 때의 말이 그러나 내겐 전과는 다른 울림을 주었다. 취미로 시작한 대부분이 얼마 못 가 관둔다는 걸 경험으로 알기에 내뱉는 감탄과 놀림 섞인 한마디. 그러나 칭찬에 인색한 그가 취미생에게 보내는 최대한의 찬사 역시 그 한마디일지 모르겠다는 생각도 든다.
그렇다. 계속은 하고 있다. 연습이 재밌는 날보다 지겹다 느끼는 때가 더 많고, 실력과 방향성에 대한 의구심은 가지처럼 뻗어만 가지만, 어쨌든 이어가고 있다. 그 연결이란 게 내 의지만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것도 아니다. 기억에는 희미할지언정 어린 날의 경험이 있고, 의식하지 않았던 유산도 끈질기게 내 주변에 살아남아 있다. 무엇보다, 그 모두를 함께 해온 이들이 가까이에 있다.
응, 내가 피아노를 좋아하기는 하나 봐.
쉽게도 감상에 빠진 내게 J도 이번만큼은 고개를 끄덕인다.
레슨을 마치고 돌아와 책꽂이에서 빛바랜 악보들을 꺼내보았다. 새 악보를 마련해 연습해 왔던 바흐 인벤션이 여기에도 똑같이 있었구나. 오랜 세월에 책모서리는 낡아 부스러지고 펼치는 면마다 오래된 종이 냄새를 풍기는 옛 악보. 그 마디 사이사이에는 연필로 끄적인 흔적도 남아 있다. 그것들이 할아버지의 손글씬지, 아니면 그에게 배웠던 누군가의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세월을 뛰어넘는 은은한 의지를 느낀다. 배움의 의지 말이다.
나는 피아노 앞에 바로 앉아 정식으로 악보를 펼쳐 놓았다. 며칠 전 이모 앞에서 망쳤던 바흐를 다시 한번 처음부터 훑어보기로 하자. 악보에는 익숙한 음표가 늘어서 있지만, 전과는 또 다르게 보이기도 한다. 단순히 옛날 악보여서일까, 아니면 호되게 받아 온 레슨의 여운이 아직 남아서일까. 그것도 아니라면 조금씩은 성장해 가고 있다는 증거로 삼아도 될까. 내가 알지 못하는 사이, 기대하지 않았던 것들을 통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