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소 역을 벗어난 전차가 서쪽으로 속도를 내기 시작했을 때는 정오가 훨씬 지난 한낮이었다. 고베 출신 재일교포 K형이 요 며칠 동안 본가에 머물고 있다는 소식을 들은 나는 교토의 료칸 일을 하루 휴가 내서 만나러 가기로 한 것이다. 십일월 초순. 오사카의 바깥 날씨는 서울이나 도쿄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포근하다. 가방 속에 챙겨 온 얇은 재킷 한 장도 낮동안에는 꺼낼 일이 없을 것이다.
한큐 고베선을 따라 달리는 급행 전차는 벌써 칸자키가와의 강물 위를 지나가고 있다. 저 멀리로 내가 사는 마을을 향한 길목이 어렴풋이 보인 듯하다. 오사카 서부의 도요나카라는 곳에 살림을 차린지도 벌써 몇 주나 지나갔다. 가족이 아닌 다른 사람과 함께 생활한다는 게 애초에 내 체질에 맞는 짓은 아니었음을 도쿄에서 깊이, 깊이 깨닫고 온 바지만, 누구와 함께 하느냐에 따라 이것도 나름 견딜만하다는 것 또한 깨달아가고 있는 중이다. 사귐이 오래 묵어 그 속을 대충은 헤아리고 있는 친구와 함께라면 말이다.
밤마다 옛 친구와 함께 자전거를 달려 오사카의 이곳저곳을 돌아다니고 있다. 구천 엔짜리 미니벨로식 자전거로 매일 밤 허벅지에 불이 나도록 달린다고 해 봤자 옆 동네 마트에서 귤이나 한 봉지 사 오고 마는 것이 고작이지만 꽤 즐겁다. 밤바람을 맞으며 열심히 페달을 밟아 둑길로 올라서면 칸자키가와 강물에 비친 도시의 불빛이 바람을 따라 일렁인다. 그 순간엔 내 앞으로의 인생에 이만큼 한가로운 시대가 다시 찾아오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떠올릴 만도 했다.
교토 료칸에는 일주일에 두세 번 정도만 출근하고 있다. 여름 때와는 다르게 약간이지만 급여도 받게 되었다. 한 주에 몇 천 엔 정도가 고작인 벌이로도 밥을 굶지 않을 자신은 있다. 게다가 집 월세를 따로 받지 않겠다는 친구의 친절함에 기대어 당분간은 따로 아르바이트도 찾지 않을 셈이다. 이렇듯 한가롭고 또 소박하지만 나름 여유로운 연말을 보내게 된다는 기대감에 마음이 뿌듯한 요즘이다.
한참을 흔들린 전차가 목적지인 산노미야 역에 도착했을 때 시계는 세시를 향하고 있었다. 역 앞 횡단보도 건너로 겨자색 스웨터를 입은 K형이 보인다. 그는 수년 전 한국 동대문 등지에서 의류를 떼 일본에 파는 사업을 시작했는데, 저 옷도 아마 한국산일 것이다. 일본 사람들은 겨울에 저런 밝은 색 옷을 잘 입지 않거든. 고베라는 곳이 패션으로 유명한 도시임에도 거리에는 어째 무채색 옷들만 지나다닌다.
배가 고프진 않았지만 간단히 저녁을 먹기로 했다. 관광객이었다면 여기서 고베규 스테이크 집이나 유명 베이커리를 찾는 것이 수순이었겠지. 관광객이었다면 말이다. 그러나 K형도, 그리고 나 스스로도 특별히 관광객 입장은 아니었기에, 근처 아케이드의 산마르크 커피에서 크라상이나 먹는 게 어떠겠냐는 형의 말에 별다른 반응도 없이 따라나섰다. 도쿄에서도 얼마든지 먹을 수 있는 산마르크의 크라상. 하지만 차라리 그거라도 먹었다면 고베에 놀러 온 보람이 조금은 있었겠지. 우리가 결국 들어간 곳은 맥도날드였다.
산마르크가 맛있는 크라상 덕에 전국적으로 인기를 끌게 된 것처럼, 고베 근처는 예부터 빵이 맛있기로 유명하다. 기본적으로도 높은 수준의 일본의 제과제빵 업계에서도 탑클라스에 드는 가게들이 상당수 존재한다. 교토에서 료칸 일을 하다 보면 투숙객이나 방문객들로부터 선물이 종종 들어오는데, 그중 고베에 살고 있는 여주인의 친구분이 가끔 사다 주시는 과자들은 하나같이 놀랄 만큼 세련되고 맛있는 것들 뿐이었다.
저녁을 먹은 우리는 다시 역으로 가 열차를 타고 서쪽으로 향했다. 오늘의 목적지는 타루미의 아웃렛이다.
전차 안, 어슴푸레 해가 지는 오사카 만을 바라보며 K형이 운을 뗀다.
"바다가 바로 옆에 있어 무섭지? 쓰나미 오면 여기 사람 다 죽는다."
"..."
"농담이야. 아와지 섬이 막아줘서 괜찮아."
고베 출신으로 한신 대지진을 몸소 경험한 K형이 당시의 이야기를 들려준 적이 있다. 큰 흔들림 뒤 정신을 차렸을 땐 삼층 구조였던 집의 중간층이 완전히 무너져 내린 상태였다고. 다행히 크게 다친 사람은 없었지만 집안에 있었던 수조가 깨져 온통 물바다가 된 가운데를 달려 나오는 통에 유리 파편에 발을 다친 것이 기억에 뚜렷이 남아 있다고 한다. 다친 발에서 피가 흘러내렸지만 신경 쓸 겨를도 없이 아버지를 따라서 무작정 달렸다고. 이십 년 가까이 지난 지금 저렇게 농담 삼아 말할 수 있게 된 K형이었지만, 나는 조용히 흔들리는 열차 너머로 보이는 아와지 섬의 그림자에 오싹함을 느꼈다.
역에서 내려 K형의 등을 따라 한참을 걸었다. 어느 순간 탁 트인 공간 저 멀리 밝은 빛을 내뿜는 건물이 덩그러니 보였다. 바닷바람 소리에 묻혀 멀리 내다보이는 석양 아래로 기대감과 함께 웬일인지 모를 불안감이 동시에 떠오른다. 어린 시절에는 자주 느꼈던 감정이다. 학교 수련회나 보이스카우트의 야영같이 낯선 곳에서 밤을 맞이 할 때의 두근거림. 어둠이란 그 자체로 인간의 원초적인 공포를 자극하는 구석이 있는 법이다. 그 적당한, 오금이 저려오지만 그렇다고 해서 견뎌내지 못할 것도 없는 만큼의 두려움. 그것은 어린아이를 어른으로 성장하게 하는 힘을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자라나면서 차츰 잊어버렸던 이러한 감각들이 일본에 홀로 오고 나서 다시금 되살아날 때가 많다. 내가 여행에서 가장 찾고 싶은 묘미란 이런 것이다. 새로운 것이 아닌, 내가 원래부터 갖고 있었던, 그러나 잃어버렸던 것들을 다시 찾아내는 것.
아웃렛의 폐장 시간까지는 한 시간 정도밖에 남아있지 않았지만 충분했다. 애초에 K형의 쇼핑을 따라나선 것뿐이었으니까. 그러나 나도 상당히 저렴한 가격대에 홀렸는지 어느샌가 코트 한 벌과 함께 겨울을 대비한 몇몇 옷가지를 고르고 있었다.
쇼핑몰용 카메라를 들고 온 K형에게 사진을 몇 장 부탁했지만, 어째 나중에 받은 사진들의 상태가 다 이런 모양. 포커스가 제대로 맞는 사진은 단 한 장도 없었다. 이렇게 카메라를 못 다루는 사람도 찾기 힘들 것 같은데. 촬영감독이 따로 없는 쇼핑몰 운영, 괜찮을까.
돌아오는 길에는 K형의 누이가 남편과 함께 경영하는 야키토리 집에 초대받았다. 조용하고 고급스러운 실내 분위기가 여느 야키토리 가게의 상투적인 이미지와는 다르다고 느낀 것은 어쩌면 고베 중에서도 고급 주택 지역에 살고 있는 K형의 일가친척들에 대한 내 편견에서 비롯된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음식 맛은 그것과는 상관 없이 순수하게 훌륭했다.
재일교포 사회의 크기와 결속력에 대해서 내가 아는 것은 별로 없지만 K형과 대화하다 보면 종종 놀랄 때가 있다. 그가 내가 알고 있는 또 다른 재일교포 친구들과 알고 있는 사이인 경우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오늘도 K형의 학창 시절 이야기 도중 재일교포 가수 S와 동문이라는 이야기가 나왔는데, 나는 S의 형제 중 한 명과 일 관계로 알고 지내는 사이였던 것이다. 그리고 우연히도 K형은 내가 아는 그 분과 동기였다는 사실이 이야기 중에 밝혀졌다. 별것 아닌 화제지만, 이런 가벼운 술자리에서 꺼내 놓기엔 참 좋은 안주가 아닐 수 없다.
깜깜한 밤거리를 걸어 츠키미야마 역에서 우메다행 티켓을 구입했다. IC카드를 쓸 수 있는 개찰구가 없었기 때문이다. 어쩌면 내가 못 찾은 것일지도 모르지만 상관없었다. 온몸이 지친 가운데 취기까지 올라 무거운 몸을 이끌고 텅 빈 전차에 올랐을 때는 졸음이 쏟아졌다. 잠시 눈을 붙여도 좋을 것이다. 가는 도중 노선이 바뀌겠지만 환승할 필요는 없기 때문이다. 일본에는 이처럼 같은 전차에 타고 있어도 중간에 노선이 바뀌는 경우가 종종 있다. 처음 일본에 오는 관광객들에게는 알기 힘든 부분이다. 한국의 대중교통 시스템이 얼마나 심플하고 멋진 것인지 재차 느끼게 된다.
고베. ZARD의 노랫말에도 등장하는 추억의 마을. 제대로 둘러보지는 못했지만 조용하고 깨끗한 거리 분위기가 마음에 남는다. 그럴 일은 없겠지만, 기회가 된다면 한 번 살아보고 싶은 곳이다.
'여기는 황실 별장도 있는 동네야. 아무나 못 살아. 돈뿐만이 아니라 심사도 필요해.'
짓궂은 K형의 말투가 귓가에 감돈다. 그 심사가 무엇이 됐든, 지금은 어쨌든 돈도 없지.
차창 밖 고베 거리의 풍경이 어느새 지하 터널 밖으로 사라졌다. 산요 전철 본선을 달리는 전차는 곧 칸자키가와의 원룸으로 날 데려다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