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하치죠구치 남쪽 심야버스 대합실. 무겁게 앉은 의자들 사이로 파랗게 빛이 바랜 삼십인치 캐리어가 자리하고 있다.
"저... 이곳은 통로로 이용되고 있습니다."
직원의 주저 섞인 지적에 나는 황급히 그것을 들어 구석자리로 옮긴다. 캐리어 안에서 마구 뒤섞였을 잡동사니처럼 마음 또한 어수선해진다.
도쿄까지는 여덟 시간이 족히 걸리는 모양이다. 중간중간 휴게소에 들르겠지만 그 긴 시간 동안 무얼 하지. 분명 잠도 안 올 텐데.
2.
차에 오르자 내가 심야버스에 대해 상상했던 이미지와는 사뭇 다른 풍경이었다. 창문은 애초에 전부 검은 천으로 가려져 있었고, 시내를 통과하자마자 차내의 등마저 모조리 꺼졌다. 그렇게 완벽한 어둠인 가운데 가끔 차창 밖으로 자동차 라이트의 그림자만이 굉음과 함께 지나갈 뿐이다. 등받이를 완전히 젖히고 잘 주무시라는 차내 방송이 거듭 되풀이되었지만, 그 어느 누구도 조작 레버에 손을 대지 않는다. 처음 본 타인들에 대한 배려 혹은 방어적 태도. 나도 그저 창틀에 반쯤 기대어 이어폰을 귀에 꼽고서는 생각에 잠기려 애쓸 뿐이다. 아직 어둠에 적응되지 않은 눈동자에는 비치는 것도 거의 없다. 그저 버스가 이끄는 대로 어둠 속을 표류하기 시작한다. 어디로 가고 있는지도, 어느 정도의 속도 인지도 가늠하기 힘들다.
3.
얼마만큼을 어둠 속에서 흔들렸을까. 의지할 빛이란 이따금 주변을 의식해가며 손바닥으로 반쯤 가린 채 켜는 휴대폰뿐. 통신사에 가입되어있지 않은 그것으로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가끔 구글맵 GPS로 위치 확인을 하는 것과, 가지고 있는 음악들 중 가장 플레이타임이 긴 런던 심포니의 차이코프스키를 반복해서 듣는 것뿐. 이 야행버스라는 것은 어지간해서는 차 안에서 잠들지 못하는 나 같은 타입의 인간에게는 추천할만한 이동수단이 못 된다. 그래도 시간이 시간인지라 중간중간 슬쩍 졸고 깨고를 반복했던 것 같은데... 그마저도 두 번의 휴게소 타임 때 일제히 점등하는 바람에 결국 잠에 드는 일은 없었다.
4.
두 번째 휴게소에 들렀을 때 차량 확인표를 받아 들고 밖으로 나섰다. 차가운 밤공기 저 멀리 맹렬한 휘도의 휴게소 불빛이 보인다. 반쯤 잠에 든 내 머릿속에 그것은 당최 지구 위의 풍경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도대체 여기는 어디지? 타의에 의해 옮겨진 곳. 내게는 애초에 아무런 인연도 없었을 장소. 그런 곳에서 비몽사몽간에 용케도 두 발의 현실감을 찾아내어 화장실로 향한다. 그리고 또다시 원래대로라면 아무런 인연도 없었을 사람들이 기다리는 버스로 돌아간다. 비틀거리며.
내 작고 무력한 의지라는 것이 거의 영향력을 발휘하지도 못하는 거대한 우연의 덩어리 한가운데에 박혀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 끈적한 껌 덩어리 같은 우연이라는 놈은 늘 내 삶을 어디론가로 이끌어가고 있다. 도무지 만날 것이라고 상상하지 않았던 사람들이 어느새 내 곁으로 다가와 웃고 떠들고 또 다투는 날들이 있었다. 도무지 만날 것이라고, 상상은 했을지언정, 믿지는 않았던 아름다운 그 사람과 만나 사랑에 빠진 날들이 그 궤적 어딘가에 있다. 이제는 어디서부터 시작되었는지조차 희미해진 가느다랗고 희미한 궤적. 이 작은 섬나라에조차 나의 그 실낱보다 조금도 더 드라마틱하지는 않을 궤적들이 일억이천만 존재하고 있다. 세계적으로는 칠십억의 우연들이 매일같이 우주적인 농담 가운데에서 아등바등 꾸물거린다. 그 우연의 소용돌이들 속에서 과연 내 삶에 필연적인 의미라는 것이 존재한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일까? 오늘 지나쳐 가는 이 우주 밑바닥 어디쯤의 휴게소는 내 삶이라는 따분한 희곡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을 만한 장면일까? 만약 그 장면에 제목을 붙이자면 어떤 것이 어울릴까. 분명 모든 장면들에 붙여진 그것과 똑같은 제목이 어울릴 것이다.
5.
되돌아온 버스에서는 웬일인지 모두가 등받이를 풀로 젖히고 있었다. 익숙해진다는 것은 이런 것이다. 그것은 피곤해진다는 것과 반쯤 같은 말이다.
그리고 나는 또다시 어둠 속에서 흔들리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