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에 친구가 한 명 오기로 했어요. 시카고 시절 친했던 회사 동료. 내가 귀국할 때 못 가져온 짐을 그 친구한테 전부 맡기고 왔으니까 하루쯤은 공짜로 재워줘야겠죠?"
일이 대충 마무리되는 오후 세 시를 조금 넘긴 시간에 부엌문 쪽 풍경이 울렸다. 나리타에서 도쿄를 통해 신칸센을 타고 오셨다는 여주인의 친구분은 깡마른 체격의 일본 여성이었다. 겉을 화려하게 치장하진 않았지만 어딘지 팔십 년대 버블기의 일본을 떠올리게 하는, 그런 종류의 여유가 풍기는 인물이다.
"도쿄도 많이 변했더라. 카키타네가 반가워서 몇 개 집어왔어. 요샌 봉투도 이렇게 예쁘게 나오네. 그리고 이 야츠하시들은 교토역에서 샀어. 전부 선물이야."
여주인에게 내미는 산더미 같은 과자들. 먼 미국에서 교토로 오는 길에 산 선물이 하필이면 키요미즈산 산초를 쓴 카키타네에다 야츠하시라니. 그녀도 젊었을 때에는 센스로 가득 찬 세련된 여성이었을 것이다. 나이를 먹어가는 사람들에게서는 때때로 이런 지적하기 애매할 정도의 코미디를 발견할 때가 있다. 나도 언젠가는 다음 세대에게 이른바 아저씨로 비칠 때가 반드시 오겠지. 그때에 난 그것을 전혀 눈치채지도 못 할 테고. 세대차의 미묘한 기류란 언제나 일방통행이기에.
그녀와 여주인은 화기애애하지만 결코 수다스럽지는 않은 목소리로 여관의 오후 시간을 채워나가기 시작했다. 나는 그것을 곁에서 듣고만 있었다. 내가 모르는 미국의 어느 지역에 관한 이야기들, 내가 모르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들, 내가 알았다고 하더라도 별 흥미를 못 느꼈을 사건들에 관한 이야기들.
낄 수 없는 대화에 지루해질 무렵 벨이 울렸다. 오늘 체크인하는 손님들일 것이다.
"내가 나갈게. 익호 군은 차를 좀 준비해 줄래요?"
체크인에 필요한 웰컴 티를 준비하는 역할이 요사이에는 어쩐지 내 전담이 되어버린 기분이다. 어려울 것 하나 없는 일이기 때문에 상관없지만 말이다. 마침 나도 차 한잔 하고 싶기도 했고. 그런데 가장 손쉽게 내어갈 수 있는 냉수용 보리차가 마침 다 떨어진 모양. 대충 냉장고를 뒤져 우롱차라도 내갈까 생각하는데, 여주인의 친구분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떤 차를 준비하면 되는 거지? 난 일본차 우리는 법 밖에는 몰라서..."
"여기 있는 것들 중에서 쓰면 되는 거 아닐까?"
선반을 뒤적거리던 그녀가 손에 든 것은 여주인의 고향 미야자키에서 온 야메차八女茶. 익숙한 솜씨로 찻잎을 큐스急須에 담는가 싶더니 한 뜸 식힌 물을 천천히 붓는다. 그렇게 몇 초 지나지도 않아 맑은 색의 녹차가 큐스 주둥이에서 흘러나왔다. 얼음을 띄운 찻잔을 잠시 바라보는가 싶더니 손을 돌려 야츠하시八つ橋 상자를 하나 뜯는다. 두 장씩 색을 맞춰 차 옆에 곁들인다. 드디어 완성된 한 상. 그 모양새에는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그때 장지로 막은 벽들 밖으로 종종걸음 소리가 한 바퀴 돌더니 주방 문이 벌컥 열렸다.
"손님한테 일을 시킨 거예요? 이런 때엔 능숙한 남자네. 그렇지만 너무 좋은 과자에다 너무 좋은 차 아닐까? 흠... 뭐 저 사람들이 오늘 행운인 것이지."
여주인은 여권 두 권을 내게 거의 던지다시피 하고선 바람같이 쟁반을 들고 나가버린다.
"행운이라니, 손님들을 뭐라고 생각하는 거야 쟤는... 그렇죠? 저 애, 비즈니스는 문제없을 테지만 손님 대접하는 것엔 소질이 없을 거야. 옛날부터 잘 알고 있지. 보나 마나 손님들한테 변변한 과자도 하나 못 내갈 것 같아서 이렇게 잔뜩 사 온 거였어요. 곧바로 써먹게 되어서 다행이네요."
그 말을 듣자 속으로 탄식이 나왔다. 세대차라는 것은 반드시 젊은이의 날카로움을 못 따라오는 구세대로 인해 생겨나는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것들 중 일부는 부모세대의 원숙함과 사려 깊음을, 말로 표현하지 않는 그 섬세한 배려를 이해하지 못하는 젊은이들로 인해 생겨나는 것일 수도 있다.
받아 든 여권을 복사하며 그녀의 이야기를 몇 마디 듣게 되었다. 교토는 나 같은 외국인에게 추천하고 싶은 좋은 장소라는 것. 자신은 이십대에 미국으로 건너가서 거의 귀국한 적이 없지만, 앞으로도 일본에서 살고 싶은 마음은 없다는 것. 그 이유는 지진 때문이라는 것.
'와륵 더미에 깔리는 그런 죽음을 맞이하고 싶진 않거든요. 만에 하나라도 3.11 같은 악몽을 겪는다면... 상상만 해도 무서워요.'
어렸을 때 경험했던 지진의 공포는 그녀를 해외로 내몰았다. 흔들리는 땅이 주는 공포란 상상 이상이라는 것은 나도 잘 알고 있다. 사방 어디로도 도망칠 수 없는 상황. 인간이라는 존재가 지구라는 땅덩이에 딱 붙어서 사는 이토록 작은 존재였구나, 하고 실감하게 되는. 그때의 감정에 이름을 붙이자면 그것은 절망일 것이다. 우리는 공포감으로부터는 얼마든지 도망칠 수 있다. 그러나 절망 앞에서는 그럴 수 없다.
그것은 모든 것을 놓게 되는 그 마지막 순간까지는 얼마든지 두려워해도 좋다는 뜻일지도 모른다. 난 무엇으로부터 도망쳐 이 이국땅에 자리 잡았을까. 하지만 그것이 무엇이든 간에 도망칠 수 있었다는 것은 절망적인 상황에는 미치지 못했다는 뜻일 것이다. 한낱 공포 따위에 절망이라는 이름을 붙여서는 안 되겠지. 그 감정은 나중에 큰 지진이라도 겪었을 때를 위해 아껴두자.
"자, 그럼 우리도 한 잔씩 마셔볼까요, 야메차. 뜯어버린 야츠하시도 둘이서 해치워요. 루리코한테는 주지 말자고요."
열대에 가까운 미야자키에서 온 야메차는 강렬한 떫은맛을 가졌지만 그만큼 달콤함과 감칠맛도 갖춘 좋은 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