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흐와 하프시코드
늦은 점심을 대충 때우고 산책이라도 다녀올까 날씨를 살펴보던 중에 핸드폰에서 귀에 익지 않은 알림음이 울렸다.
평소에 거의 쓸 일이 없는 페이스북 메신저의 파랗고 하얀 배너에 뜬 세 글자는 분명 한국인의 이름이었지만
머릿속에 그 이름에 해당하는 인물이 금방 떠오르지는 않았다.
안녕!
이게 얼마만이야?
신경질적으로 반복해서 울리는 기계음 소리와 함께 화면 위로 번갈아 뜨는 인사말들.
이십 대 초반 소수의 친구들 사이에서나 통하던 내 옛날 별명을 부르며 인사하는 그는 올해 초여름쯤 페이스북을 통해 우연히 재회했던 어린 시절 친구였다. 분명 독일에서 유학 중인. 아니, 오스트리아라고 했던가.
재회라고 해봤자 몇 달 전 서로 친구 추가만 해 놓고 별다른 인사도 없이 까맣게 잊고 지냈었는데, 그가 갑자기 인사를 건네 온 것이다.
친구사이. 그렇게 부르기엔 좀 거리감이 있고, 그렇다고 해서 말 한번 안 통해본 사이도 아니었던 그와 나.
둘 사이에 오갈만한 이야깃거리란 게 있을까. 그 시절 공통으로 알고 지내던 친구들의 구닥다리 소식들을 일단 쏟아놓아 본다. 심리적으로나 물리적으로나 지구 반대편만큼 떨어져 있는 나와 그 사이이기에 딱히 서로에게 해가 될 것도, 그렇다고 유용하게 써먹을 일도 없을 시시껄렁한 가십들. 그마저도 한두 번 템포가 끊기면 더 이상 이어질 이야기도 없지만. 그렇게 남는 화두라곤 서른을 훌쩍 넘겨버린 각자의 삶에 대한 푸념뿐.
그래 요샌 무슨 일 해? 이런 질문 해도 되나.
나야 비슷비슷하지. 먹고 사느라 바쁜 것 빼곤.
정말? 일본으로 건너갔다고 들었는데.
응 그냥, 일 년 정도 놀다 왔어. 들어온지는 꽤 됐는데...
일 년 동안이나? 부럽구먼.
너야말로. 꿈을 좇아 사는 인생 아니신가.
꿈은 무슨. 이게 앞날이 불안정한 건 그렇다 치고. 요샌 뭔가 다 욕심인 것 같고. 계속 음악을 붙잡고 있다는 게 말이야. 연주자가 자기 관리도 못하고 이렇게 매일 새벽까지 잠도 안 자고 있는 거 보면 애초에 글러먹은 게 아닐까 싶기도 하고.
그러고 보니. 거긴 이미 해 뜰 시간이 다 되었을 텐데.
타국에서 홀로 삶을 꾸린다는 것이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얼마나 큰 힘이 드는지 나도 모르는 바가 아니지만, 동양인으로서, 그리고 예술인으로서 이국땅에서 겪어야 할 고충은 내 상상보다 한층 더 버거운 것이리라.
연주? 지휘 공부한다고 들었었던 것 같은데.
지휘도 연주의 카테고리에 들어간다고 봐야 하나.
지휘는 사실 내년부터 공부하고, 아직은 계속 악기 만지고 있어.
무슨 악기?
음. 제일 큰 악기라고 하면 알려나.
큰 악기라. 얼마만큼 커야 큰 악기일까. 혼자서는 들고 다닐 수 없을 만큼 커야 크다고 할 수 있으려나. 그렇다면 후보는 몇 가지가 안 될 것이다.
피아노 아니면 오르간이겠지.
그러나 내 머릿속엔 이들을 제치고 가장 먼저, 그 음색과 함께 선명하게 떠오르는 악기가 있다.
언듯 핸드폰의 메신저 알림음처럼 이질적인 소리를 내지만, 그것이 귀에 거슬리기는커녕 너무나도 아름답게 들리는 음색을 가진 악기.
하프시코드?
하프시코드. 쳄발로 혹은 클라브생이라고도 불리는 악기.
이름만큼이나 다양한 음색을 가진 바로크 시대의 악기다.
음... 아니야. 내 전공은 파이프오르간인데. 유튜브에 내 채널도 있으니까 시간 나면 봐봐. 근데 너 하프시코드도 알아? 음악 전공자가 아닌 사람 입에서 그 악기 이름이 나오리라곤 생각 못 했네. 난 학부 때 잠깐 만져보긴 했어.
파이프오르간을 전공하는 그가 하프시코드를 다뤄봤으리라는 것은 예상할만한 일이다. 하프시코드는 그 탄생 자체는 바로크 시대보다 더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지만, 사실상 바로크 시대에 들어와 좀 더 간편하게 오르간 연습을 하기 위한 용도로 발전된 악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니까. 그 규모나 연주 방식 탓에 연습 시간과 장소가 한정적일 수밖에 없는 오르간은 연습을 위한 대체 악기가 반드시 필요했고(이것은 현대에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 역할을 맡을 수 있는 최적의 악기는 그 시대에 사실상 하프시코드 외에는 후보랄 것도 없었으니까. 실제로 하프시코드는 겉으로 보기에는 피아노와 닮았지만, 타건감을 비롯한 연주 감각을 따지자면 피아노보다는 오르간에 더 가깝기도 하고.
그러한 하프시코드는 특유의 섬세한 음색 덕분에 가정에서도, 한밤중이라고 해도 주위 사람들을 단잠에서 깨우지 않고 연습하기에는 적합했을 것이다. 그러나 다른 악기에 비해 턱없이 조용한 음량을 가진 데다 셈여림의 조절도 거의 불가능하다는 특성을 가지고 있는 이 가냘픈 악기는 당시 실내악 등의 협연에서 주연급 악기가 될 수는 없었다. 하프시코드만을 위한 작품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야말로 오르간을 위한 연습용 악기 또는 합주를 위한 통주저음(반주)용 악기. 말하자면 조연급 위치만을 묵묵히 지키다 종국엔 피아노의 발명과 함께 사람들에게서 잊힐 운명의 악기였다.
그런데, 분명 그럴 운명을 맞이했을 이 악기를 독주용 악기로서 화려하게 전면으로 내세운 음악가가 한 명 있었다.
바로 그 유명한 바흐다.
바흐는 그의 취업용 포트폴리오와도 같았던 브란덴부르크 협주곡 중 5번 작품을 통해 하프시코드의 독주 악기로서의 가능성을 실험해 보았고, 그 후로 바흐 그 스스로의 현악기와 취주악기용 곡들, 그리고 비발디 등 당대 유명 작곡가들의 작품들을 편곡하여 '주인공이 하프시코드인 협주곡'을 만들어내기에 이른다. 그것이 내가 모든 클래식 악곡들 가운데에서 가장 사랑하는 바흐 작품 번호 1052번부터 시작하는 하프시코드 협주곡이다.
클래식에 별다른 취미가 없는 사람들일지라도 바로크 시대의 음악은 일상에서 늘 접하고 있다. 방송의 시그널 음악으로, 지하철 환승 음악을 통해, 우리는 생각보다 시대 음악에 친숙해져 있다. 바흐의 건반용 곡들 중 골드베르크 변주곡은 비록 일부분일지라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한 번쯤은 들어보았을 것이다. 영화 '양들의 침묵'이나 애니메이션 '시간을 달리는 소녀'에서도 쓰였던 피아노의 선율이 머릿속에 금방 떠오르는 이들도 많을 테고.
그러나 사실 바흐는 피아노를 위한 작품을 생전에 남긴 적은 없다. 피아노포르테라는 악기는 그의 말년에야 겨우 발명되었으니까. 현대에 피아노를 통해 수없이 재현되는 바흐의 곡들은 원래는 하프시코드를 위해 쓰인 곡들인 것이다. 그래서인지 난 바흐의 하프시코드용 작품들을 피아노로 연주하는 행위가 썩 달갑지만은 않다. 그것은 내게 있어서 이를테면 드뷔시의 잔잔한 피아노 소품을 신시사이저로 연주하는 것만큼이나 이질적인 행위가 아닐 수 없다. 물론 안 될 것은 없지만.
이렇게 피아노를 위해서는 단 한쪽의 작품도 남기지 않은 바흐가 사실상 현대 피아노의 세계를 만들어 낸 선구자 위치에 있다는 사실은 아이러니하다. 그가 실험적으로 쓰기 시작한 하프시코드를 위한 독주곡과 협주곡들은 당대의 작곡가들은 물론, 후에 대를 이어 모차르트, 베토벤, 쇼팽, 리스트 등을 통하여 피아노 레퍼토리들로 발전해 갔고, 현재에 이르렀다. 악기의 왕이라 불릴 만큼 많은 사람에게 사랑받는 모던 피아노의 현재 입지는 사실상 바흐 없이는 도달하기 어려운 일이었을 것이다.
나도 언젠가 하프시코드 한 번 만져볼 수 있으면 좋겠네.
한국에 들여놓은 곳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몇몇 군데 있긴 할걸? 대학에 전공 학부도 있는 걸로 아는데. 예당 근처에 스튜디오가 있을지도 몰라. 궁금하면 한 번 찾아봐.
나중에. 지금은 내가 뭘 연주할 수 있는 수준도 아니니까. 그건 그렇고 너 이제 슬슬 쉬어야겠다. 거기 이제 아침 아냐?
맞아. 잠이 오든 말든 시도라도 해봐야겠어.
오늘 반가웠어. 옛날이야기도 많이 듣고. 덕분에 한국 생각 더 난다 야. 내년 여름에 잠깐 들어갈 예정인데 그때 한 번 보게 되면 보자고.
***
하프시코드라. 사실 맨 처음 피아노를 배우고 싶다는 마음이 든 이유도 바흐의 수많은 건반용 곡들을 쳐보고 싶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지금 당장은 과연 그만한 실력을 갖추게 될지도 의문이지만. 친구의 말처럼 언젠가 하프시코드가 마련되어 있는 곳을 찾아서 직접 연주해 볼 날이 오긴 오려나.
오후 세시 반. 바깥에는 아직 산책하기에 충분한 볕이 남아있다. 간만에 바흐의 하프시코드 협주곡이라도 들으며 한 바퀴 돌고 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