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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교토 맑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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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익호 Mar 16. 2016

기온 한가운데에서

기온마쯔리의 마지막 밤


"날이 점점 더워지네요. 이것저것 불 써가며 요리하는 것도 귀찮은데 오늘은 그냥 소면 어때요? 면만 먹고 싶은 만큼 삶고 냉장고에 있는 것들 대충 썰어 넣으면 간단하니까. 얼마큼 먹고 싶은지만 정해요. 그리고 냉장고에 얼음 있나 봐 줄래요? 멘쯔유가 진할 테니까 물도 좀 섞어야 하고... 가만히 서있지 말고 거기 파랑 오이 좀 잘게 썰어 줘요. 생각보다 칼질이 능숙하네... 집에서 요리도 좀 하고 그러는 편인가 봐요?"



여주인과 함께 차려 먹는 식사는 하루에 두 번. 그중 메인 격이라 할 수 있는 게 점심인데, 오늘은 조촐한 차림이다. 식탁에 앉아서도 여주인의 수다는 멈추질 않는다. 이제껏 이야기 상대가 부족했을 테지. 고요한 기온의 거리에 위치한 작은 여관. 찾아오는 사람이라곤 투숙객들 뿐. 게다가 그들은 거의 백 퍼센트 유럽과 미국에서 온 손님들이다. 예전부터 영어에 훨씬 익숙해져 있었을 그녀의 언어 중추를 고려하더라도, 이렇게 모국어로 대꾸해 줄 사람이 하나도 없는 생활은 외롭고도 피곤했으리라.


"가끔, 일본어가 곧바로 떠오르지 않을 때가 있어요.  물론 십오 년이나 해외에 있었으니 당연한 일일지도 모르겠지만... 어쩔 땐 꼭... 무섭다니까. 바보가 된 것 같아. 어쩌면 나보다 익호 군의 어휘가 더 풍부할지도 모르겠어요."


"그럴리는 없죠."


너무 많이 삶았나 걱정했던 소면이 금세 바닥을 드러내 간다. 토마토와 생강, 그리고 간장. 이따위 조합도 의외로 괜찮은 맛을 내는군.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며 건성으로 고개를 저었다.

그러나 내 반응은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듯 대화의 주제는 어느 새 다른 곳으로 흘러가고 있다. 내가 교토에 도착하기 하루 전에 기온 마쯔리의 가장 큰 행사라고 할 수 있는 가마 행렬이 있었다고 한다. 


"이틀만 일찍 왔으면 좋은 구경 할 수 있었을 텐데... 뭐 어쩔 수 없었지만. 먼저 있던 분이 꼭 보고 나서 귀국하겠다고 했었거든. 익호 군이 일찍 와 봤자 그분이 나가지 않는 이상 잘 곳도 없었고."


전 아무래도 괜찮아요. 마쯔리에 별다른 관심이 있는 것도 아니고... 하지만 그녀의 흥을 깨는 것이 마음에 걸려 억지로 미소 지어 보였다.

"그래도 실망하긴 일러요! 아직 기온제는 끝난 것이 아니랍니다. 오늘 저녁 손님들이랑 외출할 거예요. 축제에 쓰였던 가마를 다시 신사로 돌려보내는 행사가 바로 오늘 밤에 있어요."


어쩐지 나는 당연히 따라나서야 하는 상황인가 보다.

정말 아무래도 상관없지만.


가끔 저녁식사를 신세졌던 로쿠하라 반점


아마 네덜란드에서 왔다고 들었던 군인 같아 보이는 청년 두 명과 프랑스인 여학생 한 명. 나와 여주인. 그런 수상한 조합으로 길을 나섰다.

야샤카 신사로 향하는 언덕길 저녁놀이 비현실적으로 붉다. 가뜩이나 대륙을 끼고 있는 서울의 하늘 빛은 이제 이토록 맑지는 않지. 아니, 여름 하늘은 그래도 제법 맑았었나?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본 게 언제였는지조차 기억나지 않지만.


기온 시조 거리로 들어서자 온통 관광객들이었다. 수천 대의 스마트폰들이 그 자체로 축제의 등불이 된 양 하늘 높이 빛나고 있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 속에서도 편의점을 뚫고 들어가 같이 온 손님들의 식음료를 챙기는 여주인이 대단하게 느껴진다. 나 혼자였더라면 이런 복잡한 상황에서 가게에 들어간다는 행위는 생각조차 안 했을 게 분명하니까.

  

야사카 신사 앞
교토의 여름을 상징하는 기온제는 가마를 신사로 봉납하는 행사를 통해 마무리된다




"호잇또 호잇또!"


확성기를 든 남자의 구령에 맞춰 흔들리는 가마가 보인다. 시조 거리를 통해 야사카 신사 토리이 앞까지 들려온 가마는 그렇게 한참을 흔들리는가 싶더니, 곧 재빠르게 신사 옆 길을 우회해 나아갔다. 관광객들도 그 뒤를 바쁘게 따랐다.


경내에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행진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 사람들을 비집고 들어가 가마가 지나갈 큰길을 가로질러 더 안 쪽으로 들어가자는 여주인. 그녀의 빠른 발을 마지못해 뒤쫓는다. 멀리 제복을 입은 경찰관의 서두르라는 손짓이 보인다. 곧 가마가 통과할 시간이다. 


"사람 앞을 가로막고 서지 마!"


어떤 초로의 여인이 손바닥으로 나를 밀치며 특유의 낮고 갈라진 목소리를 뱉었다. 

전 당신 앞을 막지 않습니다. 지나갈 뿐입니다... 

억울했지만 대꾸는커녕 도망치듯 밧줄을 넘어서 반대편으로 달려갈 수밖에. 

한국에서의 기억이 떠오른다. 어느 해의 추석 즈음이었을까. 복잡한 지하철 역사를 통과해야 하는데 개찰구로 난 긴 줄이 앞을 막고 있었다. 하릴없이 가로지르려 했을 때, 한 여인이 내가 마치 새치기라도 했다는 듯 '아저씨!' 하고 쌍심지 난 얼굴로 소리치던 모습이. 물론 나는 변명 없이 지나갔을 뿐이다. 그 상황에서 몇 마디 한 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사람들은 받아들이는 정보를 쉬이 오해만 할 뿐이지, 그 오해의 무게는 전혀 느끼질 못하니까.


가마가 경내에 도착하자 행사는 절정에 이르렀다. 연신 반복되는 구령에 흔들거리며 빛나는 가마. 금붙이들이 짤랑이는 소리. 끊임없이, 끊임없이. 언제까지나 반복되는 이질적인 광경에 어쩐지 정신이 아득해질 지경이다. 고대인들의 샤머니즘이란 이것과 똑 닮은 모습 아니었을까. 무아지경으로 이끄는 소리와 음성과 빛들. 무의식 속에서 합일되어 갔을 개인의 마음들. 비언어적 암시를 통해 강해진 집단의 결속력은 그들의 생존과 관련된 중요한 일들, 이를테면 사냥이나 수확을 보다 성공적으로 해 낼 수 있게 도왔을 것이다. 혹은 그것들이 실패했더라도 절망하지 않고 극복할 수 있게끔 하는 역할도 했을 것이다. 보통이라면 서로 이해하기 힘든 개개인의 관계를 기적처럼 하나로 묶어 놓는 힘. 종교의 본래 역할이란 그랬을 것이다. 고대 사회에서 와해된 집단이란 곧 죽음을 의미했을 테니까. 


'그리고 그것은 현대에도, 분명히 그럴 텐데.'




"메인 행사는 끝인 것 같은데. 더 있을까? 아님 이제 돌아갈까요?"


내가 지루해 보였을까. 그렇게 말하며 벌써 뜰 채비를 하는 오카미상.


"우리 손님들은 보이질 않네요. 뭐 걱정 없어요, 다들 어른이고 만약 길을 잃었다면 전화를 하겠죠.

마루야마 공원을 통해서 돌아갑시다."

 

 항상 집을 향한 이정표 역할을 해 주었던 야사카탑


멀리 야사카탑을 길잡이로 삼고 골목골목을 돌아 집으로 향했다.

여주인은 꽤 지쳤을 텐데도 곧바로 집으로 돌아갈 생각은 없어 보인다. 새롭게 생긴 게스트하우스를 발견하면 그 현관의 만듦새를 가만히 바라보는가 싶더니, 포렴이나 초인종은 또 어떤 걸 달았는지 만져보기도 하고 사진을 찍기도 하느라 분주하다. 비즈니스의 일환이려나. 


"뭐랄까, 의욕적이시네요."


"의욕적? 기본이야 기본. 항상 공부하지 않으면 금방 빼앗겨 버린단 말이에요."


빼앗기다니, 무엇을요. 

손님들을? 돈을. 먹고 살 수단들을.

그래, 그 말도 맞을 것이다. 

포화된 시대를 사는 우리들에게 이미 집단의 결속력 따위는 형식적인 것이 되었다. 맞서 싸워야 할 두려움이란 더이상 집단의 와해 같은 것이 아니다. 그것은 작지만 구체적인 것이 되었다. 바로 내 곁에 있는 나와 비슷한 사람들. 언제든지 내 것을 빼앗아 갈 수 있는 잠재된 경쟁자들. 빼앗아 갈 것이 없으면 하다못해 심리적 우위라도 가지려고 드는, 언제든지 공격태세로 바뀔 준비가 되어 있는 우리들. 다들 그런 소모적인 무의식 속에서 하루를 살고 있지 않나 하는 마음에 안타깝다. 비약일 수 있겠지만, 어쩌면 우리는 고대인들보다 훨씬 가엾은 존재로 진화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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