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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익호 Jun 17. 2018

힘내요

타케우치 마리야 | 元気を出して


2008년 여름은 내게 뜨거운 계절이었다.


칠월의 후덥지근한 어느 오후 식구들이 모두 외출해 아무도 없는 집에서 깨어난 나는 늦은 첫끼를 해결하기 위해 전자레인지로 계란찜을 만들고 있었다. 큼직한 라면 그릇에 계란을 세 개나 깨 넣어 만든 계란찜을 한 손으로 옮기려던 것이 실수였을 것이다. 중심을 잃고 휘청거리는 그릇 밖으로 후끈하게 김이 오른 계란 덩어리들이 쏟아져 나와 내 오른손을 곧장 덮치고 흘러내렸다.


앗 뜨거워


처음에는 별 일 아니라는 생각이었다. 엉망이 된 바닥을 대충 정리하면서도 그저 약간 뜨겁다는 느낌뿐이었다. 차츰 욱신거리기 시작한 검지부터 약지까지의 세 손가락이 벌겋게 익어버렸다는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찬물을 틀어 손을 식혔지만, 늦은 대처 탓인지 환부가 쉬이 가라앉지 않았다. 가라앉기는커녕 시간이 갈수록 분명하게 심해지는 통증에 생각보다 일이 심각하다는 것을 깨닫고선 근처 약국에 연고라도 구하러 나가야겠다고 마음먹었지만, 고개를 든 화상의 고통이란 것은 얕볼만한 게 아니었다. 신경이 몰려있는 손가락이었기에 더욱 그랬을까. 단 1초만 찬물 바깥으로 손을 꺼내도 타오르는 극심한 고통이 기다렸다는 듯 살갖으로 스미듯 파고든다. 아픔이란 게 신경을 타고 올라와 뇌 속에서 웅웅 울리는 느낌이었다. 결국 수 시간을 찬물과 얼음, 그리고 에어컨 바람 사이로 이리저리 뛰어가며 아픔을 누그러뜨린 뒤에야 가까스로 피부과로 달려가 치료를 받을 수 있었다. 그렇게 그 해는 여름 내내 오른손에 붕대를 감고 지내야만 했다.


여름방학 내내 아르바이트도 못 나가고 집에서 쉬게 된 것은 좋다면 좋았는데. 문제가 한 가지 있었다. 당장 다음 달부터 촬영을 시작해 그 해 말에 학교에 출품하기로 되어 있었던 영화였다. 주연급은 아니어도 꽤 비중 있는 역할을 맡았던 나는 그 찌는 팔월 더위 속에서 긴팔 후드티를 입고 항상 손을 주머니에 찔러 넣은 우스꽝스러운 모습으로 카메라 앞에 섰다. 영화의 캐릭터가 원래 한심한 성격이기도 했기에, 못 미더워 보이는 그 자태가 오히려 좋았다고 위로해주는 친구도 있었지만...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 다시 DVD를 돌려 보아도 매우 처량하고 가엾어서 가만히 봐줄 수가 없다. 깡마르고, 희여멀건하고, 다친 상처를 감추려 애쓰는 자신감 없는 청년. 여자 친구에게 떠나지 말라고 힘 있게 말도 못 꺼내는 한심한 남자 역할에 그 모습이 꽤나 어울린다면 어울렸으려나.


그 녀석을 연기한 배우도 실상 별반 다를 건 없었지만. 학업도 지지부진하고, 가족들과는 대화도 거의 없이 삭막하고, 주머니엔 돈이라곤 한 푼도 없고, 연애도 늘 실패하기만 하는. 좋아하는 게 뭔지도 도통 모르겠고, 싫어하는 것만은 늘 잘 알아채서 잽싸게 피해가려 하는 그런 딱하고 어린 청년. 그게 나였으니까. 마침 그해 봄, 지독한 실연을 겪기도 했었고.


아, 영화라는 게 대단한 것은 아니고 학교 선배가 시나리오부터 감독, 음악, 미술, 편집 등 대부분의 제작과정을 도맡아 만든 저예산 학생 영화다. 우리 후배들은 그의 지휘 하에 스텝 겸 배우로서 반 강제 활용되었던 것이다. 연말에 전임교수님을 구워삶아 졸업논문을 쓰는 대신 이 영화로 대신한 선배를 보고 모두 약간씩 황당한 기분에 빠지기도 했었지만, 속았다는 기분은 아니었다. 그때는 우리 팀 모두 의기투합해서 다음번엔 무얼 해볼까 사기가 충만해있던 시기이기도 했고, 무엇보다 서울 근교의 여러 펜션과 모델하우스를 돌며 합숙했던 한여름의 추억거리가 하나 생겼다는 점만으로도 다들 만족하지 않았을까.


영화에 특이한 점이 하나 있다면 배우는 대부분 한국인인데도 대사가 전부 일본어로 마련되었다는 점이다. 영화의 주인이자 시나리오 작가였던 선배가 한국어보다 일본어에 더 익숙했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었지만, 촬영과 조명까지 번갈아가며 담당해야 했던 배우들이 모국어가 아닌 대사를 완벽하게 외우는 데에는 많은 어려움이 따랐고, 촬영장 분위기는 끊임없는 NG사인과 지쳐가는 배우들의 스트레스로 가득 차 있었던 기억이 난다.


그렇게 지지부진 해가 넘어가고 나면 낮 장면의 촬영은 다음날로 미뤄질 수밖에 없었다. 상대적으로 배경에 신경 쓸 필요가 없는 밤 장면은 학교나 혹은 다른 곳에서도 충분히 촬영할 수 있었으므로, 우리는 해가 지면 모든 촬영 장비를 물리고 로케이션 장소ー펜션 혹은 고급 전원주택의 모델하우스였다ー에 앉아 비로소 쉴 수 있었다. 그럴 때면 선배는 영화에 쓰일 사운드트랙을 꺼내 하나 둘 틀어주곤 했다. 도심을 한참 벗어난 고급 별장. 한 김 식은 여름밤의 공기가 풀벌레 소리와 함께 창을 통해 들어오고, 별이 반짝이는 가운데 흐르는 아름다운 보컬. 낮동안 열정을 불태운 친구들과 함께 마시는 한잔의 술.



그 완벽한 한 씬을 장식한 사운드트랙들 중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는 곡이 한 곡 있다.


타케우치 마리야 「元気を出して」


힘을 내.


"눈물 보이지 않던 강한 너를 이렇게나 울린 사람이 누구야?"


실연한 친구에게 보내는 메시지를 담은 노래다. 담백한 가사에 담백한 멜로디. 그러나 더운 여름밤의 산들바람처럼, 마음에 잔잔한 위로를 주는 넘버다.


타케우치 마리야 특유의 텐션 가득하면서도 귀에 거슬리지 않는 보이스는 저 딱하고 어렸던, 실연의 상처가 아직 아물지 않았던 그 해 여름날의 내게 그럭저럭 하루를 버티게 해 주는 몇몇 처방전 중 하나가 아니었다 싶다. 그 당시 내가 겪었던 연애경험이라고 해봤자 글쎄, 사실 대단한 사건도 없이 짧고도 심심하게 지나간 작은 해프닝에 불과했을 뿐인 데다, 실연하는 과정조차 어쩌면 스스로가 스스로를 궁지에 몰아넣는 게 다였던, 그런 철없고 어이없는 몸부림에 불과했을지 모르지만...


그래도 그 종국의 여운이라는 것은, 아직 연약했던 감수성의 피부 속으로 깊이, 깊이 파고드는 화상과도 같은 아픔이었다. 무언가를 끝맺는다는 것에 하나도 익숙하지 않았던 시기의 서툰 이별. 친구의 결혼식을 끝마친 어느 일요일 오후, 들뜬 마음으로 만난 그녀에게 들은 이별의 말은 그 해 여름 내내 나를 아프게 했었다.


이미 끝난 사랑에 매달리는 짓은 그만둬.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면 돼.

처음부터 다시 시작할 수 있을까? 이 사람이 아니라면 아무런 의미가 없을 텐데.


실연한 사람이라면 대부분 떠올리는 그런 인류 보편적인 착각은 물론 내게도 매일 밤 찾아와 여름 내내 잠들지 못하게 괴롭혔었다. 그러나 누구에게나 그렇듯, 그 여운도 시간과 함께 점차 흐려져갔다. 화상 입은 손의 흉터처럼 말이다. 다 사라진 듯 보이다가도 술을 마시는 밤에는 여전히 빨갛게 떠올라 나를 놀라게 했던 흉터. 영화 속에서 애써 감추었던, 주머니 속에 숨어 욱신욱신 고동치던 오른손의 흉터.


이제는 흔적도 없다.


최근 지난 시대의 시티팝 뮤직이 다시 유행이다. 타케우치 마리야의 넘버를 하나 둘 되새겨보다 2008년의 뜨거운 계절이 내게 다시 떠올랐다. 십 년이나 지난 지금, 노랫말 속 그녀의 말처럼 정말 나는 어른이 되는 계단을 하나 둘 오르긴 한 것일까. 분명한 것은 감수성의 피부는 그때처럼 연약하지 않다는 점이다. 붉게 달아오를 만큼, 단 1초라도 떨어지면 물밀듯 덮쳐오는 맹렬한 아픔을 주던 그런 종류의 사랑은 이제 다시는 내게 찾아오지 않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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