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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교토 맑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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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익호 Mar 06. 2016

백일홍

교토의 긴 여름을 알리는 꽃

"정식 환영은 좀 안정되고 나면 하기로 할까요. 지금은 다이코쿠 쪽 공사도 있고 정신이 없으니까. 오늘은 간단히 식사나 같이 하도록 해요."


'大黒町다이코큐쵸'라는 거리에 새롭게 열 렌탈 하우스 준비가 막 시작되어서 안 그래도 힘든 성수기의 숙박업에 일손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이야기였다. 그것이 내가 이곳에 필요하게 된 이유 중 한 가지리라.


얼핏 보아도 오십은 훌쩍 넘었을 게 분명한 그녀인데. 여자 혼자서는 힘에 겨울 것이 분명한 이 사업을 성공적으로 유지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과감하게 확장시킬만큼의 추진력 또한 갖춘 모양이다.

일본에서는 가게의 여주인을 오카미라고 한다. 한자로는 '女将' 이렇게 쓰고.

여장부. 이분에게 정말 잘 어울리는 칭호가 아닌가.


"자, 뭘 먹을까? 교토에 처음 왔으니 두부 요리는 어떨까."


"좋을 것 같은데요."


더 생각할 것도 없이 그 길로 십여 분 걸어서 산조 거리의 작은 가게로 올라갔다.

일층에서는 두부로 만든 가공식품을 판매하고, 이층은 식당을 경영하는 아담한 가게였다.



교토 유바와 삶은 두부, 그리고 츠케모노로 이루어진 소박한 식단이었지만 충분히 만족했다.

특히 柴漬け시바즈케는 교토의 츠케모노 중에서도 가장 좋아하는 것이라 반가웠다.

세상의 수많은 먹을거리들 중 내가 겪어 본 카테고리라고 해 봤자 손에 꼽을 정도겠지만, 적어도 그 안에서 못 먹었던 음식은 없었다. 어떤 음식이든 그것이 계속해서 존재하는 이유는 입맛에 맞는 사람이 상당수 있다는 뜻이며, 나도 그들이 그 음식을 즐기는 것만큼 똑같이 즐기고픈 욕심이 있었기 때문에.

삶에 있어서 지속적이고 보편적이면서도 늘상 새로운 즐거움을 얻을 수 있는 행위란 먹는 것 외에 쉬이 떠오르지도 않으니까.



소박한 식사를 마치고 카모가와 강가를 따라 집 쪽으로 향했다.

'오리 강'이라는 이름치곤 어째 오리는 한 마리도 보이지 않는다.

왜가리들만이 띄엄띄엄 앉아 물고기를 낚고 있었다.


교토에서는 이곳 저곳에서 새들을 볼 수 있는 기회가 많다


"돌아가기 전에 잠깐 들를 데가 있는데, 같이 갈래요?"


그녀는 내 대답은 듣지도 않고 돌 다다미 길을 종종걸음으로 걷는다. 그러다 어느 골목 입구 앞에서 발을 멈췄다. 고개를 돌려 내가 잘 오고 있음을 확인하고는 골목 안으로 들어선다.

한낮인데도 어둑한 그 길을 걸어 들어가 중간 즈음에서 멈춰 서서는


"여기가 교토로 와서 처음 살던 집. 이젠 여기도 잇켄가시(렌탈 하우스)로 손님들에게 빌려주고 있지만요. 가족 단위로 온전히 빌리는 경우가 많아서 웬만큼 길게 머물지 않는 이상 청소 서비스는 하지 않아요. 그래도 며칠에 한 번 씩은 쓰레기를 치워줘야 해서 들렀어요. 그리고 오늘은 한 가지 더."


그러더니 나를 보며 미소 짓는다.


"마침 잘 됐어. 남자 손을 빌릴 수 있겠네."


다락으로 통하는 비밀 계단


현관을 올라 좁은 계단을 통해 이층으로 가자 양쪽으로 방이 나 있었다. 그 사이의 통로 겸 계단실 중앙에서 여주인은 가만히 천장을 바라보는가 싶더니


"이걸 이렇게, 해서..."


어느 새 들고 온 쇠 봉으로 능숙하게 자물쇠를 돌린다. 그러자 천장에서 사다리가 나타났다.


"와 이런 건 처음 보는데요."


"그래요? 일본 집은 이렇게 남는 공간을 활용하는 경우가 많은데. 내 짐이란 짐은 다 여기에 넣어 두었지. 그릇이며 의자며... 미국에서 가져온 잡동사니들도 여기 다 처박아 뒀고."


그녀는 능숙하게 사다리를 올라가더니 세탁물 건조대 같아 보이는 것을 찾아내어 내게 내려보냈다.


좁은 공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것은 일본 주거 문화의 특징인가. 요새는 빈 집들이 많이 늘어나고 있다던데. 넓은 집을 살 수 없는 사람들은 늘어나고, 남는 집을 팔 수 없는 사람들 또한 늘어나고. 어느 나라에서나 마찬가지일까. 잉여 재화가 반드시 부족한 사람들에게 돌아가지는 않는다는 자본주의의 맹점은.


"자, 이제 볼일은 끝났어요. 돌아갑시다."


집 정원에는 사루스베리가 만개해 있었다


일층 정원의 나무 하나가 집 밖으로 붉은 꽃을 단 가지를 내밀고 있었다.

아침에 나올 땐 눈치채지 못했었는데.


"봐요, 사루스베리가 만개했네요. 한자로는 백일 동안 붉다 해서 '백일홍'이라는 글자를 쓰는 거 알아요?"


아뇨, 이런 꽃이 있다는 사실조차 오늘 처음 알았습니다.


사루스베리. 얼핏 이국적인 이름이지만 이것은 일본어다.

원숭이가 미끄러진다는 뜻인데. 도대체 이 이름이 어떤 연유로 붙게 되었는지 궁금해졌다.


"가지가 꽤 많이 뻗었잖아. 꽃이 다 지고 나면 좀 쳐내야겠어. 가을에 잎이 말라 떨어지면 이웃에서 아주, 시끄럽거든요."


이웃을 조용히 시키는 그 작업은 아마 나의 일이 되리라 생각하면서 이층 내 방으로 올라갔다. 이렇게 걸어 다녀 본 것도 얼마만인지. 지친 발걸음으로 문을 열자, 낮동안 목조 건물을 뚫고 들어온 무겁고 더운 열기가 방안에 가득 차 있었다.

전에 느껴보지 못한 새로운 감각에 잠시 놀랐지만 어쩐지 그 열기를 몰아내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서 에어컨은 틀지 않고 자리에 누웠다.


낯섦과 신선함을 느낄 수 있는 것이야말로 여행자의 특권일 것이다.

만일 당신이 어떤 곳에서 아무런 새로움도 느낄 수 없다면

당신은 이미 그곳의 여행자가 아니라는 뜻이다.


온실같은 나무 천장 아래도 며칠 후엔 신경쓰이지 않을 수 있고

백일 후에는 붉은 사루스베리도 더이상 감동을 주지 못할 수도 있다.

혹은,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그것들은 항상 신선하고 새롭게 다가올 지도 모를 일이다.

마음가짐이 중요할 것이다.

어느쪽이냐 묻는다면, 나는 되도록 오랫동안 여행자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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