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는 교토의 나무집에는 수상한 매력이 있다. 처음에 나는 그것을 오래된 것들에게서 늘상 풍기는 그런 은밀한 매력이겠거니 생각했었다. 내가 처음 토지 절의 오층탑을 보았을 때 느꼈던 그런 느낌 말이다. 그러나 마치야라는 나무집 안에서 그의 오래된 몸을 구성하고 있는 부분들ー사루스베리가 심긴 정원, 돌바닥 현관, 얇은 유리를 댄 한 장짜리 창문, 삐걱대는 나무 계단, 그리고 문지방을 넘나들 때마다 머리를 부딪치고 마는 낮은 천장... etc.ー이런 것들과 함께 더불어 사는 날이 늘어갈수록, 그 이상한 매력이란 게 아름다움에서 오는 흡족한 느낌과는 사뭇 다르다는 것을 깨달아가고 있다. 그것은 오히려 낯설고 불편한 것을 마주했을 때 느껴지는 감각과 비슷할지 모른다. 교토에 와서 새로 알게 된 친구들처럼 언제나 내게 친절하고 푸근하지만, 나와는 다른 공간 다른 시대를 살아온 존재이기에 낯설고 불편한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닌 존재. 그것이 교토의 마치야인 것이다.
어쩌면 내가 사는 백 살쯤 먹은 이 마치야 건물이야말로 '오바케야시키お化け屋敷(도깨비집)'라는 일본어 표현이 정확하게 들어맞는 건물이 아닐까 생각한다. 애초에 마이코들의 합숙소로 쓰기 위해 지어졌기에 주변에 늘어선 다른 가정집 마치야들과는 구조적으로 매우 다르고, 어둡고 미로처럼 얽힌 복도와 눈앞에 있는 것이 방문인지 장롱문인지 구분하기도 힘든 옛 스타일의 인테리어는 처음 이곳을 찾는 사람들을 적잖이 당황하게 한다. 내 방을 화장실로 착각한 방문객들이 몇 번이고 문을 열어대는 탓에 난 이미 적당한 나무 막대를 찾아 문을 고정해 놓고 지내고 있을 정도니까. 바깥에서 보는 모습도 주변의 여느 집들과는 판이하다. 이웃해 있는 마치야들이 현대의 아파트마냥 획일화된 디자인으로 비슷비슷하게 늘어서 있다면 내가 사는 이곳은 지은이의 욕심이 한껏 담긴 설계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조금은 괴팍한 취미의 별장 같은 모습이라 해야 할까.
무려 두 세기 전 사람들의 라이프스타일과 그들이 선호하는 디자인을 고려해 지어졌을 이 '노인'에 얹혀 생활한 지도 벌써 반년이 다 되어간다. 처음에는 정답고 온화한 인상을 풍기고 실제로도 늘 고요한 편이었던 이 노인은 그러나 종종 심술궂은 노인네로 돌변하여 느닷없는 장난을 칠 때가 있다. 좁은 복도와 계단을 다니다 부딪혀 생긴 멍은 셀 수가 없고, 낮은 천장 탓에 방에서 방으로 문을 나설 때마다 찧은 이마엔 딱지가 앉을 지경이다.
하지만 이 노인의 본격적인 장난과 비교해 보았을 때 그런 것들은 정말로 장난에 불과하다.
아무도 없는 오후. 홀로 방안에 누워있을 때면 들려오는 소리. 마당을 가로질러 현관을 올라와 반쯤 열어놓은 젖빛 유리창 틈새로 새어 나오는 이상한 소리들.
삐그덕, 탕, 톡톡...
끼익끼익
낮 동안 뜨겁게 달궈진 목조 건물의 몸통 이곳저곳이 저무는 해를 따라 식어가며 내는 소리임이 틀림없지만, 두 눈을 감은 등 뒤로 배어 나오는 땀과 함께 곤두서는 신경은 어찌할 수 없다.
그렇게 숨죽이고 누워 저녁 바람이 한바탕 휘몰아치고 가기를 기다리면 적당히 서늘해진 마치야 건물은 넘어가는 태양빛 속에서 정적에 휩싸이게 된다. 그리고 그보다 더 서늘해진 내 심장 뛰는 소리만이 방안에 울려 퍼진다.
낮과 밤이 섞이는 땅거미의 시간은 예부터 온갖 신기한 일들이 일어나는 때라고 했던가. 여기 기온 한 귀퉁이의 백 년 된 나무집이 아니라면 이 세상 어디에서 그런 일이 일어날까?
누운 채로 고개를 돌리자 닫힌 미닫이문이 보인다. 방문이라기보다는 칸막이에 가까운 그 얇은 나무판자엔 보이지 않는 미세한 틈새가 많이 나 있다. 수많은 여름과 겨울을 겪으며 마르고 축축해지고, 다시 마르길 반복해 생긴 세월의 흔적일 것이다. 그것들은 평소에는 전혀 눈에 띄지 않지만, 이런 저녁 방안의 불을 모두 끄고 있을 땐 그 존재가 확연히 드러나는 것이다. 두꺼운 커튼을 겹으로 친 깜깜한 내 방과는 대조적으로, 복도는 유리창에서 곧장 쏟아지는 서쪽 하늘의 잔광으로 눈부시게 빛나고 있다. 그리고 창문을 넘어온 차가운 바깥공기는 복도 바닥을 따라 집 안쪽으로 흘러들어오고 있다. 바로 지금이, 백 년이라는 세월 동안 살아온 이 노인이 장난을 치기에 딱 알맞은 시간인 것이다.
미닫이 문의 갈라진 틈새로 새어 나오는 빛 사이사이를 새까만 동그라미들이 무수히 반짝거리기 시작한다. 알알이 알알이, 아무 소리도 내지 않지만 굉장히 빠른 속도로. 이것들을 처음 봤을 때는 내 눈을 의심했다. 그것들은 살아있는 무엇으로는 보이지 않았지만, 마치 의지를 갖고 어디론가 바삐 향하는, 그런 초자연적인 존재처럼 보였다. 어느새 마음속에 있던 두려움은 사라지고 놀라움과 흥분의 고동이 가슴을 벅차게 했다. 시야를 온통 뒤덮는 검은 폭죽. 새까만 불꽃놀이. 아름다웠다. 말로는 쉬이 묘사할 수 없을 정도로.
머릿속에 떠오르는 이미지가 한 가지 있다. 수십 년 전에 처음 보았던 지브리의 애니메이션 토토로. 그곳에 나오는 마쿠로쿠로스케. 그 애니메이션 속의 묘사와 똑 닮은 모습이다. 미야자키 씨가 그려낸 그 장면이, 일본의 옛 집에 사는 도깨비 마쿠로쿠로스케가 상상력의 산물이 아닌 실제였다니!
물리학적인 지식을 갖추지 못한 내가 이 현상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아마도 이런 것이었으리라 생각한다. 창문 밖에서 쏟아지는 서쪽 햇살은 실내외 온도 차에 의해 생겨난 공기의 대류를 통과할 때 아지랑이처럼 굴절되며 복도를 가로질러 갔을 것이다. 그리고 갈라진 틈이 많은 나무판자는 그 자체로 편광 현상을 일으키는 물체가 되었을 것이다. 이 조건들이 알맞게 맞물려 인간의 눈에 일종의 착시 현상을 일으킨 것이리라.
해가 다 넘어가자 마치야의 도깨비들도 같이 사라졌다. 어스름 저녁 홀로 집을 지키는 어린아이의 마음 같던 두려움도, 난생처음 보는 신기한 광경에 넘치던 감동도 함께 사그라들고, 위처럼 재미없는 설명을 붙여가며 자신을 납득시키려 애쓰는 나만이 남았다. 이불을 걷어차고 반쯤 서서 멍하니 방문을 바라보는, 서글픈 어른 말이다. 지루하게 남아있을 것 같은 저녁 햇살은 늘 순식간에 사그라들고 곧 밤이 찾아오는 것처럼, 어린 마음으로 매사에 감동을 느낄 수 있는 시기도 인간에겐 한 순간뿐일 것이다. 그래도 가끔 이렇게 예상치 못한 순간에 우리는 사라져 버린 우리의 모습을 떠올리곤 한다.
할머니 할아버지가 어린아이를 을러 놓고 또 금방 달래주는 모양새로 내게 장난을 거는 도깨비집 마치야. 이 백 살 먹은 수상한 늙은이가 숨겨놓은 재미는 이것 외에도 무궁무진할 것이다. 나는 잠시 그에게 얹혀살면서 그가 오랜 세월 교토 사람들과 어울려 살며 쌓아온 이야기들을 듬뿍 전해 듣고 싶다. 마치 도회지에서 방학을 맞아 놀러 온 그의 손자라도 된 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