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앞을 가로지르는 마츠바라도오리松原通. 가까운 히가시야마 언덕 청수사로부터 시작되어 저 멀리 사이인西院까지 쭈욱 뻗은 길의 이름이다. 이 길에서 북쪽으로 한 블록 올라간 곳이 시조거리四条通, 한 블록 남쪽으로 내려간 곳이 고조거리五条通다. 이 시조니 고조니 하는 것은 길에 매겨진 숫자를 말하는데, 교토의 어소(황궁)에서 남쪽으로 네 번째, 다섯 번째 가로길이라는 뜻이다. 마츠바라도오리는 숫자가 매겨질 만큼 큰 도로는 아니기 때문에 따로 이름을 갖고 있는 것이다. 아무튼 이 시조, 고조 하는 길들도 마츠바라거리처럼 동에서 서로 교토 전역을 관통하고 있다. 교토의 모든 동서로는 그렇게 평행선을 그리며 동쪽 끝에서 서쪽 끝으로 씨실처럼 늘어선 모양인 것이다. 남북을 가로지르는 거리도 마찬가지다. 히가시오오지 거리, 호리카와 거리, 니시오오지 거리 등의 굵직한 도로가 교토를 관통하는 날실이 되고 있다.
그들 동서로와 남북로 중 하나씩을 뽑아서 합하는 것으로 교토의 어느 좌표든 손쉽게 나타낼 수 있다.
가로길의 이름+세로길의 이름+그 둘이 만든 십자로의 동서남북 중 어디?
단 세 가지 정보로 간단히 주소를 나타낼 수 있다는 말. 길 이름에 조금만 익숙해진다면 글자로 된 주소만 보고도 어디든 직관적으로 찾아갈 수 있는 곳이 이곳 교토라는 이야기다. 이러한 식으로 조성된 도시계획에서 꽃을 피우는 것이 한 가지 있을 것이다. 바로 도로명 주소. 그것은 다르게 말하면 단번에 계획되지 않고 오랜 세월에 걸쳐 자연히 발생한 길들로 이루어진 곳에서는 도로명 주소를 써선 안 된다는 뜻도 된다. 그런 짓은 오로지 헷갈림만을 가중시키고 우리 모두가 매일 애타게 기다리는 수많은 배달들과 소식들을 더디게 하고야 말 것이다. 그런 점에서 최근 한국의 행정에는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교토의 센토는 놀랄 만큼 뜨거운 탕을 갖추고 있다. 종종 집에서 제일 가까운 다이코쿠쵸의 다이코쿠탕을 애용하는 편인데, 이곳은 세 종류의 탕을 갖춘 일본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평범한 목욕탕이지만 그 세 개의 탕이 차례로 90도 91도 92도가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들 만큼 발 한 번 담그는 데에도 큰 결심이 필요하다. 게다가 한국의 목욕탕과는 다르게 수건도 샴푸도 준비되어 있지 않다. 있는 것은 지옥 같은 탕과 비누뿐. 샤워기에서는 차가운 물조차 나오지 않는다. 스텝 신분인 내가 투숙객들이 모두 귀가한 한밤중에 샤워를 하는 것은 사실상 하우스 룰 위반이기 때문에 종종 센토를 이용할 수밖에 없는데, 도무지 지옥탕에 들어갈 기분이 들지 않을 때면 밤 산책을 준비하곤 한다. 집에서 삼 킬로미터 떨어진 미부壬生라는 곳에 슈퍼센토가 있다. 그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센토의 슈퍼(!)한 버전이 슈퍼센토다. 즉 중대형급의 목욕시설(그러나 온천이 아닌)이란 뜻. 미부에 있는 그 슈퍼센토는 놀랍게도 마츠바라 거리상에 위치한다. 알아차렸는가? 그 넉넉잡아 왕복 두 시간은 걸리는 거리를 줄곧 일직선으로만 걸어야 한다는 뜻이다! 질린다는 말은 아니다. 지도를 잘 못 읽는데다 방향치인 나에게는 축복과도 같은 일이라는 이야기다. 아무 생각 없이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며 걷다 보면 어느 새 목적지에 도착하는 마술. 얼마나 멋진 길을 갖춘 도시인가. 당신이 바깥을 거닐며 이어폰으로 음악을 듣기 좋아하는 사람이고, 적당히 사색적이며, 또 조금은 길치라고 할지라도 아무 문제없다. 동서남북 어디를 가든 당신이 처음 발을 디딘 거리의 이름은 일부러 마음먹고 방향을 꺾지 않는 이상 마지막까지 같은 이름의 거리일 테니.
교토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무엇인가요? 누군가 이렇게 물어본다면
"땀에 전 티셔츠로 다리가 무진장 아프게 걸어 다녔던 거요."
이렇게 대답해도 괜찮을까. 실제로 휴일이면 거의 하루 종일 밖을 돌아다녔던 기억밖에는 남는 것이 없으니까. 외국에서 팔자 좋게 산책이나 하고 있을 수 있다니, 사실은 있는 집 자식인가 봐? 이런 비아냥을 못 들어 본 것도 아니지만 그것은 여유에서 나오는 신선놀음 같은 것은 아니라는 말씀. 워킹홀리데이라는 계획을 세웠을 때 이미 정했던 일이기도 한데. 모아둔 돈을 탕진하는 한이 있더라도 일을 찾는 것에 매달리지는 않아야지. 돈을 번다거나 뭔가를 배운다거나 맛있는 것을 먹는다거나 좋은 경험을 한다거나... 그런 것 하나하나에 초조해하는 일 년으로 만들지는 말아야지. 내 안을 무엇인가로 채우기보다는 비워내기 위한 일 년으로 만들어야지.
그러한 마음가짐의 청년에게 자유롭게 쓸 수 있는 시간이 주어졌을 때 할 수 있는 일이란 무엇이 있었을까. 첫째로 사람들과 많이 대화하는 것. 그리고 발이 닿는 데 까지 걷는 것. 마지막으로는 끊임없이 사색하는 것.
일본땅을 밟고 수 주가 지났지만 통신사에는 가입해 놓지 않았기 때문에 바깥에서는 인터넷을 사용할 수 없는 처지다. 그래서 항상 집 안에서 음악을 스트리밍해 놓고 거리로 나서는 버릇이 생겼다. 여태껏 살아오면서 단 한 번도 한국 가수들의 노래를 찾아 들은 적이 없었다는 사실을 최근에 깨달았는데, 그 사실에 어떤 심각한 점을 발견했다는 것은 아니지만 신기하게도 이곳에 온 뒤로 어쩐지 한국 노래만 찾아 듣고 있는 내가 있다. 눈 앞을 지나치는 사람들이 쉬이 알아볼 수 없는 무엇인가로 나를 무장하고자 하는 일종의 방어기제 같은 것이 아닐까? 그런 생각을 잠시 해 보기도 했지만... 물론 그렇지는 않을 테지. 아마 그것은 싸구려 애국심을 빙자한 청개구리 심보에 더 가까울 것이다.
언제 봐도 친숙한 야사카신사. 오늘도 발길 닿는 곳으로 무작정 걷다 북동쪽으로 방향을 틀어본다. 작년 겨울 가족여행으로 별다른 계획 없이 방문했던 간사이. 교토에도 들렀었지만 아무런 계획도 정보도 가지고 오지 않았기에 결국 은각사 한 곳만 보고 서둘러 돌아왔어야 했는데... 문득 그 길을 다시 가 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철학의 길. 처음 왔을 때에 거창한 그 이름에 비해 초라했던 모습에 실망했었지. 그냥 징검돌을 박아놓은 곁길일 뿐이잖아. 그 날 은각사를 구경하고 요지야 카페에서 차를 한 잔 마시고선 발길을 돌려 내려왔던 그 실망의 길을 오늘은 거꾸로 거슬러 올라가 본다.
겨울의 스산했던 풍경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다. 작열하는 교토의 태양을 우거진 초목이 적당히 가려주었고, 발아래 해자 밑으론 냇물이 시원스레 흐르고 있었다.
"봄에 가면 그 강이 온통 분홍색이에요. 벚꽃 시즌 교토는 구석구석 갈만한 곳도 많지만 철학의 길은 그중에서도 제일 추천하는 곳이랄까."
리셉션 업무를 도우러 가끔 와 주시는 토시상의 이야기가 떠오른다. 벚꽃이 흐르는 우윳빛 강. 상상만으로도 아름다울 것 같은데.
고양이들이 있었다. 사람들에겐 관심조차 없는 듯이 그렇게 옹기종기 모여 앉아 낮잠을 자고, 또 서로 장난도 치면서 하루를 보내는 모양이다. 한국에서 만나던 길고양이들과는 다른 느낌이다. 그들은 언제나 사람 그림자만 보여도 숨고 도망가기 바빴었지.
누런빛이 아무렇게나 섞인 잡종 숏헤어 고양이들. 사실 난 이런 고양이들을 제일 사랑한다. 우아하고 기품 있는 순종 고양이들보다도 건강하고 스스럼없는 이 녀석들의 성격에 더욱 마음을 끌린다. 이 바깥고양이들은 경계는커녕 내 존재를 그저 지나가는 바람이나 나뭇잎쯤 된다는 듯 여기며 무심하기만 했다. 그들의 따듯하고 보드라운 털에 마음이 간지러워져 한참을 떠나지 못했다.
은각사길 앞까지 도착했을 때는 정오쯤이었다. 평소에도 걸음이 빠른 편인데 혼자 걷고 있을 때는 점점 더 빨라지는 모양이다. 입고 나온 셔츠는 높아진 체온에 이미 흥건히 젖어있다. 교토의 여름을 여벌의 옷 없이 돌아다니는 것은 곤란한 일이다.
애초에 은각사에 들어갈 계획은 없었기에 다시금 남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그렇게 또 묵묵한 강행군을 거쳐 비와호 소수기념관 앞까지 걸어내려 왔다. 하늘이 장관이었다. 사진으로 담을 수 없을 만큼 아름다웠다고 말하고 싶다. 어찌 되었든 기억이라는 것이 사진보다 선명해지는 경우란 결코 없겠지만.
자, 이제 어디로 갈까. 어디로 가든 바둑판 모양의 길은 끝도 없이 뻗어있다. 어쩌면 이번 여름이 다 가기 전에 교토 전역을 두 발로 전부 커버하는 것도 가능할지 모르지. 하지만 만약 그것에 성공한다고 하더라도 내가 교토의 모든 곳을 다 안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우리의 세계는 공간으로만 뻗어 있는 것이 아니니까. 봄날의 분홍빛 철학의 길을 내가 아직 못 본 것처럼, 오늘 걸었던 길들조차 눈에 담은 이미지의 편린은 제한적이다. 삶도 그러하다. 나는 내 삶을 오롯이 살고 있는 주체이긴 하지만, 매 순간을 진지하게 의식하며 살고 있는 것은 아니다. 내가 진실로 깨어 있는 때는 몇 순간 되지 않을 것이며, 그 나머지는 그저 산책에 불과할 것이다. 내게로 다가오는 것들과 멀어져 가는 것들을 의식하지 못한 채 그렇게 한눈을 팔며 걷는 길. 의미가 있는 것인지 혹은 그저 존재할 뿐인 것인지 도무지 모를 그 길. 셀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걸었던 길을 우리는 마치 그것을 처음 발견한 사람인 양 걸어가고 있다.
"한국에 돌아가면 무엇을 할 생각이에요?"
"글쎄요... 조금 더 공부하고 싶은 생각도 있고."
"어떤?"
"통번역 쪽에 관심이 좀 있고요. 대학원을 갈 수 있다면 좋겠지만요."
"좋겠지만? 안 돼 그런 태도는. 번역가가 되겠습니다. 대학원에 진학하겠습니다. 이런 식으로 말해야지."
"하지만 쉽게 정할 수 있는 게 아니에요. 대학원은 시험도 있는데다, 경제적으로 여유도 없는 상황이고 또 나이도 있고요."
"저는 주변 친구들이 전부 취직해서 자리를 잡거나 결혼을 하거나 했을 때 비로소 공부를 시작했어요. 말했었나요? 미야자키에서 살던 시절에는 전혀 공부하지 않았었거든요. 소학교 시절에는 매일 시계만 바라봤던 기억이 나네요. 대체 언제 끝나는 거야... 언제 끝나는 거야... 빨리 산으로 강으로 놀러 가야 하는데. 중학교 시절도 다를 건 없었어요. 난 공부하지 않을 거야. 인생을 즐기고 싶어. 고등학교도 부모님이 부탁해서 간신히 졸업한 거고요. 고등학교를 나와서도 잘 몰랐던 것 같아요. 내 남은 삶을 어떻게 꾸려나가야 할지. 싼 급료의 아르바이트로 하루하루 연명하는 생활을 몇 년, 문득 집에 돌아와 창 밖에 해가 지는 걸 보는데 가슴이 덜컹하더군요. 아, 공부해야겠다. 그때부터 시작했습니다. 중학교 과정부터 전부 다시요. 늦게 시작한 만큼 남들 세 배 네 배의 노력이 필요했지만 결국 대학에 합격했어요. 졸업 때는 운도 따라서인지 미국으로 취직할 수도 있었고요. 쉽게 정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고요? 물론 그렇습니다. 하지만 전 망설이지는 않았던 것 같아요. 놀고 싶을 때는 과감하게 놀았지만, 한 번 공부하기로 마음먹었을 때는 모든 것을 놓고 공부했어요."
"..."
"익호군 일본어 잘 하잖아요. 솔직히 말해서 놀랄 만큼 잘 해요. 가끔 이상한 단어가 튀어나오는 것만 빼면 아무도 외국인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정도예요."
"..."
"타카라노 모치구사레."
"재능을 썩히지 말라고요."
"그래요. 한국에 돌아가면 일단 아르바이트라도 해 봐요. 카페에서 일했었다고 했잖아? 카페든 뭐든 뭐가 중요해요. 미래를 위해서 투자하는 겁니다. 그러면서 시험도 준비해 보고요. 뭐가 되었든 할 수 있는지 없는지 시도라도 해 보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전 익호 군이 발전하는 삶을 살았으면 해요. 지금 이대로도 나쁜 삶은 아닐 테지만, 조금 더 욕심내 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그럴까요... 사실 잘 모르겠어요. 뭘 하고 싶은 건지도 잘 모르겠습니다. 아마 제 또래의 많은 청년들이 같은 기분일 거라고 생각하지만요. 그래도 그들은 삶을 위해 무언가 시도하고 있겠죠. 하지만 전 아무것도 하고 있지 않네요."
"지금은 그대로도 좋아요. 방황해 보는 것도 좋은 일이죠. 그리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은 아니에요. 이렇게 외국에 혼자 나와서 살 결심도 했고. 먹고사는 거야, 중요한 사항이긴 하다만... 돈이 좀 없으면 매일 파스타만 삶아 먹는 것도 젊었을 땐 괜찮아요. 주변 신경도 뭐, 당연히 쓰이겠죠. 하지만 목표가 있다면 시급 칠백 엔 짜리 프리터라도 아무도 당신을 손가락질할 수 없어요."
"..."
"하지만, 한 가지. 마흔 살이 되었을 때도 아직 방황하고 있다면 난 당신이랑은 더 이상 친구하지 않을 거니까."
여주인은 짓궂은 표정과 함께 특유의 웃음소리를 남겨 놓고선 그녀의 고양이 타피를 부르러 갔다. 혼자 오피스에 남아 차를 홀짝이며 많은 생각을 한 밤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내 삶의 발목을 잡는 것은 무엇일까. 기회의 부재? 나쁜 시대? 그럴 수도 있겠지. 하지만 가장 큰 것은 내 안의 두려움일 것이다. 타인에의 두려움, 사회를 향한 두려움, 그리고 나 자신을 바라볼 때의 두려움. 위대한 누군가가 되고 싶은 마음은 없다. 그저 나 자신을 이겨낼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다면. 하지만 그것은 생각만큼 간단한 일이 아닌가 보다. 이제 곧 서른이다. 여주인의 말처럼 앞으로의 십 년이 중요할 것이다. 그 사이에 이 유약한 헤맴을 끝낼 수 있다면 좋으련만.
언제 어른이 되나요, 방황하는 이방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