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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교토 맑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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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익호 Nov 06. 2016

단 한 사람의 관객

도쿄-4-

첫 나 홀로 여행은 스물세 살 군입대를 한 달 앞둔 사월의 어느 날이었다. 특별히 가보고 싶은 나라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냥 훌쩍 떠나고 싶었다. 되도록 멀리, 그리고 오랫동안.  


그러나 수많은 평범한 이십 대 초반의 청년들과 마찬가지로 당시의 내게 해외여행이란 사치의 범주에 속한 것이었다. 감상에서 벗어나 현실적인 면을 따져 보았을 때 최우선으로 고려되어야 할 사항은 예산일 수밖에 없었다. 교통과 숙박. 여행에서 가장 많은 코스트를 차지하는 부분을 줄여야 했다. 장거리 비행은 애초에 불가능한 선택지였다. 단 한 푼이라도 돈을 아낄 수 있는 방법이란 결국 지인이 있는 나라에 가는 것뿐이었다. 그렇게 선택된 곳은 도쿄였고, 그것은 애초에 반쯤 뻔한 결과였을 것이다. 


그렇게 봄볕이 잔인하게 맑았던 사월의 열흘 동안 도쿄를 여행했다. 계획도 없이 떠나온 주제에 도내뿐만 아니라 사이타마, 이바라키까지 진출해 마구 헤매고 다녔다. 첫 단신 여행으로서는 꽤 여러 장소를 떠돌아다닌 셈일 텐데도 돌이켜보면 기억이 남아 있는 장면은 별로 많지 않다. 군입대라는 커다란 마음의 걸림돌 때문이었을까. 불안이라는 감정은 모든 감각을 부정적인 측면으로만 곤두서게 하는 힘이 있는 법이다. 


다만 치치부에서 본 시바자쿠라의 분홍빛 풍경만큼은 뚜렷이 남아있다. 아득히 펼쳐진 붉은 꽃 가운데에서 다음 달 입소일을 잊지 말라는 친절하고도 잔인한 병무청의 문자메시지를 보았을 때의 심정과 함께 뚜렷이.



며칠 전 그 마지막 자유 같았던 여행 중에 만난 친구로부터 연락이 왔다. 이름은 슌. 나이는 나보다 한 살 위인 그는 헝가리 국립 리스트 음악원에서 성악을 전공하고 졸업 후엔 귀국하여 개인적으로 음악 활동을 이어가고 있는 친구다. 처음 만났을 당시엔 제법 규모가 있는 단독 콘서트도 열었을 만큼 실력을 갖춘 슌. 그러나 뭐라고 해야 할까. 우리 모두가 조금씩은 겪는, 운이라는 이름의 잔인한 변수 때문이었다고 해야 할까. 그 역시 단 몇 줄도 되지 않을 성공한 예술인의 명부에는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어쩌면... 애초에 실력이 부족했을 수도 있는 일이다. 내가 보기엔 그럴듯해 보이는 그의 실력도, 전문가의 시선에서는 평범한 것일지 모른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적어도 그의 다른 동창생들처럼 재능을 이용해 삶을 꾸려나가는 것 정도는 충분히 가능했을지도 모른다. 슌이 만약 나나 혹은 다른 많은 평범한 사람들처럼, 표면과 내면의 성별이 일치했더라면 말이다.


"오늘 시나가와에 있는 라이브바에서 노래하는데 보러 올래? 올 거면 차로 데리러 갈게."


풍부한 성량의 장난기 서린 목소리가 몇 해 전 그 봄을 떠올리게 한다. 슌의 차를 얻어 타고 이바라키의 바다를 보러 갔었던 봄.


아사가야역 로터리를 빙글빙글 돌고 있는 슌을 발견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경차에는 어울리지 않을 만큼 몸집이 큰 친구다. 조수석에는 익숙한 얼굴의 여성이 동승하고 있다. 슈리. 슌의 유학 동기이자 피아니스트인 그녀는 오늘 라이브의 반주자로 동행했을 것이다. 


"오랜만이야 슌, 남자친구는 안 보이네?"


"응. 류는 오늘 야간조."


전부터 상당한 비만 체질로 혈압약과 당뇨약을 늘 달고 사는 슌이었는데, 가까이서 보니 어째 몸집이 더 불어난 것 같다. 금발로 여러 번 탈색한 단발머리에 자잘한 꽃무늬 드레스. 편견의 눈을 여러 번 씻고 보더라도 적응하기 힘든 차림이지만, 사실 오늘 이 정도면 얌전한 편이다. 핑크색 염색머리에 커다란 코르사주를 달고 레이스가 주렁주렁 늘어진 검은색 드레스를 입고 다니던 그다. 특이한 패션의 사람들이 많은 도쿄에서도 단박에 눈에 띄는 모습이었었지. 


오후 늦게 도착한 라이브 바 '보나페티'는 텅 비어있었다. 예약이 없는 평일인 데다 날이 부쩍 추워져서인지 한잔 하러 들르는 동네 사람들도 없는가 보다. 


정해진 공연 시각까지 결국 가게에는 한 사람도 들지 않았다. 쇼팽의 환상곡으로 손을 풀던 슈리도 어색한 웃음을 짓고 있다. 하지만 어쨌든 보수를 받고 하는 공연이다. 관객이 없어도 시작할 수밖에 없는 일이다. 아니, 사실 관객이 있긴 있지 않나. 단 한 사람이기는 해도. 


슌은 먼저 '오 솔레미오'로 비롯된 몇몇 가곡들을 부르고 내가 잘 알지 못하는 샹송들을 이어서 불렀다. 그리고 아마 앙코르용으로 준비했을 나카지마 미유키의 '헤드라이트 테일라이트'와, 지브리 애니메이션 '붉은 돼지'의 노래들을 앙코르 사인 없이 피로했다. 한 시간도 채 안 되는 공연이었지만 마음에 차오른 감동은 여느 큰 콘서트에 비할 것이 못 되었다. 아무런 방해도 소음도 없는 공간에서 이어지는 넘버, 그 사이에 들리는 소리라고는 나 혼자서 치는 박수뿐이다. 공연이 끝날 때까지 티켓에 붙어 나온 알라카르트에는 손도 대지 않았다. 그만큼 흠뻑 빠져들었다. 예정에는 없었다고는 해도, 나 혼자만을 위한 두 사람의 공연이었다. 옛날 영화의 한 장면과도 같은.







오늘 공연에서 반주를 맡았던 슈리는 그녀의 이름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오키나와 출신의 여성이다. 성씨의 개념이 한국과는 많이 다른 일본이기에 희귀성씨를 접하는 일이 결코 '희귀한' 일은 아니지만, '슈리'는 일본 전국에서도 다 모여봐야 겨우 백 명 남짓이 될 매우 희귀한 성씨다. 슈리네 집안이 어떠한 경로로 도쿄로 왔는지에 대해서는 자세히 모른다. 다만 그녀의 아버지는 도쿄 이타바시구에서 오키나와 요리를 내는 작은 술집을 꾸리고 계시는 모양이다. 



군입대 전 봄에 처음 만났을 때부터 슈리 그녀에게선 어떤 거리감을 느끼고 있었다. 서로 대화가 많이 오간 편은 아니었지만, 그저 말없이도 알아챌 수 있는 분위기와 행동에서 배어 나오는 거리감을. 그것은 국적이 다른 사람들끼리 가끔 서로에게 느끼고, 또 느끼게 해버리고 마는, 고의성이 없는 그런 오해에 가까운 차별일지도 모른다. 혹은 그해 봄, 나의 처질대로 처진 모든 것을 내팽개치고 싶었던 마음과 그에 동반한 태도의 어리숙함 때문에, 그녀가 실제로 내게 안 좋은 인상을 품었을지도 모를 일이고. 사실 어느 쪽이든-오해든 아니든-상관없다. 중요한 것은 내가(혹은 그녀도) 그러한 불편함을 느껴버렸다는 사실 아닐까. 물론 겉으로는 우리 둘 다 서로에게 친절하고 명랑하다. 그녀는 내게 아버지가 만든 이런저런 요리를 하나씩 권했고, 스스로 요리를 만들어 내오기도 했다. 나는 오늘 공연의 좋았던 점을 연신 칭찬했다. 그러나 이야기는 그 정도 선에서 머무른다. 서로에 대해서는 조금도 깊게 묻지 않는다. 내가 왜 도쿄에 와 있는지조차 물어보지 않는 슈리다. 나는 오늘 이 요리점에서 저녁식사가 예정되어 있다는 사실도 도착 전까지는 몰랐었다. 그녀와 나는 슌을 사이에 두지 않으면 서로에게 할 말이 하나도 없다.

 


오키나와 요리는 한국 요리와도 많이 닮아있다. 지리적인 가까움이 이유일까. 순두부찌개나 족발을 연상시키는 요리들이 차려졌다. 물론 모양은 비슷해도 디테일에는 큰 차이가 있다. '바다 포도' 같은 것을 한국에서 먹는다는 소리는 들어본 적도 없고. 우롱차에 소주를 섞은 것을 몇 잔씩 돌리고 있자 슈리의 아버지가 마지막 요리를 들고 나오며 가라오케 기계를 켰다. 그리고 내게 마이크를 건넨다. 


"한국사람이라면 이 노래 알고 있지?" 


'돌아와요 부산항에'


물론 잘 알고 있는 노래지만, 나는 모른 척하기로 마음먹었다. 여러 사람 앞에서, 특히나 가수 앞에서 노래 부르는 것은 정말 사양하고 싶다.


슈리를 도와 그릇을 정리하고 밖으로 나서자 한밤중이었다. 밤공기가 차가웠지만 슌의 차로 아사가야 역까지 가는 내내 창문을 열어두었다. 슈리가 싸 준 김치 냄새가 대단했기 때문이다. 굉장히 오래 묵은 듯한 김치. 일본 사람들은 이런 김치는 먹지 않을 텐데. 설마 버리려고 했던 것을 내게 준 것은 아니겠지. 비닐봉지를 건네던 슈리의 건조한 미소가 자꾸 떠오른다. 왜? 내가 한국 사람이니 김치는 당연히 먹을 것이라 생각한 것인가. 그래서 묻지도 않고 싸 준 것일까... 또 이런 생각에 얽매이고 마는 나다. 훌륭한 공연과 좋은 식사를 대접받고서도 끝에는 이런 그은 마음을 먹고 마는 나다. 


슌에게 고맙다는 말을 하고 차를 내렸다. 집 방향 아케이드 쪽으로 고개를 들자 저만치 보이는 맨션의 꼭대기층 창에는 불이 들어와 있다. 하-쨩이 이미 귀가했을 시간이다. 순간 우스꽝스러운 기분이 들었다. 하-쨩과 며칠 전에 있었던 일. 그 한국인. 그 한국인이 오늘은 한 손에 냄새가 스멀스멀 올라오는 김치 봉지를 들고 자신의 맨션으로 귀가한다니. 가게들이 문을 닫아 인적이 드문 아사가야 아케이드 가운데 서서 난 그만 웃어버리고 말았다. 눈물이 나올 만큼 크게 웃고 나서 직진하려던 발걸음을 돌려 아케이드 뒤편 쓰레기장 쪽으로 돌아 들어갔다. 그리고 별다른 죄책감도 없이 대형 수거함의 회색 뚜껑을 열고서 슈리의 비닐봉지를 떨어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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